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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Jun 11. 2018

#01 확장된 스타워즈의 여성 서사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와 스타워즈의 여성 캐릭터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2018)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근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여성 서사’의 양적‧질적인 발전이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에 와서 더욱 명확해지고 있는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새로운 연대기의 주인공인 레이(데이지 리들리),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진(펠리시티 존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레아(캐리 피셔), 로즈(켈리 마리 트란), 홀도(로라 던), 파스마(그웬돌린 크리스티)까지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상이한 출신과 성격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기존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통용되던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에서 극복했거나 한 단계 나아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과거 헐리웃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대체로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라도 외모나 성격 면에서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에서 많은 남성 주인공들이 다양한 외모와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심지어는 조연과 악역마저 개성 있고 입체적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른바 ‘좋은 여성 서사’ 영화는 아직도 많이 부족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스타워즈 세계관 속의 여러 여성들의 발전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들은 과거의 매체 속에게 여성에게 부여되던 제한적이고 뻔한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며 책임을 완수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광활한 우주 공간에 다양한 출신과 개성을 지닌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스타워즈는 비로소 절반의 연대기에서 보다 확장된 세계의 이야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새 작품인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키라(에밀리아 클라크), 발(탠디 뉴튼), L3-37(피비 월러-브릿지), 엔피스 네스트(에린 켈리먼) 등은 다른 작품들에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다채롭고 개성 강한 인물들이며, 그들의 등장은 스타워즈 세계관의  다양성과 여성 서사를 한층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한 솔로〉는 ‘한 솔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핀오프 영화이므로 앞서 언급한 인물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은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은 물론 영화 속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성격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한의 옛 연인이자 현재 드라이덴 보스의 수석보좌관인 키라(Qi’ra)’로 그녀는 극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우수한 인물이다. 코렐리아 행성에서 한과 헤어진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적으로 서술되진 않지만, 키라의 모습과 활약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키라는 옛 연인 한과의 재회에 기뻐하지만, 본인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후반부 그녀의 행동은 키라가 이후 이야기 속에서 훨씬 중요한 인물로 부각될 것임을 예고한다. 


   두 번째 인물은 밀수단의 멤버이자 베킷과 연인 관계인 (Val)’이다. 발은 등장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밀수단 내에서 가장 터프한 인물로 그려지며 존재감을 남긴다. 그녀는 코악시움을 강탈하는 작전 중에 예상 밖의 변수가 생기자, 동료들의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드로이드들과 싸우다 자폭한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동료들을 구하려는 모습은 〈라스트 제다이〉 도입부에 등장했던 페이지(베로니카 은고)의 희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발처럼 임무와 동료를 위해 장렬하게 폭사하는 여성 캐릭터는 분명 과거 영화 속에서는 드물었다. 


