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쟈 Oct 16. 2018

02.젖가슴을 모르면 으른이 못 되나, <펭귄하이웨이>

브런치무비패스 영화 리뷰 #02 - <펭귄 하이웨이>(2018)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개인적인 영화 감상이자 해석에 불과합니다.


'젖가슴을 모르면 으른이 못 되나?'

<펭귄 하이웨이>



안녕하세요. 이쟈입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펭귄 하이웨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원작이나 작품 자체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하나라고 해서 약간은 기대했습니다. 물론 보고 오신 분들의 후기가 대체로 처참했고 지적하는 부분도 비슷해서 불안하긴 했지만요. 그리고 마침내 시사회 당일, 영화가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함께 보고 온 사람에게 많이 많이 미안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이 영화에 대해 굳이, 길게, 정성스럽고 상세한 후기를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상미가 어떻고 이런 문제를 떠나서 시작부터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비교적 편한 형식으로 영화에 대한 저의 감상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원작을 따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최대한 비슷하게 옮길 수도 있고, 영화만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도 있겠고요. 하지만 관람 후에 영화의 주제가 뭔 지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남자들의 유년기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모에화로 점철된 영화를 2시간 동안 보다 보면 지치다 못해 화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는 이런 종류의 영화, 애니, 문학 뭐 그런 것들을 이미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후술 할 여러 가지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서사 자체도 다소 난해한 경향이 있고 극의 분위기도 초반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지루해서 11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성인에게도 비교적 힘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1.

최근 온라인 상에서 한국 문학과 남성 문인들의 식상하고 저열한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비판, 패러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펭귄 하이웨이>를 보는 내내 그런 종류의 비판과 재기 넘치는 풍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감독과 제작진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남은 건 '젖가슴'입니다. 영화는 '엄마의 가슴과 누나의 가슴은 뭔가 다르다'라는 초등학교 4학년 아오야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묘사되듯이 그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영리하고 조숙한 어린이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똑똑한 친구라 노트에 보고 들은 것,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면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 '실험'도 합니다. 

 아오야마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바로 동네 치과의 예쁜 '누나'입니다. 다 큰 어른인 '누나'의 가슴에 '호기심'을 느낀 아오야마는 수시로 '누나'의 가슴을 응시하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은 아오야마의 시선을 따라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바스트모핑 등 그녀의 몸을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이 소년이 성인 여성의 가슴에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누나'의 집에 단둘이 있게 된 장면에서는 잠이 든 '누나'의 얼굴과 몸을 관찰하는 장면도 있고요. "누나, 얼굴, 예쁨, 완벽, (로맨틱)".  아오야마의 첫 질문이 "엄마와 누나의 가슴은 뭐가 다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니, 이 맥락에서 아오야마가 품고 있는 마음이 성적 호기심과 성인 여성에 대한 첫사랑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물론 어린 소년이 성인 여성에게 성적 호기심을 느낀다는 소재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성인 여성과 사춘기 소년이 만나 호기심을 충족하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서사는 상당히 많은 창작물에서 클리셰처럼 활용되어왔던 것이니까요. 예전에는 무비판적으로 봤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대체 남자는 여자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나 싶죠. 더군다나 이런 장면들은 대체로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펭귄 하이웨이>도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아오야마는 '누나' 앞에서 여러 차례 자신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라고 강조하고 자신이 어른이 되려면 며칠이 남았다는 대사가 수미상관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아오야마가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유년의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고, 누나'는 '성적 호기심'이던, 인생의 조력자이든 간에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계기이자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뻔한 장치였지만 아오야마가 마시는 쓰디쓴 '커피'는 어린아이가 '어른'을 경험하는 뭐 그런 의미에서 넣었을 것 같고요. 결과적으로 소년은 일련의 사건 후에 으른이 되어간다 뭐 그런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네, 그리고 이 여성 캐릭터는 그 정체가 무엇이었건 간에 결국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에 존재한 도구였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아오야마의 가슴타령이 너무 비상식적으로 자주 사용된 덕분에 성장이고 생명이고 이런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누나'를 움직이는 가슴 취급한 것이라고 생각될 뿐입니다.



3.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건 나름대로 중요한 캐릭터인 이 '누나'에게 '이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누나는 단지 '누나'일뿐이고, 성장하는 소년의 환상과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존재합니다. 헐리웃 영화들이 최소한의 '젠더 개념'을 반영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백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펭귄 하이웨이>에 적용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불합격입니다.(페미위키, 벡델테스트 항목)


-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유감스럽게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여성 캐릭터인 '누나'는 단지 '누나'일뿐이고 이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는 하마모토뿐이고, 엄마나 여동생도 짧게 부수적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누나'가 일종의 자연적 존재, 신적 존재, 우주적 존재라서 후반부에라도 이름이나 이름에 상응하는 호칭을 얘기해줬거나, 하다못해 본인의 이름을 말해주는데 관객만 들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연출이었다면 납득이라도 될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연적 존재이든 뭐든 누나는 아오야마의 젖가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름 없는 여성으로 전락합니다. 118분 내내 누나 가슴 타령만 하는데, 이 누나가 신인지, 자연인지, 대지인지, 우주인인지, 그냥 상징적인 어떤 여성인지 뭔지 정체가 뭔지 알게 뭡니까. 이 아이는 "여자=가슴"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혹은 어떤 창작자들은 자기 유년기에 여성의 가슴에 이렇게 집요하게 집착했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될 뿐입니다. 연출 의도가 어찌 되었건 간에, 이 영화의 주요 여성 캐릭터는 이 남자 아이의 시각에서 대상화된 존재라는 한계를 지니게 됩니다.



