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초이 Feb 19. 2022

부모의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무조건적인 사랑


 여행 감상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고르다 생각했다. 눈을 감고  날을 떠올렸을  날씨나 풍경과 같이 눈으로 보였던 것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날은 한달  간의 순례길의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전날 숙소를 잘못 잡아 밤새  눈으로 지샌 덕에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같다.


 분위기를 위해 애써 밝게 시작할 수도 있었을텐데 오히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음을  몸으로 표현했던  같다. 작은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키가  나무가 빽빽한 숲길과 그닥 볼거리 없는 외곽을 번갈아 마주치며 걸었다. 그간은 아프고 힘들어서 짜증났던 기분을 참아가며 엄마 아빠와 발걸음을 맞춰 걸었지만  날은  혼자 둘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뒤도 안돌아보고 무시해버렸다. 그런  눈치를 보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혼자 걸어가다  속에서 기념품 가게를 만났다.  쯤에서 둘을 기다려야겠다 생각하며 나는 냉장고 자석과 팔찌같은 것을 고르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돈으로 푸는게 진리라는   유로를 쓰다보니 어느새 기분도 괜찮아졌다.  짜증이 났는지,  여정이 끝났다는게 서운했던건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서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부모님과 함께 걸었다. 미안해서 엄마의 손도 슬쩍 잡았다.

-      너 왜그랬어? 엄마가 뭐 잘못했어?

-      아니그냥


 도착하는  딸과 다정하게 얘기하며 걷고싶었을 텐데 엄마도 상처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어쩐지 나오지 않았다.


  이후로는 같이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하며 마지막 도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대성당  광장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도 나는 복잡하고 미안한 감정에  마음을 다해 웃을  없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셋이 껴안고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알았는데, 아침의  모습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때문에  망쳐버린  같았고, 부모님도 나에게 실망할  같아 두려웠다. 생각해보니  날만 이랬던게 아니라 한달반 내내 매일 꾸준히 재수없게 굴었던 것이 떠올랐다.


  날이 우리 여정의 진짜 마지막은 아니었다. 우리 셋은 한달정도 스페인 여기 저기를 돌며 여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둘의 답답함을 참고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지속적인 재수없음에도  곁에 있어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K-장녀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보여야 하고, 그래야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여행을 했을 때가 32살이었이었는데  나이가 되도록 나에 대한 엄마의 조건부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이건 내가 안고 가야할 상처라고 생각했다.


 소심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날 나름대로의 감정적인 반항을 드러내고서야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이렇게 굴어도 나를 사랑한다고?  대박인데?’


 내가 평생 가지고 있던 어떠한 장벽이 무너지는 그 감정적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비야의 맥주, 그라나다의 성이 어떻고 바르셀로나의 바다가 어떻고는 사실 기억도 거의 안난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적인 자유, 나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어떤 충만한 감정, 이제 좀 대충 살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은 내 생에 발견한 가장 큰 행복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들과의 10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