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에 관하여
아메리카. 출발. 모든 출발에 따르는 가벼운 불안이 지났다.
까뮈가 쓴 '여행일기'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까뮈가 여행을 하며 쓴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서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 하는데, 올해는 까뮈의 책을 읽어보려 한다.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DJ가 프랑스에 위치한 루르마랭이라는 마을을 소개하면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작년에 '이방인'을 재밌게 읽었던 탓인지 이번 책도 나쁘지 않았다. 그만의 솔직한 감정과 있는 그대로의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까뮈처럼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들 나름대로 식민지화한 이 나라에서 오로지 흑인들만이
이 나라에 생명과 열정과 향수를 부여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
까뮈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한 문장이다. 그의 일기에는 솔직함이 묻어난다.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기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였다는 인상도 살짝 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 그의 문장 스타일이 김 훈 작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문장의 호흡이 짧고 담백한 스타일. 그는 일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것도 쓰지 말고, 그날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말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요즘 블로그에 글을 자주 쓴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은 공개로 쓰고, 나만 보고 싶은 글은 비공개로 쓴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치유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오늘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싸가지 없게 굴진 않았는지...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보면 마음 속 한 켠에 있던 걱정들이 조금 씻겨 나간다.
여행을 가면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글을 남긴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주로 활용한다. 나 역시 그러한 사진과 글을 통해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 또는 시트콤을 찍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나열해도 남이 봤을 땐 참 재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작년 겨울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갔을 때, 모네의 '수국' 앞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의도한 건 아닌데 연인의 모습이 찍혔다. 그림만 찍고 싶었는데 둘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같이 찍었다. 가끔 파리가 떠오를 때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곤 하는데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 당시의 설레임이 자꾸 떠올라서 여행을 가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 설레임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돌아오면 바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핫스팟에 집착했었다. 남들이 다 봐야 하는 박물관이나 건축물을 봐서 나쁠 건 없다. 아마도 다음에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런 발걸음을 이끌게 한다. 요즘하는 여행에서는 남들이 보고 듣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 작은 마을의 뒷골목이나, 구석진 곳에서 먹었던 커피와 빵에 더 집착한다. 다르게 말하면 나만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여행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란 게 조금씩 생기는 중인가보다. 여행기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 가져왔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여행예술도감' 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많은 공감이 갔던 내용이다.
자존감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이 마음을 갖추는데 나만의 여행기만큼 좋은 수단도 없습니다. 대단한 미술 작품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던 이야기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쓰고 그날 있었던 소소한 대화나 실없는 농담을 기록하다보면, 내 일상이 생각보다 보잘것 없는 게 아니란 자각을 하게 됩니다.
남들이 보잘것 없다 내팽겨치는 순간을 적어도 나는 열심히 써내려 가야 합니다. 내 일상을 적어도 내가 비하하지 않는 것, 그게 자존감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이야기 되지 못한 것들을 나라도 이야기하며 살겠다는 마음. 그걸로 이미 당신은 훌륭한 여행작가입니다.
- 여행 팟캐스트 예술여행도감 13화 오프닝
글쓴이(필명)
카이로스 - 여행, 독서, 요리, 고양이를 좋아하는 데이터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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