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를 제외하고는 남자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혈육이 아닌 남자와 대화할 일도 거의 없다. 남자 때문에 신경쓸 일도, 기분 나빠할 일도, 좋아할 일도 없는 나는 여초집단 필라테스 업계에서 일해온 10년차 강사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나온 이 업계 종사자들은 평균 결혼연령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30대 후반까지는 미혼이 많고, 이후 자연스럽게 비혼이 되는 강사들도 많이 봤다. 당장 나만해도 비혼인 강사 동료가 10명 이상이다. 나를 포함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다들 안정기에 접어든 비혼들이다. 비혼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모두가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가끔 결혼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얘기를 한다. "지금 이렇게 좋은데 결혼을 왜 하라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도 웃길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여초라서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는 게 시작이긴 했다. 그러다보니 내 세계에 남자가 없는게 얼마나 맘 편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나는 내가 몸을 움직여 돈을 벌고, 그 돈을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의 기쁨을 안다. 회원들과의 수업은 지루할 새 없이 매일, 매 시간이 새롭고 보람차다. 오직 여자들만이 존재하는 내 사회에서 우리는 늘 서로 감사하고, 칭찬하고, 배려한다. 일년에 한 번 정도 동료들과 싸울 일이 생겨도 비폭력적인 싸움은 관계에 양분이 된다.
하루에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터가 평화롭다. 타인의 온기와 애정과 같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욕구가 직장에서 충족되니 굳이 밖에서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 연애에서는 몸의 대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자들과 부대끼며 사는 삶이 참 충만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끈끈하게 엮여있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며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색종이 고리 정도의 강도면 충분하다.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 무해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를 건강한 비혼인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거인이 있든 없든 비혼여성은 혼자서 많은 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 내 옆자리의 여성분은 반드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여자들의 연결을 믿는 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강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