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킴 Nov 24. 2020

당신은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입니까?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내가 바로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하기 전의 나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대표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시간들을 거의 정적인 움직임 혹은 소비행위로 채웠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몸을 움직이고, 몸(근육)을 쓰는 일이 아주 자연스레 좋아졌다. 누구를 만나야 할 땐 산책길이 있거나 돌아다니기 좋은 곳을 선택하였고, 최대한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일상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전에도 오랜만에 평일에 여유 시간이 생겨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바로 한양도성길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성곽길을 걸으면서 도시를 구경하는 것.. 사실 이것의 첫 시작은 2015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여행에서 였다. 두브로브니크의 성곽투어는 내게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이었는데,  바다와 도시를 넘나들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내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을 종종 맴돈다. 붉고 낮은 지붕들을 감싸고 있는 켜켜이 포개진 돌들은 이상하게 내게 포근함을 주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특정 도시의 요새를 돌아다니는 일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니 '움직이기 싫어하는'사람이었을 때라면 ' 한국에도 그런 성곽길 투어가 있구나.' 하고 넘겼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해 두었다가 여유 시간에 한 코스를 선택에 나가보기로 결정했다.


서울성곽을 모태로 한 한양도성길은 조선시대의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길을 다시 복원하여 재탄생시킨 길이다. 총 6개의 구간이 존재한다. 백악구간, 낙산구간, 흥인지문구간, 남산구간, 숭례문구간, 인왕산 구간으로 나누어져있다. 나는 난이도가 상으로 표시되어 있는 인왕산 구간을 선택하고 월요일 아침 영하의 날씨였지만 두둑히 옷을 챙겨입고 출발했다.


이 구간은 한양도성 돈의문 터에서 출발해서 창의문까지 가는 구간이고, 총 길이는 4km이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이 구간은  바위가 많아 걷는 길이라기 보다는 등산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예전과 다르게 몸을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며 앞으로 한발한발 나아갔다.


의지를 가지고 몸을 있는 힘껏 움직인다는 느낌이 이렇게 설레는 것이었던가? 나는 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며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갔다. 쉬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과 가빠진 호흡을 느꼈다. 다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스크 밖으로 거친 숨이 나왔고, 마스크 덕에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올라가는 길의 왼쪽에는 성곽이 자리하고 있다. 돌틈 사이로 서울이 보인다. 이 구간에서는 청와대와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의 품에 경복궁이 성냥갑처럼 정렬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방향 이정표인 남산타워가 보인다. 뜸하게 군부대들도 보였다. (과거 간첩이 넘어왔던 곳)




정상에 오르니 고요했다. 이 고요함이 참으로 신기했다. 1000만명이 모여사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이렇게 새소리만 들려오는 것이 놀라웠다. 내 눈앞엔 메가 시티라 불리는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지만 도시의 소리와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정지된 듯한 도심의 모습. 이것이 인왕산 코스의 참된 매력이 아닐까?


몸을 움직여 높이 올라왔더니, 나에게 이런 선물같은 고요함을 전해줄 수 있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의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맛있을 일인가? 할만큼..하하)


몸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던 나였기에 사실 올라가본 산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오른 이 산이 나에게는 더 특별했다. 가본 산들이 없기 때문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산행이었으니까. 여유가 생기면 다음 코스들도 올라가봐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내려왔다.



나는 예전과 다르게, 2020년의 지금의 나는, 몸을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또 한번 움직여 보기로 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움직임을 나를 새롭고 신기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 나는 오늘도 운동을 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윤동주문학관과 청문학관을 지나쳐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숫자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