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행복한 삶'을 사는 가치관을 쓰다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엇을 시작하려 해도, 머릿속에서 앞서가는 완벽한 계획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일이 틀어져버리면, 그만둬 버리기 일수다.
그렇게 다 덮어놓고 현실로부터 눈을 가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간.
열정적이고 바쁘게 살다가도 그런 시간이 닥치면 무기력하게 다 놓아버린다.
9월 중순부터 2주 정도를 무기력하게 지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으나,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또다시 조급함과 분노 때문에 더 무력해진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잠을 청한다. 익숙하게 돌아오는 그런 시기구나 했다.
동기부여가 부족한가? 누군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 유언장을 써보기도 하더라. 그래서 일기장 한편에 '유언장' 제목을 달고 써내려 보지만 내게는 별다른 감흥 없이 숙제처럼 느껴져서 곧 그만두었다.
완벽주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무기력해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완벽주의 성격은 크고 완벽한 삶의 목표를 보고 나아가며, 그 과정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삶의 큰 그림'은 화려하지 않은 일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제대로 하려는 마음은, 일이 불만족스럽거나 틀어진 경우 실패라고 단정 짓는다. 더 이상 의욕이 생기지 않게 된다.
이런 생각은 현재를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했다. 현재 하는 일, 화려하지 않은 노력은 무가치하게 느껴져 집중하기 힘들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에 집중하는 대신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며 도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날이 많았다.
현재의 가치를 부정하는 생각은 정신적인 자해와도 같았다. 내게 무기력증은 한계에 다다른 순간 발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마음을, 생각을 고쳐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가치관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미래의 언젠가를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믿음. 지금의 희생이 미래의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많은 이의 암묵적인 믿음은 확실히 틀린 것 같다. 행복은 희생을 통해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은 언제 막을 내릴지 알 수 없으며, 삶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래는, 언젠가의 현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만족하고, 지금 행복하고 싶었다. '지금이 행복한 삶'을 사는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오늘의 만족”과 “지속적인 만족감” 사이에서 균형 잡기)
행복은 어떤 감정일까? 나는 일희일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만족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이 안정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그런 삶의 질에서 느끼는 안정감, 만족감.
그런 전제 아래, 내게 필요한 가치관은 "삶의 예측 불가능함"과 "지속성" 사이에서 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이나 내일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100년이 넘게 살아갈 수도 있다. 아니, 10년 20년 앞을 보고 살다가 오늘 죽을 수도 있고, 오늘만 살 것처럼 살았는데 그런 삶이 100년이 지나도록 이어질 수도 있겠지.
그런 존재인 우리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확신하며 지금을 희생하지는 말아야겠다.
청춘페스티벌 강연에서 가수 요조가 전하는 말이다. 한 순간의 사고로 꽃다운 나이의 동생을 잃고, 그 슬픔을 디딘 생각을 청년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낭만"을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지금 즐겁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된 노력, 아픔, 치부를 등한시하고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만큼 성장할 필요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6lqjBeKq-Q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내하고 더 단단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노력은 꼭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고 희생하는 일이어야만 할까? 노력하고 인내하는 시간이 “온전하게 현재로부터 시작되고 그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각이 더 필요하다.
첫 번째. 나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노력의 원동력이 외부에서 기인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남보다 더 잘나기 위해서 사는 삶이 그렇다. 다시 말해, 네가 하는 행동의 원천이 열등감, 분노, 허영심인 삶이다.
그런 생활에는 자신은 지워지고 공허한 타인의 시선이 가득 찰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째로 희생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기인한 노력은 십중팔구 '성취'를 위한 노력이다. 보여주고 소유할 수 있는 목표를 위한 노력이다. 성적, 지위,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다.
“노력”이 “오늘의 만족”과 양립하기 위해서는 그 노력은 “나 자신에게서 기인한 노력”이어야 한다. 내 개인적인 삶에 타인을 최대한 배제하고, “성찰을 통해 삶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오늘 하는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 미래가 아닌 오늘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큰 그림은 필요한 순간에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동기부여이자 노력의 이유라면, 매일 견뎌야 하는 노력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막연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더 현명한 태도는 역시 지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지금 하는 노력을 통해 “오늘의 당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의식하자. 과정이 곧 결과인 여정 속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수험생이라면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미래의 결과를 위한 희생처럼 느낄 수도 있다. 공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 누구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당연한 일인데, 준비하는 과정은 숱하게 참고 견뎌야 하는 고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노력하는 시간이 지루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면 도저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져도,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것임을 안다. 다른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소중하니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지난여름, 소중한 사람들과 한강에 놀러 갔다. 사람이 많은 주말 오후였다. 초저녁 여름 바람이 시원하고,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으니,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행복했다. 문득 실감이 났다.
이런 생활을 안정되게 일궈가려면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잘 살아야지 싶었다. 불안정한 생활이 주는 불안감과 막연함을 잘 알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진정한 만족감이란 오늘 만족하면서도, 삶에 필요한 성취들을 잘 준비해서 이뤄나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언젠가”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기 위한 지혜들을 잘 배워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새로이 써가는 가치관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