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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Mar 22.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희, 『우상』

브런치무비패스 영화 리뷰 _ 〈우상〉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우상』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봉 : 2019. 3. 20

연출 : 이수진

출연 :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장르 : 스릴러

DAUM 영화 정보



1. 들어가며

2. 기본적인 인과관계 파악조차 방해했던 대사 전달

3. 흔한 한국 영화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공주'와 '우상'

4. 여성, 결혼, 남성 장애인의 섹슈얼리티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희의 미친 존재감

6. 마치며



들어가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상'(偶像)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혹은 개신교적 의미에서 "하느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우상은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찬양되는 인물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맹목적으로 숭배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상'이라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도덕적이고 청렴한 이미지로 가장 강력한 도지사 후보로 각광받는 '구명회'(한석규)다. 그는 대중의 우상이자 스스로 우상이 되려는 인물이다. 구명회는 대외적으로는 서민적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다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는 욕망을 품고 있으며,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데 철저한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는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하자 경찰에 자수하도록 종용하는데, 이는 그가 도덕적인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데 아들을 경찰에 자수시키고 피해자에게 고개 숙이는 구명회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대중이 그를 한층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동료 의원의 말처럼 '드라마'가 있었던 구명회는 대중들에게 우상화되고 마치 '예수'처럼 숭배된다.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게 하느냐'라는 대사는 구명회와 같은 정치인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우상이 되어가고, 또한 그 실체가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결말에서 폭발 사고 후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프롬프터에 대사를 띄운 채 연설하는 구명회는 청중들의 눈에는 역경과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은 우상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석규 배우가 이 연설 장면을 위해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참고했다는 것 사실도 꽤 흥미롭다.



한편 '유중식'(설경구)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들 부남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인물이다. 부남은 4살 정도의 지능을 지닌 지체장애인이었고, 중식의 맹목적인 우상이라 할 수 있었다. 영화의 도입부는 자신이 부남의 자위를 도와주었다는 중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또한 부남의 성욕 해결을 위해 함께 성매매업소를 여러 차례 방문한 전과도 있었다. 부남의 사망 후에 그는 아들과 함께 있다가 실종된 며느리 최련화를 찾아 헤맨다. 사실 중식은 련화를 찾았다기보단 련화가 임신한 '아이'를 찾아 헤맨 것에 불과했으며, 끝내 그의 '우상'을 상실한 뒤,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이 '테러'는 모든 것을 상실한 중식의 분노 표출이자 대중의 우상이 된 구명회에 대한 복수였지만, 대중들은 감히 이순신 동상을 파괴한 중식에게 분노한다. 이순신 동상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숭배되고 찬양받는 '우상'이며 우상숭배의 대상이기도 한데, 이러한 장면은 거짓 우상인 구명회에게 환호하고 '겨우' 동상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뺑소니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분노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듯 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 인물은 조선족 여성으로 부남의 아내이자 중식의 며느리인 '최련화'(천우희)다. 련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이며 뺑소니 사고 직 후, 실종되어 영화 중반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련화는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한국에 건너왔으며,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성매매업소에서 일한다. 그는 시민권을 획득하고 안정적인 신분을 얻기 위해 부남과 결혼했는데,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련화는 한국 사회구조 속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역동적이고 강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불법체류자이자 경제적으로 하층 계급인 동시에 성적으로 착취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 있다. 그렇지만 련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며, 자신을 착취하는 남성과 상층 계급에게 주저 없이 보복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계급 전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에서 련화는 한줌의 권력도 없음에도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 인물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 응징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다. 영화 후반부에서 련화가 명회의 어머니에게 입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대목이나 집을 찾아가 구명회에게 보복하는 장면은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의 존재감, 계급적인 전복으로 인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처럼 영화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은 제각각 다른 욕망과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인물들이며, 세 배우의 훌륭한 연기와 맞물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우상』의 러닝타임이 144분으로 상당히 긴 편이지만, 비교적 지루하지 않게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캐릭터와 스토리가 나름대로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인 인과관계 파악조차 방해했던 대사 전달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리 영화에 집중하더라도 이야기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우상』은 배우들의 열연과 흥미로운 초반 서사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가 되는데 실패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일관되게 지적한 문제가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족 캐릭터들의 사투리와 발음을 알아듣기 힘든 것은 사실적인 연출이라 치더라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의 대사와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 주연 배우들이 타 작품에서 발음, 대사 전달로 인해 이 정도로 큰 문제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녹음, 음향, 믹싱 등 어디선가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다고밖엔 할 수가 없다.


