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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관 편집장 Jun 30. 2022

아담의 원죄와 자유의지

    

 히브리인들에게 메시아가 올 것이라 기록한 옛 언약이 구약성경이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강림과 그의 생애를 조명하고, 그가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새 언약이 신약성경이다. 구약성경의 첫 사람은 아담이다. 아담은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 과정에서 마지막 6일째 창조된바 피조물의 영광을 상징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창조주의 통치 권한을 위임받은 아담의 탄생이 가장 핵심이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살면서도 추위나 더위를 모른 채 낙원의 모든 기쁨을 향유하며 즐거운 일상을 영위했다. 길짐승, 들짐승, 날짐승 등 모든 피조물이 쌍쌍이 짝을 이루며 행복해할 때 영특했던 아담은 자신의 고독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은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는데 그의 이름이 하와였다. 아담이 인류의 시조로서 동산의 모든 과실을 따 먹을 수 있으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금기였다. 바라볼 수는 있었지만 “손대고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메시지가 하나님의 헌법이었다. 


 마귀를 상징하는 지혜로운 뱀이 날마다 하와를 유혹했다. “죽기는커녕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되고 영생하는 존재가 될 터인데 왜 이런 좋은 찬스를 놓치느냐”고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뱀은 날마다 찾아와 유혹했다. 고민은 길었지만 시험에 빠져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마침내 뱀의 끊임없는 보이스 피싱에 넘어간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도 자기와 같이 나눠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순간 즉시 바로 깨달았다. 마귀의 유혹은 가짜였고, 거짓이었음을. 하나님의 음성이 진짜였음을. 그러나 장탄식을 늘어놓을 틈도 없이 그들에게는 절망이 찾아왔고, 죽임이 찾아왔다. 그리고 인생들에게 기나긴 실낙원의 시간이 열리게 되었다. 아담의 이름 뜻은 사람이었고, 하와의 이름 뜻은 생명이었다. 고로 아담은 하나님의 헌법을 생명 다해 지켜야 했고, 하와는 생명이었으므로 낙원의 생명을 이어가게 해야 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그들은 두 번째 아담이 나타나 구원해주기까지 자녀들에게 생명 같은 신앙을 전수해야 했다. 아담에게 자유의지가 있었지만 그는 신의 헌법을 내팽개치고 원죄를 지었다. 아담의 원죄는 인류에게 전가돼 모든 인류는 어느 누구도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운명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아담의 원죄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유혹에 빠진다. 권력이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멀쩡하길 바라지만 영생하게 할 줄 알았던 권력의 어퍼컷 한 방에 벌렁 나가떨어지게 된다. 국민을 섬기고 떠받들겠다고 선거철에 입이 닳도록 그렇게 철석같은 약속을 해 놓고 헌신짝 버리듯 하루아침에 배신자로 돌아선다. 어리석을 때는 자신이 배신했는지도 모를 만큼 분별력을 잃고 무지몽매에 빠진다. 그러니 주변의 충고는 듣기 싫은 잔소리요 소음일 뿐이다. 그것이 충언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할 때는 이미 만시지탄에 불과하다. 대선 지선에 이어 선거 결과는 진작 나왔다. 그럼에도 새로운 권력의 차지를 위해 여야에서 또는 같은 정당끼리 정쟁이 너무 지루하게 이어진다. 치솟는 물가에 정말 하루 한 끼 해결을 어디서 해야 하나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은 힘이 든다. 화려한 꽃 잔치에 잡초가 뽑히듯이 민초들의 삶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뜯겨나가도 높은 분들이야 권력의 단맛에 취해 걱정이나 할는지 궁금하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픈 상처 싸매주며 상대가 잘할 때는 칭찬도 해주면서 상생하는 정치권이 되길 주문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제 위기의 절벽에 내몰리는 소상공인들에게 추가 대출과 장기 분할 같은 세부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긴 시간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코로나19로 엉망진창이 됐던 부분들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사하다. 


 필자도 신문사의 경영난에 수천만 원의 채무를 갚았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만 원 정도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8년 분할로 갚으니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중이다. 근일에 유나 양의 가족이 세간의 뉴스의 초점이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수억 원의 채무가 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왔다. 마지막 가는 길에 펜션의 분리수거를 하는 장면이 찍힌 영상에 필자는 감정의 둑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얼마나 많은 심사숙고에 번민에 번민을 거듭했을까.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너무 애잔한 심정이다. 참으로 놀라운 뉴스거리는 서울 모처에서 20여 명의 집단 스와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어서 무혐의 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자유연애 시대라지만 금도를 너무 넘어섰다. 더하여 코로나19가 소멸하기 전에 원숭이 두창이 한 발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밀접 접촉의 영향이 큰바 특히 동성 간의 접촉에 경고를 발하는 이런 세태를 잘 살펴 처신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글의 결론이다. 우리에게 지혜로운 처신이 필요하다. 자유의지로 선한 것을 택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아담의 원죄 같은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멀고, 돈의 원죄에 빠져 살인과 납치도 서슴지 않고, 금지된 선악과 같은 타락한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다가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할까 심히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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