   세 번째 캐릭터는 랜도의 수석 항해사인 ‘L3-37’(L3)인데, 그녀는 사실상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형 드로이드’이자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이다. L3는 우수한 조종사일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사고방식과 성격을 지닌 드로이드다. 스타워즈 영화에서 드로이드들은 언제나 개성 있는 캐릭터로 그려졌지만, 어떤 인종이나 생명체로 인식될 정도로 그려진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L3는 공공연하게 드로이드의 ‘해방’, ‘착취’, ‘동등한 권리’와 같은 구호를 외친다. 투기장과 채굴 식민지에서 착취당하는 드로이드의 모습에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권리와 해방을 요구하는 L3의 모습은 기존 영화에서는 많이 낯선 모습이기도 하며, 또한 그 자체로 여성운동가들의 투쟁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인물은 엔피스 네스트(Enfys Nest)’다. 엔피스는 클라우드 라이더라는 약탈자 무리의 리더이자 잔악무도한 악당이다. 그는 코악시움 열차를 털던 베켓과 한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밀레니엄 팔콘호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엔피스의 정체가 잔혹한 악당이 아니라 붉은 머리의 앳된 여성이며, 은하 제국과 그 협력자들에 맞서 싸우는 저항 조직의 일원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저항 조직을 이끌고 적과 맞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몇몇 캐릭터들의 활용과 연출에 있어서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한 솔로〉는 한편의 독립적인 영화라기 보단 관객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인물의 과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험 활극이자 팬서비스의 영화다. 〈로그 원〉 역시 과거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고 영화 간의 공백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이전 영화들을 통해 사전 지식을 지니고 있는〈한 솔로〉에 비해서 인물과 이야기 전개 면에서 자유롭다. 〈로그 원〉은 한이나 츄바카가 없었기에 새로운 주인공과 인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지만, 〈한 솔로〉는 애초에 그럴 수가 없는 구조다. 이렇게 시작 단계부터 전반적인 방향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일부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캐릭터가 비교적 짧고 제한적인 시간 동안 등장하는 상황에서 주요 인물들이 단편적인 모습으로 남지 않으려면 묘사와 활용에 있어서 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L3에 대한 묘사가 아쉽다. L3는 첫 등장부터 “드로이드 해방”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인간의 억압에 저항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역사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다. R2-D2, C-3PO, K-2SO를 비롯해 개성 있는 드로이드의 등장은 스타워즈 영화의 시그니처나 마찬가지고 L3-37 역시 이에 못지않은 강한 개성을 뽐낸다. 게다가 그동안 영화에서 본 적 없던 여성형 드로이드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와 영화 속 인물들이 L3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또라이’, ‘골칫덩어리’에 가깝고, L3의 까칠하고 푼수 같은 모습은 자주 웃음 포인트로 활용된다.이 때문에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이 전반적으로 희화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L3에 대한 묘사를 보고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집요정해방전선’ 활동을 벌이던 헤르미온느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소설에서 헤르미온느는 정당한 대가 없이 마법사들에게 봉사하고 종속되어 있는 집요정을 보고 분노하고, 차별에 대해 저항하려 한다. 그녀의 행동은 과격하고 철없는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론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오히려 그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희화화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물론 L3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개성 있는 캐릭터다. 여성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이 모두 숭고하고 비장하게 묘사될 필요는 없으며, L3는 드로이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캐릭터 연출에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크리스토프 니먼의 표현처럼 미디어에는 지금도 편견이 있고, "어리석고 우스운 사람을 그릴 때 남성은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은 여성으로 인지”된다.(『오늘이 마감입니다만』, 윌북, 2017) 우리는 과거 시리즈에서 쓰리피오나 자자 빙크스를 특별히 성별과 관련지어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많은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자자 빙크스가 여성 캐릭터로 묘사되었다면, 적지 않은 이들이 자자의 캐릭터성을 곧 성별과 연관지어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L3의 연출은 많은 비판의 여지를 던질 수 있으며, 영화를 보고난 후에 L3가 이전 시리즈에 대한 논란을 비꼬기 위한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종류의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캐릭터 활용에 실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솔로〉와 이처럼 스타워즈의 여성 서사는 과거 시리즈와 다른 상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 캐릭터들이 소비되던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출신, 인종, 성격 등 많은 면에서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특징은 과거 대중매체의 근본적인 한계에 비교할 때, 큰 발전인 동시에 바람직한 변화 과정이라 본다. 이 뿐만 아니라, 스타워즈가 서구 대중문화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브랜드라는 면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비롯한 많은 대중문화와 매체는 단순히 상업적인 가치와 흥행, 대중적 인기를 넘어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게 깊은 영향력을 미친다. 특히 스타워즈처럼 수십 년 동안 많은 대중들을 통해 회자되고 공유된 이야기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며, 국가, 인종, 성별,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더욱 큰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스타워즈의 변화는 이제 주류 대중문화 컨텐츠가 이제 더 이상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쓰여지던 과거로 회귀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상징과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정치, 문화 전반에서 보다 많은 여성과 다양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며, 이러한 요구는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한 솔로〉의 여성 서사가 비교적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과거에 비해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시리즈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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