출입국사무소에 수감된 련화와 중식이 벽을 사이에 두고 수화기로 대화하는 장면처럼 의도적으로 대사와 정보 전달을 어렵게 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정말 영화적 연출인가 싶기도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기본적인 서사 전달 자체를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기에 이를 의도된 연출로 보긴 힘들다. 대사 전달력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영화적 상징, 메시지를 떠나서 많은 관객이 사건의 기본적인 인과관계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왜 영화를 집중해서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재차 확인해야 하는가? 많은 한국 영화들이 대사 전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지만, 이 영화만큼 순수하게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을 수 없어 난처했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상』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이지만, 많은 상징과 은유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각각의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관객마다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이는 분명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지만, 기본적인 정보 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상징과 메시지에 대한 해석은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한다. 등장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고 왜 이런 방향으로 서사가 흘러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흥미를 잃게 되는데, 관객의 다양한 해석과 상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수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우상이라는 제목이나 특정 해석에 너무 국한되지 않길 바란다고 밝힌 바가 있다. 하지만 감독은 기본적인 스토리 이해에 실패한 관객이 전체 이야기를 온전히 감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간과한 것 같다.


“오히려 ‘우상’이라는 영화 제목 때문에 저희 영화가 포장돼 있는 것 같아요. ‘우상’이 누구인가에 국한해서 볼 것이라서요. 소재에 국한하기보다는 하나의 장르로 봤으면 해요. 전체를 감상한다면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진 감독 인터뷰 중)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717607)


또한 전체를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장면 장면들이 '이건 무슨 상징일까?',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남과 낙엽, 그 낙엽을 밟는 구명회, 동료 의원에게 '예수'라 불리는 구명회, 구명회가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노골적으로 울려 퍼지는 '아뉴스 데이(Agnus Dei, 하느님의 어린 양)', 련화를 납치하고 두 눈을 가린 상황에서 빛 속에 가려진 구명회, 신의 사자가 된 듯 대중들로부터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이 된 구명회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우상이자,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이순신 동상, 그저 우상에 불과한 동상의 머리를 날렸을 뿐인데 국민적인 질타를 받는 피해자의 유가족이었던 중식 등 이 영화의 수많은 장면들이 관객들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좋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마더!』(2017)나 『곡성』(2016)과 같은 영화들이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감독의 구상 속에서만큼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메시지들이 존재하겠지만, 정작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친 게 아닌가 싶어 매우 아쉽다.






흔한 한국 영화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공주'와 '우상'


이수진 감독의 전작인 『한공주』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였으며, 천우희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공주'라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많은 분노와 공분을 사게 만든 실제 사건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참혹한 실태를 폭로했지만, 전달 방식에 있어서 불필요할 정도의 자극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불편함과 찝찝한 기분을 전달하는 연출은 다른 영화에도 많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명백히 실제 사건의 피해자를 연상케 했고, 무겁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집중했다고만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영화 개봉 직후는 물론 현재도 인터넷 검색창에 한공주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한공주 엑기스', '한공주 몇분', '한공주 수위', '한공주 장면 시간대'와 같은 키워드들이 줄줄이 뜬다. 최근 조금씩 공론화되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통해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그저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들만의 강간 문화,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었음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있지만, (물론 이는 최근에 와서 이례적으로 많이 공론화되고 있을 뿐 이미 너무나 오래전부터 수많은 여성단체들에 의해 제기됐던 우리나라 남성들의 깊은 병폐였다) 심지어 한공주와 같은 영화조차 많은 남성들에 의해 이른바 '딸감'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고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일부 남성들의 부적절한 성인식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성적 욕구 충족, 술자리의 안주거리 정도로 소비한 것은 한국 사회의, 아니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공유하는 뿌리 깊은 문제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수진 감독은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분노와 충격,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각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수준 낮은 연출이자 불필요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에 불과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가해자의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공포와 분노를 자극했던 충분히 좋은 영화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공주는 사실적인 전달이라는 핑계로 옹호될 수 없다. 물론 한공주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여성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이지만, 이수진 감독은 본인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충분한 고민 없는 연출로써 그들이 포르노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물론 이는 『한공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수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은 폭력, 성범죄, 살인의 대상이자 피해자로서 도구적으로 활용되어 왔는데,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런 연출과 장면들이 의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자극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나홍진의 『추격자』,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VIP』 등 많은 작품들이 무슨 종특 인양 공유하는 이런 연출은 리얼리티를 위한 것도 아니고, 여성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활용할 생각밖에 못하는 연출자의 의식 부족과 뒤떨어지는 역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인마, 범죄자의 다층적인 심리, 복합적인 성격과 잔혹성을 강조하는 데는 심혈을 기울이면서, 여성 캐릭터는 이름조차 없는 시체에 불과하거나 사건 전개에 불필요한 선정적인 장면을 집어넣고 피해자가 고통스럽게 유린당하는 장면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한다. 명확한 의도와 목적, 이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사실상 포르노그라피나 스너프 필름과 별반 다름없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호평을 받는 스릴러 장르 영화들 중에서 굳이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어도 관객들로 하여금 더 많은 공포와 고통을 유추하고 체험하게 하는 영화도 많다.  『우상』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영화, 특히 많은 남성 감독들의 문제를 공유한다.


