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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Apr 20. 2019

가족이란 무엇인가, <고양이 여행 리포트>

브런치무비패스 영화 리뷰_ <고양이 여행 리포트>


이 글은 브런치 2019년 4월 16일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된 무비패스 영화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관람한 후 봐주시기 바랍니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2018) 

The Travelling Cat Chronicles / 旅猫リポート


감독 : 미키 코이치로

원작 : 아리카와 히로, 『고양이 여행 리포트』

출연 : 후쿠시 소타, 다케우치 유코, 타카하타 미츠키, 히로세 아리스, 오오노 타쿠로, 야마모토 료스케




1. 들어가며 / 줄거리

2. 아름다운 영상미, 생생한 인물들

3. 가족이란 무엇인가

4. 피할 수 없는 어색함  




1. 들어가며 / 줄거리



<고양이 여행 리포트> 주인공 '사토루'(후쿠시 소타)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반려묘 '나나'(타카하타 미츠키)를 맡기기 위해 이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사토루는 어떤 중요한 사정으로 인해 가족처럼 소중한 고양이 나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자 친구들을 찾아 떠난다.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초등학교 친구였던 코스케(야마모토 료스케)였다. 유년 시절 사토루는 코스케가 발견한 고양이 '하치'를 기르게 되고, 하치는 사토루의 첫 번째 고양이이자 소중한 가족으로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사토루와 코스케가 교토로 수학여행을 떠난 사이, 사토루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사토루는 이모인 노리코(다케우치 유코)에게 입양되어 떠났다. 

 다음에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때 친구였던 치카코(히로세 아리스)와 스기(오노 타쿠로)였다. 두 사람은 과거부터 동물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으며, 현재는 부부가 되어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치카코와 스기는 사토루가 나나를 믿고 맡길만한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두 사람이 기르던 개인 토라마루가 나나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바람에 무산된다. 결국 사토루는 부모님의 묘가 있는 큐슈를 거쳐 나나와 함께 노리코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천천히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사토루의 고양이였던 나나도 사토루의 곁을 지킨다.   


 예고편을 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너무 뻔하지만 그래도 눈물은 펑펑 흘리고 나오겠네'였다. "네가 고양이를 맡길 정도면 엄청난 일이 있단 거네"라는 대사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관 씬을 통해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렸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고양이와의 이별을 통해 관객의 눈물을 짜내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단순히 고양이와 인간의 사랑과 교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진 않았다. 전체적인 소재와 서사는 비슷한 작품들이 공유하는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으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2. 아름다운 영상미, 생생한 인물들



사토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이모 노리코에게 입양된다. 노리코는 판사로 일하고 있는 독신 여성이며, 직업 특성상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기에 사토루도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일본 곳곳에 거주하며 여러 친구를 사귀었다. 사토루가 나나와 함께 이별 여행을 떠나며 찾아다니는 친구들이 여러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비록 한 곳에서 오래 거주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지만, 자신의 소중한 고양이를 맡길 만큼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 영화다. 사토루가 나나와 함께 차를 몰고 떠나는 여정을 통해 일본 각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크린 속에 담아냈다. 눈부신 바다와 항구, 하늘에 펼쳐진 무지개, 넓게 흐드러진 유채꽃밭,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후지산 등 보는 순간 관객들이 경탄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둘의 여정 내내 펼쳐진다. 영화의 주요 공간들이 대도시가 아니라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기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복잡하지 않고 단촐하지만 소소하고 따스하다. 아름다운 배경과 영상미가 과하거나 지나치지 않기에 사토루와 나나의 여행을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큰 이야기는 사토루와 나나의 여행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둘은 긴 여정의 중간에 친구들을 만난다. 이 인물들은 단순히 주인공의 여정 사이에 만나는 납작한 조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살아있는 인물이며, 사토루와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먼저 코스케는 사토루와 유년 시절을 함께 한 친구로서 굉장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코스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성장했고,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그 그늘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을 물려받았는데 먼 길을 찾아온 사토루의 사진을 촬영해주고, 이 사진은 결국 사토루의 마지막 사진으로 남았다. 코스케는 나나를 통해 아버지의 폭력적인 발언으로 인해 집을 떠났던 아내와 재회하려는 '한심한' 남자이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성장한 아동 폭력의 피해자다, 코스케는 아내와 함께 새로운 고양이를 찾아보라는 사토루의 조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트라우마와 맞서기로 하고 상처를 극복하게 된다. 물론 이 대목에서 주먹을 꽉 쥐는 연출과 코스케의 표정은 너무 직설적이고 유치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치카코와 스기였다. 두 사람은 강아지를 구조하고 있던 사토루를 도와준 것을 계기로 절친한 친구가 된다. 치카코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매사에 당당한 여학생이었는데, 소꿉친구인 스기는 그런 치카코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현재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함께 반려동물 동반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사토루를 반갑게 맞아준다. 사실 과거 세 사람 사이에 은근한 삼각관계가 있었기에 성인이 된 현재에도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런 장면들이 애틋하면서 한편으론 귀엽게 그려진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변함 없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마지막 인물은 사토루를 입양한 노리코다. 친척들은 홀로 남은 사토루를 맡는 것에 질색하며 보호시설에 맡기자했고 이에 화가 난 노리코는 자신이 사토루를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이 영화에서 노리코는 미혼 여성이며 판사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인물인데, 그는 '결혼도 안 한' 노리코가 어떻게 아이를 기르냐는 친척들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사토루를 입양한다. 노리코를 못마땅해하는 친척들의 모습은 미혼의 전문직 여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전문직 여성이 자녀와 가족에 대해 충실할 수 없을 것이며, 많이 배워서 따지고 든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전형적인 편견과 차별 중 하나다. 노리코는 다소 어설프고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푼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토루를 위해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여준다.   


