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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Jun 27. 2019

옳고 그름, 선택과 책임, 양심과 욕망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리뷰_<칠드런 액트>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드라마 영국 2019.07.04 (개봉 예정)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리차드 에어

(주연) 엠마 톰슨, 스탠리 투치, 핀 화이트헤드


   


피오나 메이(엠마 톰슨)는 런던 가정법원 소속의 유능한 판사로서 철저한 법리적 검토를 토대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주요 사건에서 명확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오나는 직장에서는 물론 퇴근 후에도 업무에 골몰하며 시간을 보낼 만큼 철두철미하고 뛰어난 커리어우먼이지만,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는 법정에서처럼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피오나와 남편 잭(스탠리 투치)의 관계는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 섹슈얼한 부부의 관계보다는 남매에 가까워졌고 잭은 소홀해진 두 사람의 부부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결국 잭은 퇴근 후에도 다음날 재판 준비로 인해 정신없는 피오나에게 “바람을 피울 것 같다”며 충격적인 고백을 털어놓지만, 피오나는 복잡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고 회피한다.       


한편 고민에 빠져있던 피오나에게 긴급한 사건이 배정된다. 백혈병으로 인해 입원한 17살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이 치료를 위해 필요한 수혈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덤과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으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겠다고 주장하였다. 애덤의 종교적 신념과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법정을 떠나 병동에 입원한 애덤을 찾아간다.       

    




1. 종교적 신념과 아동의 행복     


영화의 제목인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는 1989년에 제정된 영국 아동법을 의미한다. 이 법안의 핵심은 “아동의 복지를 중시한다”로서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법적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안에 따라 지방 정부와 각 부처, 민간단체 등은 아동의 보호를 위한 각종 법적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이 법은 피오나가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이다. 애덤 이전의 샴쌍둥이 사건에서 피오나는 수술하지 않으면 둘 다 사망할지 모르는 샴쌍둥이에 대해 한 아이라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므로 수술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샴쌍둥이의 부모와 언론은 비윤리적이며 신의 뜻을 인간이 좌지우지하는 행위라 비판하였다.


피오나는 종교적 신념과 미성년자의 생명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애덤과 부모는 신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으며, 굳건한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애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고 있었으며, 비록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수용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달 후면 성인이 된다곤 해도 애덤은 아직 17살의 미성년자였으며 피오나는 애덤의 선택이 과연 부모와 주변 어른들로부터 강요되고 영향받은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선택인 지 확인해야 했다.


이 상황은 영화를 보는 우리가 어떤 종교, 가치관,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고민을 던져준다. 누군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사회적으로 이단 내지 사이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애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교가 애덤의 가족에게 평화와 안정을 주었기에 그들의 신념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의 주장이 윤리적, 과학적으로 그르다 할 지라도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애덤은 본인의 선택임을 강조하며 수혈을 거부하지만, 피오나는 애덤의 행복과 미래를 생각하여 수혈을 지시하였다. 이는 모두 아동의 복지를 우선하는 법에 근거한 것이며 어느 것이 보다 나은 미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피오나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2. 선택과 책임    

 


사실 애덤의 수혈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은 이 영화의 전반부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의 두 번째 축은 피오나의 또 다른 선택이다. 오랜 결혼 생활과 바쁜 업무 속에서 피오나와 잭의 부부 생활은 무미건조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여전히 소중한 관계임에 틀림없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잭은 바람을 피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으며 피오나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피오나는 잭의 행동을 비난하고 화를 내면서도 그와의 대화를 미룰 뿐이다.     



그런데 고민에 빠진 피오나 앞에 상상도 못 한 변수가 나타난다. 그가 생명을 구했던 애덤이 피오나의 행적을 따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병동으로 가 애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와 노래를 알려준 피오나로부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은 애덤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고, 그의 세계는 피오나로 가득 차게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뉴캐슬까지 자신을 스토킹 한 애덤을 보고 피오나는 자신의 선택이 많은 것을 뒤흔들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크나큰 책임을 느낀다.



사실 흔들린 것은 애덤의 세계만이 아니었다. 피오나는 함께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이 몽상가 소년에게 큰 책임을 느끼는 동시에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없던 욕망을 느낀다. 물론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년이 세계일주를 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며,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이성적인 판사였던 피오나가 이 예민하고 통제불능의 사춘기 소년과의 감정적인 관계를 선택할 리가 만무했지만,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어렵게 유지해오던 피오나의 감정도 끝내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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