구명회가 점점 더 잔혹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통스러운 연출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굳이 주사기로 련화의 발톱 사이를 고문하는 장면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천우희 배우는 인터뷰를 통해 이 장면 촬영 중에 실제로 주사 바늘에 찔려 피를 흘렸으나 몰입을 방해할까 봐 고통을 참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청테이프를 너무 감고 있었던 나머지 피부가 상하고 짓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몰입, 감독의 영화에 대한 타협 없는 열정 등으로 미화하기에는 문제의식이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촬영 환경이 그만큼 열악했고 배우들이 고생해야 했다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불과 2016년에도 영화 『고스트랜드』 촬영 중 여자 배우인 테일러 힉슨이 영화 촬영 중 파스칼 로지에 감독의 지시로 유리창을 깨다가 부상을 입어 얼굴 70바늘을 꿰매어야 했던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준 바 있었다.


스포츠 조선, 기사 캡쳐






여성, 결혼, 남성 장애인의 섹슈얼리티


 『우상』의 단점 중 하나는 중심이 되는 서사 외에도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고민과 제대로 된 활용 없이 흩어져 버린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의 이중성과 비리, 경찰과의 결탁, 이제는 지겹고 뻔하다고 표현하기조차 지겨운 한국 영화 속 조선족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 그중에서도 조선족 여성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성적 착취, 불법성매매업소에 대한 묘사, 출입국사무소의 좁은 복도를 가득 메운 불법체류자들에 이르기까지 러닝타임 길다고 해도 이 많은 이야기를 모두 제대로 담아내긴 어렵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한국 사회 내에서 조선족 여성들의 위치와 활용 방식이었다. 영화는 불법체류자로 불안정한 신분을 지닌 조선족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모습이 대체로 전형적이고 단편적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아쉽다. 물론 련화라는 인물이 구명회와 유중식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만큼 매력적이지만, 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가 대중문화 속 일반적인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련화의 존재감이 이정도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우상>의 련화(좌)와 <미씽:사라진 여자>의 한매


개인적으로는 『우상』을 보면서 이언희 감독의 『미씽 : 사라진 여자』(2016) 와 등장인물인 한매(공효진)가 떠올랐는데, 한매와 련화는 중국 출신으로 사회적으로 이른바 '비정상인'에 분류되는 한국 남성과 결혼했으며, 성적 착취와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매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아이를 잃고 도망쳤고, 결국 타인의 아이를 유괴하는데 이르지만, 련화는 자신과 결혼하고서도 결혼 서류에 서명해주지 않는 남편을 직접적으로 응징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존과 차별, 결혼 문제 등과 관련된 부분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한매는 한국 농촌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에 시집 온 여성이며, 차별과 폭력에 시달렸다. 한국 농촌의 국제결혼은 결혼할 여자가 없는 농촌 남성들이 이른바 '정상가정'을 구축하여 가사, 육아, 성적 욕구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정상적인' 형태의 결혼이 아니라 매매혼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나이 많은 남성이 조선족, 동남아시아 지역의 나이 어린 여성을 아내로 맞고, 인종차별,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련화의 경우, 성매매업소 종업원이자 지체장애인인 부남과 결혼했다는 점에서 역시 비슷한 맥락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영화 도입부 중식의 내레이션은 아들의 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직접 자위를 해줬다는 이야기다. 이수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장애 남성의 성욕구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이야기했으며, 영화 속에서 중식은 아들이 성욕구를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해서, 자위를 해주고 심지어 성매매업소까지 함께 다녀온 것으로 묘사된다. 장애인들의 성적 욕구와 성행위에 대한 주제는 물론 사회적으로 많이 논의되지 못한 이야기이고,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와 성매매업소 이용 등에 관한 논의조차 철저히 남성중심적 섹슈얼리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의 성폭행 피해자 중 대부분은 여성이며, 여성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 문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직장이나 보호기관 내에서 장애인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지적장애 여성을 끌고 가 성폭행하는 사건 등이 수시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중식은 지체 장애인 아들이 '정상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유부남'이라 지었고, 부남의 성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성매매업소에 출입하며 결혼을 알선하지만, 이런 상황 자체가 여남 간에 작동하는 젠더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중식과 부남은 서민 혹은 하층 계급 남성이자 지나칠 정도로 지극한 부성애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지만,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하층 남성 계급조차 여성의 성을 구입하는데 익숙하며, 조선족 여성과의 결혼으로 욕구의 결핍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한매나 련화는 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 다중적인 착취 속에서 고통받는 가장 낮은 계급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영화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여성-남성 간의 젠더 권력 격차와 하층 계급 여성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드러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희의 미친 존재감