    




3. 가족이란 무엇인가



만약 <고양이 여행 리포트>가 단순히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반려묘와 이별하는 이야기만 다루는 영화였다면 그리 큰 감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토루와 나나의 긴 이별 여행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토루는 어린 시절 가정적이고 화목한 부모님, 고양이와 함께 살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게 된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일 때 겪었던 사고는 사토루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 때문에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하치는 사토루에게 단순히 가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사토루에게 하치와 꼭 닮은 나나가 왜 단순한 반려묘가 아니라 가족 이상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입양을 결심한 노리코는 사토루에게 사실 그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토루는 사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내다 버린 '어떤 부모'의 아들이었으며, 노리코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언니 부부에게 입양되었다는 것이다. 코스케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실언을 했을 때, 사토루가 '어떤 사람은 부모가 되선 안된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그의 과거와 이어져 있는 장면이었다.  노리코는 입양하기로 결심하자마자 그런 얘기부터 한 자신을 탓했지만, 사토루는 이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은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사토루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영화 속 가족에 대한 묘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퇴근 후 맥주를 마시는 아버지와 가사를 하며 아들의 짐을 싸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전형적인 '정상 가족'에 대한 묘사였고, 어린 사토루가 어머니에게 히스테리 부리지 마라고 외치는 장면은 절로 한숨을 나오게 했다. 덕분에 이 영화도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와 성별 역할 등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토루가 사실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아이이며, 친부모가 아닌 사람들을 통해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곤 하지만 법적, 사회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특정 형태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혈연관계라고 해서 온전히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코스케의 아버지와 사토루의 친부모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코스케의 부모는 어린아이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말과 태도로 일관하였고, 이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명백한 아동 폭력이었다. 사토루의 친부모는 아이를 낳고도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 채 내다 버린 범죄자였다. 반면 모두로부터 외면받은 아이를 기꺼이 입양한 양부모는 사토루가 누구의 자식 인가 와 상관없이 소중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노리코는 다시 한번 혼자가 된 사토루를 과거 언니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입양하기로 결심하였으며, 우리는 사토루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사토루의 고양이인 하치와 나나는 가장 슬프고 힘든 순간에 곁을 지키고 위로해주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반려동물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 기억되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영화가 동물과 인간의 사랑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던 건 이러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4. 피할 수 없는 어색함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는 아무리 일본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견디기 힘든 높은 벽이 존재한다. 바로 일본 특유의 과장된 화법과 만화스러운 분위기다. 문화적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신과 함께><부산행 > 속 신파와 오글거림에 치를 떠는 몇몇 관객들에게 <고양이 여행 리포트> 속 연기와 대사, 일부 상황들은 몰입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비교적 자연스러운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차적으로 나나와 다른 동물들이 이야기의 화자로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으며, 타카하타 미츠키의 더빙 분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어색한 느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영화를 보면서 타카하타 미츠키의 목소리와 연기톤이 고양이 나나의 캐릭터와 분위기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도 강했다. 결말부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겠다 생각하고 손수건을 챙겨갔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았던 건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클라이맥스에 해당할 나나와 사토루의 이별 장면에서 나나가 사토루를 애타게 부르는 모습은 분명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더빙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어색함,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연기까지 더해져 차오르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만들기 충분했다. 원작에서 고양이가 중심 화자로 등장한다고 들었고 이 설정을 나름대로 충실히 따른 게 아닌가 싶지만, 결과적으로 영화 속 장면들과 나나의 대사가 자연스럽게 섞이진 않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관객의 집중과 몰입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나나의 대사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조금 자연스럽게 덜어냈다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집중력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원작 소설이나 만화 등에 대한 고증을 중시하는 일본 영화의 특징 때문인지, 각본에 참여한 원작자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서 감정을 전달할 때 꼭 배우의 대사만 활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동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작년에 개봉했던 <베일리 어게인>(A Dog's Purpose)과도 비슷하다. 이 영화에선 <겨울왕국>의 올라프로 유명한 조시 게드가 '베일리'라는 강아지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개와 고양이의 입장에서 말하고 사고하는 연출 자체가 다소 어색하고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한편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촬영 과정에서 몇 배는 더 고생하게 마련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캡틴 마블>에서는 구스라는 고양이가 등장하여 매력을 뽐내지만, 구스를 연기하기 위해 4마리의 고양이가 동원되었으며 촬영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서 나나를 연기한 고양이는 '톰'이라는 똑똑한 친구인데, 감독에 따르면 톰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고양이라도 어디까지나 고양이는 고양이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나나가 등장하는 장면과 타카하타 미츠키의 대사가 도통 매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고양이는 평소대로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대사는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이겠으나 관객은 이로 인해 조금은 어색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한이쟈 / haan.y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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