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아해서 달려봤어?
6시간 반을 기다렸다. 뭐지? 내 멘트가 구렸나? 나 혼자 들뜬 메세지를 보니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다. 망할.
1이 사라지지 않은 메세지를 삭제하기에는 이미 6시간 25분이나 늦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아파트 단지내를 빙빙 돌았다. 답장이 올지도 모르니까 음량을 최대한 키워뒀다. 조바심이 나서 그런건지 7월의 더운 여름 밤에도 한기가 느껴졌다. 손이 떨리는 모양이 공황이거나 기절이거나 둘 중 하나는 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살아서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체 왜 내 카톡을 보지 않는지 5만 5천개의 경우의 수를 상상해 둬야 했다.
첫째, 오늘따라 알바가 바빠서 핸드폰을 볼 여유가 없었다.
둘째, (첫째 이유 받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배터리가 다 나갔다. 유튜브로 너가 좋아한다는 문빈의 영상을 계속 재생했기 때문이다.
셋째, (둘째 이유 받고) 알바 끝나고 집에 바로 못가고 야작을 하러 학교로 돌아갔다. 당장 졸업전시가 코앞이라 핸드폰을 챙길 심적인 여유가 없다.
넷째, (셋째 이유 받고) … 차단인가? 읽씹인가?
다섯째, 처음에 내가 들이댈 때부터 싫었던거다.
여섯째, (다섯째 이유 받고) 싫었는데 눈치 없이 밥 먹자고 연락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수도 없이 읽어봤던 지난 대화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화기애애했던 첫 메세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헤- 하고 변태같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변태력을 추가해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지영아 왜 카톡 안봐.
캇톡! ‘언니 저 이제 야작하고 와서 확인했어요 ㅠㅠ’
하. 그래 언니가 6시간 45분을 기다렸다. 우연히 (우연이라고 하자) 카톡창에 있던 나는 0.000000001초만에 그녀의 메세지에서 1을 지워주었다. 이게 연상의 넓은 마음이지. 내가 밀당에서 진게 아니야. 나는 불안했던 지난 시간을 쿨함으로 포장해 답장을 날렸다.
‘힘들었겠네 수고했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그녀가 수작을 건다. ‘언니, 전화해도 돼요?’
미친. 총으로 내 머리를 쏘고 싶었다. 튀어오를듯한 심장을 감히 이 지루한 몸뚱이로 품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대로 집을 향해 줄달음쳤다. 입을 아 벌리고 콧구멍을 크게 벌려 뜨듯한 여름 밤 공기를 들이 마셨다. 다리를 개구리처럼 벌리고 두 팔은 쥐불놀이하듯 휘두르며 한참을 미친듯이 내달렸으니 나를 본 사람이 있다면 늦었지만 죄송합니다. 사랑에 빠졌었어요. 나중에 안건데 짝사랑이었으니까 봐주세요. 결국 차였으니까 봐주시라고요. 사랑인지 러너스하이인지 아주 조금 헷갈릴만큼 핑 돌게 기분이 좋았다. 입 안에서 피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