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제 글엔 순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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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엔 순서가 없습니다.
아침 다음엔 새벽이, 머리 다음엔 발가락이, 코끼리 다음엔 점보라면이 나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아무것도 쓰지 않아야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검은 땅에 고사리가 자라나는 것처럼요. 지난겨울엔 도토리 대신 이 사실을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펜을 든 건, 순전히 속이 허해서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깜깜한 밤에, 손을 휘젓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