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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Feb 01. 2019

04. 서로 이해하고 대화한다는 것, <증인>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리뷰 #4 〈증인〉(2018)

*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19. 1. 22. 건대입구 롯데시네마)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증인〉은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지우’를 만나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차별, 편견 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불필요한 수준의 자극적 연출 없이,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로,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고 정리하고 싶다.     


1. 줄거리


과거 민변 소속 변호사로 활발히 활동했던 순호(정우성 배우)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신념을 접고 대형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는 민변 출신으로 이미지가 좋고 실력도 있는 순호를 살인 사건 용의자의 재판에 참여시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려 하고, 순호는 사건의 용의자인 미란(염혜란 배우)의 변호를 맡는다. 하지만 미란이 피해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목격자가 존재했고, 순호는 유일한 증인이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지우(김향기 배우)에게 접근한다.      



2.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증인〉은 지우와 순호, 서로 다른 두 사람 간의 소통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종 사건들은 대체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일만큼 현실적이다. 먼저 극중 수인(송윤아 배우)은 발암 생리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대기업과 싸우고 있으며, 기업은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통해 책임을 회피한다. 이는 얼마 전 많은 여성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발암 생리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또 특수학교가 아니라 일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우가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주변의 편견에 고통 받는 모습 역시 우리 사회 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차별 문제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증인〉의 인물들은 크게 타인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대기업 대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을 변호하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악인들이다. 특히 로펌 변호사인 병우(정원중 배우)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적당히 때가 좀 묻어야” 한다며 순호를 이용하고,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한 지우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약점 삼아 공격하고 조롱한다. 그는 자폐인이 이른바 정상인과 다르며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에 증인이 될 수 없다는 자극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물론 병우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다. 사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재산을 갈취한 만호(김종수 배우)와 그의 사주를 받아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미란, 지우를 괴롭힌 학교 학생들과 지우를 배신한 신혜, 결과적으로 승소하기 위해 지우를 이용했던 순호 역시 그들의 행위만 두고 봤을 때는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변호사는 될 수 없지만 ‘증인’이 되기 위해 법정에 섰던 지우와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대기업의 악행에 맞서 싸우는 변호사 수인, 자폐인인 지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가갔던 검사 희중(이규형 배우), 지우의 어머니 현정(장영남 배우)과 빚을 지면서도 친구의 보증을 선 순호 아버지(박근형 배우) 등의 인물들은 타인을 이용하지 않고 함께 연대하는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증인〉은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현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매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고 때론 모순적인 행동을 한다. 순호는 과거 민변에서 사회적 정의와 신념을 위해 싸우던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와 빚, 벽에 부딪힌 신념 등의 문제로 인해 현실에 순응하고 ‘나쁜 사람’이 되었다. 지우와 점점 가까워지고 사건의 실상에 대해 깨닫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위와 양심,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 미란 역시 개인적인 동기를 지닌 인물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녀는 피해자를 살해하고 지우를 위협했음에도 과거에 입양 보낸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에 범죄에 가담했다. 결국 죄를 자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미란의 모습은 그녀 역시 순호처럼 많은 내적 고민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신혜는 지우의 유일한 친구였으나 어느날 지우를 괴롭히다 순호에게 발각된다. 신혜가 지우를 괴롭히는 모습은 분명 충격적이지만, 신혜의 얼굴에 난 상처나 다른 학생들의 대사를 통해 그녀  역시 지우의 친구라는 점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인물들이 사연과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는 이러한 묘사를 현실성을 부여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단순히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이기에 앞서 우리에게 많은 공감과 여운을 줄 수 있는 이유가 이러한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쁜 사람’인가.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인 상황은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악인이 되길 강요하고 우리는 개인적 양심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한다. 〈증인〉은 그러한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3. 다름을 인정하고 먼저 다가가기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당신이 거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증인〉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먼저 다가가서 소통하는 노력의 중요성이다. 살인 사건 재판의 담당 검사인 이희중 검사는 가족 중에 자폐인이 있었기에 순호와 달리 지우와 교감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지우가 사람들로 가득 찬 법정에 증인으로 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재판정에 세우는데 반대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지우를 배려하며 이해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희중은 순호에게 ‘자폐인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조언하지만, 그리고 해서 처음부터 자폐인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순호는 자폐 장애를 가진 지우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지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의 시각에서 지우와 얘길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희중의 조언대로 점점 지우의 세계에 가까워지려 노력했고 지우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순호와 희중이 지우와 관계 맺는 모습은 사회적 약자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른바 ‘정상인’들의 이기적인 태도에 메시지를 던진다. 최근 강서구 공립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편견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타자와의 소통과 이해라는 기본적인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부 지역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장애 아동 학부모들은 죄인처럼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행위는 전형적인 ‘나쁜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 앞에서 순호가 얘기했던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먼저 그들의 세계로 다가가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증인〉이 순호와 지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영화의 메시지는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부족과 제도적 미비,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었으나 여전히 배제되어 있는 다문화가족에 관한 논의, 최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제주도 난민 문제 등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집단과 존재에 대한 편견 등의 문제가 산재해있다. 다른 존재, 비정상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점점 더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세계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참고자료]


조윤주 기자,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 1억 대상작 문지원 작가의 '증인', 파이낸셜 뉴스, 2016.09.30.

서울 강서 특수학교 설립 진통 거듭…설명회 '아수라장'(종합), 뉴스1, 2018.03.26

이하나 기자, 시민단체 “안전한 생리대는 여성인권… 제조사, 소송 취하해야”, 여성신문,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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