4.

이 영화의 심각한 문제는 주인공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시작부터 '가슴' 타령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똑같은 소릴 반복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대체 뭐가 귀엽고 사랑스럽겠습니까? 영화 설정상 상대적으로 영특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과연 쟤네가 어딜 봐서 초등학생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어린 친구들이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해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이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귀엽진 않습니다. 특히 하마모토가 '상대성이론'을 들고 있는 장면은 솔직히 너무 하다 싶습니다. 역시 "아아, 이것은 -라는 것이다"의 나라.


재차 말하지만 가방을 맨 초등학교 4학년이 입만 떼면 '가슴가슴' 하는 건 전혀 순수해 보이지도, 귀엽지도 않습니다. 초중반에 잠깐 나오고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가슴' 타령과 일본 소년 만화 특유의 팬티 서비스씬 같은 코드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아직도 이런 성격의 연출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며 제작진이 이런 주제에 대해 별다른 의식이 없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저는 아오야마를 도저히 어린아이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똑똑하다는 설정을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시선은 결코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라 음습하고 불쾌한 성인 남성의 것입니다. 정확히는 과거 유년의 첫사랑과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에 대한 기억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남성이 이 영화의 화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영화나 문학을 통해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런 '아름다운 추억'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입장과 의사가 결여되어 있는 일방적인 대상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가게에 전시된 케이크를 '가슴케이크'라고 부르는 아오야마의 표현이 초등학교 4학년의 순수한 언어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상상과 유머는 우리가 회사, 학교, 술집 등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중년 남성들의 저질 음담패설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사춘기 소년이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지도 않냐고요?"아니요? 저는 안 그랬는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대체 남성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계신 건지? 개인적으로 저는 군대에 있을 때, 간부들이 여자 가슴으로 비슷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걸 자주 들어서 낯설지가 않더군요.그리고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관객들이 소년 아오야마를 응원하기”를 바랐다라고 하시던데, 얘가 어디가 이뻐서 응원해야 합니까? 아오야마를 통해 ‘나도 예전엔 저랬는데...’라는 생각을 품고, 소년의 궁금증을 응원해줬으면 했다 라는데, 저는 예전에 저런 적 없답니다. 어떤 연령대의, 어떤 집단의 남성들은 첫사랑을, 혹은 다른 소녀와 여성들을 가슴으로 기억하곤 하는 모양이죠."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슴이었다", 아니 "어떤 여성들은 어떤 남성들의 가슴이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5.

이렇게, 제가 본 <펭귄 하이웨이>는 남자아이가 자신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성인 여성에게 성적 호기심을 느끼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으른'이 된다는 그런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성장 스토리의 외피를 쓴 다른 이야기이다라고 하는 게 좀 더 제작의도에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영화가 이 모양인데 그런 게 대체 뭐가 중요할까요? 감독이 생명의 죽음과 탄생, 재생과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후반부의 연출, 인물 간의 대화, 아오야마와 하마모토가 연구하던 '바다', 마을을 휩쓴 '바다'의 모습 등은 난자, 생명의 잉태, 재생 같은 걸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젠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저는 그것이 단순히 부분적인 결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2018년에 극장에 걸릴 영화라면, 특히 이 영화처럼 전연령관람가에 '펭귄'을 앞세워 많은 어린 관객들이 볼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라면, 적어도 여자=가슴, 가슴은 커야한다 수준의 처참한 대사가 무비판적으로 남발되진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남자이고, 남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해서 여성 캐릭터들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빻'았다고 해서 영화에서 그걸 똑같이 반복하면 안 되죠. 다수의 관객이 심각하다고 느낄 정도로 불필요한 대사와 연출을 반복한다는 건 창작자가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고민도 없고 의식도 없다는 걸 드러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여자 아이이며 영화가 "나는 우리 아빠와 동네 오빠의 불알이 어떻게 다른가 연구 중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면, 과연 이 영화가 전연령 관람가이었을 것인지, 혹은 제작이나 됐을지 의문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통햏 남성들의 성적 호기심과 이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유년 시적의 추억이라는 핑계로 합리화되면서 왜 여성들의 성적 호기심과 경험은 끊임없이 억압되고 침묵되어 왔는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네요





물론, 이상의 후기는 모두 저의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글의 문장과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글의 맥락과 내용면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2018. 10. 17. 01:03)






매거진의 이전글 01. 낯선 형식과 익숙한 소재로 풀어나가는, <서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