앞서서 소개했던 것처럼 최련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인물이자 생동감 있는 인물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누군가를 살해했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영화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이수진 감독에 따르면, 련화는 "중국 사회가 자본화되어가며 사회문제로 대두된 첩 문화를 이야기"하는 인물이며, "아들을 낳으면 호적에 올리고 딸이면 버림받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고 한다. 영화 중간 련화의 대사 등을 통해 유추해볼 때, 련화를 죽이도록 사주한 사람은 아마 '아버지'가 아닐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이도 정확히 듣지 못해서 알 수가 없다)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필사적인 련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하층 계급에 속하는 여성들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영화 속 련화의 모든 행동은 철저히 생존을 위한 행동이며, 이것이 그녀의 행적에 일정한 당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최하층의 계급에 속하는 련화가 자신을 등쳐먹고 조롱하고 위협한 인물들을 끝까지 쫓아가 복수하는 모습은 『우상』 전체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련화의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영화 후반부에서 천우희 배우의 열연과 강렬한 존재감은 련화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들 모두 대체로 각자의 캐릭터를 잘 연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희 배우와 최련화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눈빛, 표정, 대사 몇 줄 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천우희 배우의 임팩트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장면은 대체로 련화의 캐릭터가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면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칼에 찔린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입은 아이대오"라는 련화의 대사가 실감 나는 이야기가 더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영화의 완성도는 별개로 복잡한 이야기 없이 『킬빌』, 『몬스터』, 『악녀』 등의 영화처럼 악에 받친 조선족 여성 캐릭터인 최련화가 복수를 위해 구명회를 추적하여 가슴팍에 식칼을 박아 넣고 응징하는 액션 영화가 더 취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배우들에게 감탄하면서 또 여러 아쉬운 부분들 때문에 화도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좀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최련화, 천우희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말 이 정도는 아니지만...



마치며


영화 상영 전 스크린에는 #우상_나만의해석 이라는 이벤트 참여 메시지가 떠있었다. 영화 관람 후 나만의 영화 해석을 SNS에 공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왜 이런 이벤트가 있었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이수진 감독이 '불친절하다는 것' 역시 상대적인 부분이고, 작품의 여백은 관객들의 채울 수 있다는 얘길 했는데, 아마도 해석은 상대적이고 여러 가지로 읽힐 여지가 많으니 특정한 이야기로 국한시키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관객의 해석은 감독이 의도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들리지 않는 대사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서사가 영화에 대한 집중을 방해했으며, 이는 영화에 대한 개별적인 해석에 앞서 기본적인 영화 감상과 이해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본적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 검색해봐야 할 정도라면 해석은 상대적이고 다양하다는 말이 다소 민망하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천우희 배우는 굉장했다.








[참고자료]


조지영 기자, [인터뷰④] 천우희 "'우상'에서 눈썹 밀고 주삿바늘 찔려..아픈줄 모르고 연기해", 스포츠조선, 2019.03.18.(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391661)


박재환 기자, [인터뷰] 이수진 감독 “한공주 이후 5년, 우상을 만든 이유”, KBS미디어, 2019.03.20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38&aid=0000023704)


전효진 기자, [DA:인터뷰] 이수진 감독 “‘우상’은 낯선 상업영화, 매번 마블만 볼 수는 없잖아요”, 스포츠동아, 2019.03.20(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717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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