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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Sep 24. 2019

남달라야 한다는 생각 극복하기

Overcoming the Need to Be Exceptional

"당신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느꼈나요?” 한 사람의 행복감과 정통성을 재빠르고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 남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나요?”도 마찬가지 질문이다. 이어지는 관련 질문으로 “그래서 지금 삶의 지위에 만족하나요?”나 “혹시 지나친 성과주의자가 되었거나 이른바 평범한 삶에 크나큰 수치심을 느끼나요?”도 있다. 

우리 중 약 20%는 불편한 무리에 속한다. 즉, 어떤 일이든 충분한 정도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거나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는 부류다. 지금 우리는 눈에 띄게 특별하고 남다른 모습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야 한다는 압박감을 자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 부모님은 흔들리는 자아의식을 지탱하기 위해 우리가 특별하기를 요구했다. 그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없었고 뭔가를 성취해야 했다. 아이 스스로 어떤 동기와 취향을 가졌는지는 고려 대상이 못 되었다. 부모는 사적으로 은밀하게 고통스러워했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했으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우울과 싸우고,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에 분개했고, 어쩌면 배우자로부터 내밀하게 괴롭힘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여기 뛰어들어야 했던 아이는 이 모든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러한 렌즈를 통해 ‘성취’를 바라보면, 성취가 신문에서 말하는 모습이 아니라 일종의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표본으로 보인다. 어쩌면 초고층 건물을 세우거나 베스트셀러 책을 쓰거나 무대에서 공연하거나 공동경영을 하는 이들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고통 없이 평범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 소위 만족하는 ‘보통 사람들’이 감정적인 슈퍼스타, 정신적인 귀족, 마음의 대장일지도 모른다. 세계는 평범할 특권이 있는 사람들과 반드시 뛰어나야 한다는 강요를 받은 사람들로 나뉜다.


후자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결과는 심신의 쇠약이다. 몇 년간 성과를 내다가 갑자기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심각한 우울 상태에 빠진다. 불안감이 치솟는다. 먹기를 거부한다. 어떤 식으로든 일상의 쳇바퀴에 커다란 빗장을 질러 넣고 잠시 집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심신 쇠약은 단순히 무작위적 광기나 기능장애가 아니라, 불분명하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건강을 향한 매우 현실적인 시도가 될 수 있다. 마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향해 지금껏 겁이 나서 감히 시작할 수 없었던 성장과 자기 이해와 자기계발의 과정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는 시도이다. 역설적이지만 심각한 병의 단계를 통과해 제대로 건강해지는 과정을 시작하려는 시도이다.


명백하게 아픈 상태에서 영리하게도 이전에 추구했지만 불행했던 경력의 모든 구성 요소를 파괴하려고 탐색 중일지도 모른다. 일과 외출을 줄이려고 노력 중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기대치가 지닌 잔인한 불합리성을 떨쳐내고자 노력 중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단지 개인적인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인 수준에서도 건강하지 못하다. 충분히 좋은 평범한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미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평범한 삶을 패배자의 삶과 연관짓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삶은 선택권이 없는 실패한 사람만이 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혹하게도 오직 중심에, 대도시에, 무대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것을 ‘선함’과 동일시한다. 가을의 원숙함이나 희망의 절정을 지나친 다음에 찾아오는 평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히 중심이란 존재하지 않고, 중심이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예술가들은 때때로 이러한 평범한 지혜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16세기 말, 죽기 몇 년 전에 쓴 세 번째 <수상록>에서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요점을 포착해냈다. “침공에 성공하고, 대사관을 운영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빛나는 행위이다. 그러나 꾸짖고, 웃고, 사고, 팔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집안일과 자기 자신과 더불어 온화하고 정당하게 살아가고, 해이해지지도 않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고 살아가기는 훨씬 더 뛰어나고 희귀하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런 식의 고립된 삶도 다른 삶만큼이나 어렵고 긴장되는 임무를 유지해야 한다.”


165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작은 거리>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가치체계에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성공이란 어쩌면 소박한 거리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고요한 오후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체호프나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에도, 밥 딜런의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에도, 토머스 존스의 <나폴리의 어느 벽>(1782년)이나 에릭 로머의 영화들, 특히 <녹색 광선>(1982년)에도 이와 비슷한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대다수 영화나 광고, 노래, 기사 등은 이런 식의 관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은 계속해서 다른 것들의 매력을 설파한다. 스포츠카, 열대의 섬에서 보내는 휴가, 명성, 고귀한 운명, 일등석 비행기 여행, 매우 바쁜 생활 등. 그 매력들은 때로는 완벽하게 현실적이다. 그러나 누적된 효과는 우리 자신의 삶은 무가치함에 가깝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하는 일에도 엄청난 기술과 기쁨과 고귀함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 아이를 합리적이고 독립적이며 균형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파트너와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합리적인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른 밤의 시간을 무사히 보내는 것, 그리 흥미롭거나 보수가 좋지 못한 일도 책임감 있고 즐겁게 해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말에 적절히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대체로 살아가는 일과 관련한 모순과 타협에 광기나 분노로 굴복하지 않는 것.

 이런 일들을 편견이나 자기 혐오 없이 바라보는 법을 배울 때 우리 환경에 이미 감사해야 할 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기대치에서 벗어나면 발견하게 될 그것은, 삶의 진정한 사치란 그저 단순함, 고요, 언제라도 상처받을 수 있는 우정, 관객 없는 창조성, 지나친 사랑이나 절망이 없는 사랑, 뜨거운 물 목욕, 말린 과일, 호두, 다크 초콜릿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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