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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n 07. 2019

유시민의 글쓰기특강

유시민, 생각의 길. 18.12.10 완독


다음 두 글을 천천히 읽어보시라.

  1.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미학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실패로 돌아간 미학적 전위 운동을 찾아낸다.

(중략) 그런데도 우리가 너무 쉽게 정치는 항상 미학적인 것을 훼손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치안과 정치를 동일시하고 순수 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경험의 자율성을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또한 미학을 미학적 자율성과 미학적 타율성 중 어느 하나와만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2. 우리 역사에는 문화·예술의 선각자들이 정치적 혁명운동에 뛰어든 결과 혁명적 문화·예술운동도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 사례가 있다.

(중략)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치는 언제나 문화·예술의 가치와 정신을 훼손한다고 결론짓는다.

권력 행사와 정치를 구별하지 않고, 순수 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경험의 자율성을 똑같이 취급하는 습관 때문이다.

문화·예술이 사회에서 완전히 독립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과 반드시 종속되어야 한다는 관점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옳을 것이라고 믿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시작


  내면에 표현하고 싶은 가치와 생각이 가득한 당신. 이제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겨두지 않고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이가 읽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추천


  위의 두 글은 모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발췌했다. 1번 글은 진은영 작가의 <문학의 아토포스>의 한 대목이다. 2번 글은 이것을 유시민이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쓴 글이다. 위의 두 글 중 당신은 어떤 것에 눈길을 더 주었나? 당신은 둘 중 어떤 모습으로 글을 풀어내고 싶은가? 그대의 대답이 2번이라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유시민은 1. 논리적인 2. 간결하고 쉬 3. 우리말의 무늬가 살아있는 글 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핵심


1. 논리 글쓰기의 철칙

2. 글쓰기 기능 향상법 & 기초체력 쌓기

3. 못난 글을 쓰지 않는 법





1. 논리 글쓰기의 철칙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누구라도 시간을 들여 계속 읽고 써야 한다.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이다. 많이 읽어야 한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셋째, 쓴 글을 세상에 내보여라. 혹평을 두려워하지 말라. 


"글을 썼으면 남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혹평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혹평도 반갑게 듣고 즐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글이 는다. 남몰래 쓴 글을 혼자 끌어안고만 있으면 글이 늘 수 없다." 93p.





2. 글쓰기 기능 향상법 & 기초체력 쌓기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요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요약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이 쓴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높은 수준의 독해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독해력을 키우고 글쓰기를 익히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속에 담긴 '어휘, 문장의 양과 질,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기준으로 다른 책 보다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되는 '전략적 독서 목록'을 소개한다.


"텍스트를 요약하는 것은 논리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요약을 하려면 텍스트를 읽고 이해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텍스트를 요약할 수 없다. 아기가 첫걸음을 떼려면 먼저 혼자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일어서지 못하면 걸을 수도 없다. 발췌 요약이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면 텍스트 독해는 두 다리로 일어서는 것과 같다." 97p.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소개하는 전략적 독서목록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정의를 함께 실현할 수 있을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해충과 잡초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재산, 지식, 권력을 소유하면 삶이 행복하고 의미를 가지게 될까?"

외 29권.


"서희는 귀밑머리를 남은 머리에 모두어서 머리채를 앞으로 넘겨 다시 세 가닥으로 갈라 땋는다. 하얀 당목 적삼에 뱀같이 꿈틀거리는 새까만 머리채는 때마침 들창을 통해 비쳐 들어오는 환한 아침 햇빛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머리를 엮어 내리는 하얗고 가는 손, 그것은 마물 같고 열 손가락에 오목오목하게 박힌 손톱은 이른 봄날에 날아내리는 매화꽃 이파리 같았다. 거울을 보기 위해 검은 눈동자는 한 켠으로 몰리었고 흰자위가 넓어진 얄팍한 눈매가 몹시 아름답다. 길게 찢어져서 확실한 골을 이룬 눈꼬리도 또렷한 윤곽과 더불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지>, 박경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재인용. 138p.
유시민은 <토지>를 우리말 어휘와 문장의 보물창고라고 생각한다.





3. 못난 글을 쓰지 않는 법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기르고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쉬운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읽기 좋고 듣기 좋아야 잘 쓴 글이다. 


"소리 내어 읽어봄으로써 못난 글을 알아보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언어(言語)는 말과 글이다. 생각과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입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글말)이 된다. 말과 글 중에서는 말이 먼저다.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174p.

 



잘 못 쓴 글, 못난 문장과 결별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은 무엇일까?


첫째, 한자말을 오남용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일본말과 서양말 오염을 피하려면 두 가지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바로 일본말 토씨(조사, 助詞)와 피동형 문장이다. 또한 서양말의 완료 시제와 복수형 어미 오남용도 심각한 문제다.

셋째, 글은 단문이 좋다.

넷째, 우리말의 무늬·어감을 살려 어울리는 단어를 조합해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좋은 문장이 된다.



  


하이라이트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감상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특강'이다. 한 학기나 두 학기 동안 꾸준히 듣는 '강의'가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세한 문장론이나 글쓰기 훈련을 위한 구체적인 훈련·실천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 자신의 글쓰기 철학과 경험에서 얻은 큼지막한 조언을 담았다.


군 복무 중인 지금, 나는 제출해야 할 리포트도 없고 논술식 학기말 고사를 치를 필요도 없다. 그저 '요즘 글을 쓰고 싶은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책 표지가 눈에 밟혔고, 그래서 가볍게 집어 들었다. 책을 읽은 배경이 이러하기에 책 내용이 조언으로 머무르는 점이 좋았다. 수많은 수사학 원리들과 훈련법, 암기사항들이 담겨있었다면 읽을 필요성을 못 느껴 답답했으리라.


책 속 조언은 개인적으로 옳다고 생각다. 가볍게 의식하면서 글을 쓰기도 좋다. 특히 글을 쓸 때면 단문을 쓰는 것이 글을 이해하기 좋다는 작가의 말이 자 떠오른다. 책에서 예시를 통해 느낀 단문의 호흡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쓰는 문장이 길어지면 흠칫한다. 쓰던 복문을 단문 두 문장으로 나누게 됐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원리와 조언이 있지만 책이 모든 것을 아울러 향하는 방향은 '효과적인 의사전달'이다. 학력이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 사람들이 읽거나 들을 때 이질감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글. 오해의 소지를 남기거나 논증 과정에서 잘못을 범하지 않는 글. 이런 글이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글이다.  내가 쓰는 글이 그런 글이기를 바란다. 또한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글'을 쓰기를 바란다. 작가가 명확한 문장으로 자신의 글쓰기 철학을 정리해준 덕분에 나도 나의 철학을 꽤 분명히 새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이런 내용이 꼭 필요한가?'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작가가 유학하던 시절 독일의 한 재단에서 받은 장학금 이야기, 갑자기 튀어나온 육아 관련 내용 그리고 구체적인 작가의 전기(傳記)를 읽을 때 그랬다. 책 머리글에서 작가가 '자기 자랑으로 보일 수 있는 적지 않은 개인적인 일화'에 먼저 양해를 구한다는 말로 시작했기에 '그렇구나-'하며 읽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가볍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심심할 때마다 가볍게 담는 일상 글이든, 진지하게 '각'잡고 쓰는 글이든 상관없다.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당신의 글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과 통하는 조언을 잘 새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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