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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Mar 26. 2019

너무 많이 생각하기, 너무 적게 생각하기

Thinking Too Much; and Thinking Too...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 말해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욕구와 희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라서 대부분은 이를 피하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행여 고통스러운 사실을 많이 발견하게 될까 무서워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멀리한다. 어쩌면 우리는 오직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에 대해 깊이 분노하고 분개하고 있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와 오판으로 인해 부적절하다거나 죄스럽다고 느낄 만한 근거를 무수히 발견할지도 모른다. 늘 법을 준수하는 단정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혐오스러울 정도로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환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간관계와 경력에 관해 무척 많은 부분이 메스꺼울 만큼 해롭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숨길 게 많고, 천재적인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이토록 자기 기만에 능숙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이 인간 비극의 일부분이다. 우리의 속임수 기법은 다양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중 두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한 가지는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는 습관이고 또 한 가지는 지나치게 적게 생각하는 경향이다. 


지나치게 많이 생각할 때, 우리는 본질적으로 우리 지성을 대놓고 세상에 알릴 수는 있지만, 우리의 성격 발달을 위해 필요한 오래 묵은 무지나 혼란의 감정을 재발견할 여지는 별로 남기지 않는 인상적인 아이디어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버린다.


우리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국채가 맡은 역할에 관해 밀도 높은 책을 쓰거나 19세기 중반 일본 소설에 초서가 미친 영향에 관해 광범위한 자료를 출판한다. 고등교육기관의 학위나 과학저널 편집위원 자리를 확보한다. 우리 마음은 온갖 신비로운 자료로 가득하다. 에픽테토스의 <편람>이나 일본 선불교의 창시자인 도겐의 생애와 시대를 글로 쓴 손님들이 앉은 만찬 자리에 짐짓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전 옛집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우리의 신뢰가 어떻게 산산조각이 났는가에 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우리는 과거의 감정으로부터 초라하지만 꼭 필요한 어떤 지식이 나타날까 봐 두려워서 의심할 나위가 없는 분명한 명성을 지닌 지식과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전문지식의 산사태 아래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묻어버린다. 깊은 사적 탐구의 가능성은 학회에서 도나 마리아 1세의 정치전략이나 인도네시아 문어의 생활 주기에 관해 발표하는 더욱 거창한 임무에 비하면 미약하고 불필요해 보인다. 


상처를 안겨주는 사실들을 너무 많이 알 필요가 없도록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매력에 의존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적게 생각하는 습관도 있다.

이때 우리는 심리학이 지나치면 무의미하고 공연한 소란인 양 여기며 자신의 모습 역시 실제보다 더 단순한 척 군다. 자신의 복잡한 모습을 내밀하게 바라보면 거북하고 어색한 면을 만날까 봐 두려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상식에 의존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뛰어난 지능의 증거인 양 여긴다. 


사람들 앞에서 인간 본성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태도를 향해 조롱이라는 허세적 전략을 이용한다. 개인적인 탐구를 과도하고 지나친 처사 혹은 기괴한 일로 여기고 내면의 삶을 덮은 뚜껑을 여는 행위는 절대로 유익하지 않고 전적으로 존경할 수도 없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친다. 지난밤 새벽 3시 무수한 별이 뜬 밤하늘에 우리라는 존재의 전체적인 구조는 어떠한 모습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라 검은 벨벳 장막에 백만 개의 다이아몬드처럼 흩뿌려졌던 그 복잡한 통찰력을 월요일 아침 9시의 실용적인 분위기로 쫓아내려고 한다. 극도로 동요하는 순간을 실제 통찰할 수 있는 핵심 상황보다 더 일탈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활발한 상식의 태도를 이용한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이 비극적이지 않고 단순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낯선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우리의 실제적이고 복잡한 자아가 지닌 더욱 유용한 사실들마저 거부한다. 

 감정적으로 솔직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태도는 고상한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이기적이다. 우리는 스스로 진실을 조금 더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거짓말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자기 기만은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우리가 마음의 상당 부분을 차단해버리고 그 결과 비창조적이고 냉소적이고 방어적이 되는 동안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짜증이나 우울, 꾸며낸 명랑함, 방어적 합리화 등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거북한 면을 못 본 척 무시하면 우리 존재를 옭아매게 되고, 품지 않으려고 그토록 조심한 온갖 생각들이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불면증이나 발기불능, 말더듬증,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오히려 반듯한 정신과 내면의 평온을 가늠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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