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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쟈 Aug 07. 2019

끝나지 않고 이어질 의지, <김복동>

브런치무비패스 영화리뷰 <김복동>(2019)


* 이 글은 8월 1일 아트나인에서 진행된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이달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복동>(My Name Is Kim Bok-Dong)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수십 년 간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김복동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미디어몽구로 잘 알려진 김정환씨가 2011년부터 8년 동안 김복동의 삶과 행적을 기록하였으며, 뉴스타파와 정의기억연대의 공동기획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부터 영화로 개봉할 계획은 아니었으나, 영화의 주인공이자 당사자인 김복동을 따라 일본 내 조선학교를 방문한 후에 스크린에 상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침략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과거사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뜨거운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었으며, 여전히 해결이 요원하게 보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20세기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나며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세웠으며, 인접한 오키나와, 조선, 중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화한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군국주의 제국으로 변모한 일본의 욕심은 이에 그치지 않았고, 칼날은 필리핀, 인도차이나 반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전쟁은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렸으나, 잔혹했던 전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피해자를 남겼다. 특히 전쟁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징병, 징용으로 동원되어야 했던 조선은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일본의 전쟁범죄와 과거사가 이어진 냉전 역사와 한국의 독재 정치와 맞물려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명백한 전범국이자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의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그들의 과거를 무마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대해 가장 강력히 항의했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피해자를 대변하기보단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했으며 제대로 된 협의와 사과 요구 없이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체결된 한일협정(1965년)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가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위안부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와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도리어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피해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커졌으나, 이러한 노력은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내각 사이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졸속 체결됨에 따라 다시 한번 피해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피해 당사자들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이 졸속 합의로 인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모두 종식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질 의지     


김복동은 이 오랜 싸움과 투쟁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은 현재 우리나라와 전 세계인들이 함께 연대하여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는 이 싸움이 지금보다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던 때부터 피해자이자 목격자이며 인권운동가로서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일본 정부를 규탄해왔다. 그는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자 함께 하는 이들에게 기둥이 되는 사람이었다. 영화는 김복동의 말과 행적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약 100분여의 그리 길지는 않은 다큐멘터리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강한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10대에 전쟁터로 끌려갔던 김복동은 20대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많은 피해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경험을 주변에 털어놓는 일도 쉽지 않았고 이른바 평범한 삶을 영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과 기억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여러 피해자들을 위해서, 또 앞으로 계속해서 이 땅에서 살아갈 어린 학생들을 위해 자신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목소리를 높여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1992년 유엔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로서는 최초로 참석하여 과거 전쟁범죄와 참상에 대해 고발한 것은 일본의 전쟁 범죄와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아주 결정적인 증거이자 계기가 되었다. 김복동의 노력은 그가 90세가 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소녀상 설치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리는 행사에 참여하였는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처럼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나라도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 한다는 그의 강인한 의지와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대목은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졸속 위안부 합의 후 평화나비 활동가들이 온몸을 던져 반대하고 목소리 높이던 장면이었다. 피해자와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끌어냈으며,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를 오해로 인한 화해가 필요한 문제처럼 몰고 가는 행위들이 분노를 자아냈다. 이것이 픽션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고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까지 떠올라 과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가능한 것인지, 요원한 일처럼 보일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김복동과 피해자들의 기억이 잊혀진 과거로 남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희망을 품게 된다. 분명한 사과 의사 없이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극적이었던 정치권, 비상식적인 언사를 늘어놓은 일부 대중, 우리 사회의 피해자에 대한 편견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미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외로운 싸움을 해왔음에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김복동과 그가 지켜온 사람들은 기나긴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에 참여하고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세계 곳곳에서 함께 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피해자들의 기억과 현재 우리가 싸워온 기록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젊은 활동가와 어린 학생들을 통해 계속해서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영화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로 김복동의 의지를 전달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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