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콕콕 소리가 났다. 훌쩍훌쩍 울음도 터져나오고. 평일에는 그래, 남편아, 열 한 시, 열 두시에 귀가할 수도 있다지만, 오늘은 토요일 아니신가요? 사람이 기대라는 게 있는 법이다. 밥먹고, 옷 입고, 양치하고, 대소변을 보고, 양말과 신발을 신고 등등의 것을 스스로 하는 게 아직은 서툰, 사실은 거의 엄마가 해줘야하는 두 아이를 이끌고, 미술학원에 다녀와서, 점심을 해먹이고, 졸려서 온갖 짜증을 발사하는 아이들을 다시 옷을 입혀 차에 태워 제제의 언어치료 센터로 향했다. 둘은 다행히 가는 차에서 평화로이 잠들었다. 엄마는 한숨을 돌린다. 아이가 치료시간에 비몽사몽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푹 자서 수업을 빠지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오전시간을 아주 절도있게 잘 사용한데서 안도의 한숨이 휴 하고 나왔다.
언어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하루 두 곳을 다녀와서 지치는지, 배가 고프다고 난리법석인 아이들을 목욕탕에 집어넣어 얼른 씻겼다. 기저귀 안 하겠다고, 옷 안 입겠다고 도망다니는 애들을 겨우 붙잡아 옷을 입혔다.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에게,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텔레비전을 들이 밀었다. 토요일 저녁 6시 반이었다. 아빠가 있다면, 적어도 텔레비전을 보여주진 않았을 것이다. 설거지통도 거실도 아이들의 방도 엉망인 채로, 새우를 버터에 굽고, 국을 데우고, 나물을 담고, 밥을 담고, 아이들을 식탁에 앉혔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이, 태블릿 피씨에 눈이 가 있으니, 저녁 먹는 속도가 더디다. (이런 작은 생활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또 에너지가 드는 법인데, 아직 엄마 혼자서는 그것을 섣불리 해결하지 못 하는 게 못내 속상하다.) 양쪽에 한놈씩 앉히고, 좌우로 번갈아가며 떠먹였다. 둘다 감기약을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응가 한 건씩을 또 해치우고, 드디어 재울 준비에 돌입하자, 아빠 등장.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아이들을 재우기 직전에 등장한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남편아! 응?!
그럼에도 막말은 삼갔다. (막말로 힘을 빼면, 내가 제일 힘들다. 그러니 화 내지 않기로. 그래, 이건 대체로 나를 위해서다.) 사실, 남편을 생각하면, 짠한 때가 많기도 하다. 우리집 큰 아들. 배우자는 부모자식 같이 살아갈 때,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남편이 때로 아들 같다. 남편도 나를 모자란 큰 딸처럼 대할 때가 많다.
남편이 늦는 건, 다 살자고 하는 짓임을 나는 안다. 그건 일종의 깊은 신뢰에서 오는 것이니, 비난할 재간이 나에겐 없다. 그가 어디가서 술을 먹거나, 혼자만 운동하고 오거나, 놀다 오지 않음을 알기에. 그래도 화는 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부모중에 엄마, 나 하나로 주말까지 두 아이 육아 버티기를 하는 건 분명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평일에는 기관에 간다. 하지만, 첫째 제제를 오전중에 데리고 나와서, 평일 중에 여기저기 치료를 다니는 요즘은 체력이 부친다. 그렇다고 치료를 미루기엔, 아이의 변화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그러니 스스로 읏샤읏샤 힘을 낼 수밖엔 없다.
"미안!" 하며 등장하 남편. 남편도 나의 마음을 다 안다. 밥을 차리려는 나를 떠민다. "나 직원들이랑 퇴근전에 밥 간단히 먹고 왔어. 나가서 한 시간만 걷다가 와. 맛있는 거 먹고 와도 좋고." "설거지도, 빨래도, 청소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해. 당신이 왔으니, 나는 비로소 집안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인데, 집이 이렇게 엉망인데, 어딜 가라는 거야? 그러고도 에너지가 있으면 난 자고 싶어." "그래, 집안일 다 해. 그런데, 한 시간만 나갔다 와서 해. 애들 재우고 같이 하자. 너 이러다가 미치면 안 돼."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남편에 대한 불만과 걱정은 사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남편의 번아웃, 오버워킹은 남편의 정신건강이나, 본인의 삶의 균형에도 문제가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남편에게 조금만 덜 일하고 오라는 요청을 조심스레 해보지만, 남편도 본인에게 최선인 정도로 이미 살고 있을 것임을 안다. 아이들이 잠든 토요일 밤은 남편에게 그래서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그러니 남편이 밤늦게까지 영화보는 등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한 토요일 밤을 보낸 뒤의 일요일 하루일과는 또, 남편과 가족모두에게 힘겨운 하루가 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적정선 까지만 이라는 게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남편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도 없음은, 우리 모두 이 상황에 최선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두 살자고 발버둥임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남편과 나는 부모인 채로, 버티기를 하고있는 주말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오셔서 나를 도와주시는 친정어머니도, 한 번 오셨다 가시면, 무척 지쳐서 돌아가신다. 더구나, 손을 다치신 다음에, 우리 집에 다녀가신 이후로 회복 속도가 더뎌서 더 모시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면, 혼자 육아가 너무너무 힘들 땐, 아이를 돌보는 시터나 도우미가 이따금 함께 하면 좋겠지만, 나의 성격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느낌이다. 거의 전업주부에 가까운 나의 처지에, 그 결정은 또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고. 그냥 무척 힘든 날도 있다고 이렇게 투덜대고 나면, 또 버틸 힘을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니, 버텨보자!
아이 사진들로 꽉 채워진 사진첩. 내 사진이 이토록 없을 수가! 오늘을 잘 버틴 나를 칭찬하는 의미로, 억지로라도 스마일! 셀카를 찍어본다.
혼자 두 아이를 보다보면, 두 아이 모두 컨트롤이 어려워, 소리부터 지를 때가 잦다. 아이들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을 쓸어내려본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하지만, 아이들도 다 안다. 엄마가 힘들구나, 내가 좀 덜 힘들게 해야지 하는. "엄마 미안!" 곧장 사과하는 21개월 둘째의 눈빛에서 오늘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래, 모두 다 어떻게 잘하니? 내일은 좀 덜 화내고, 좀 더 차분하게 아이들에게 잘 설명하고, 엄마의 화난 감정이 아니라, 전해야할 메시지만 잘 전할 방법으로 전해 봐야지. 다짐해 본다. 남편아, 내일은 어디 대단한 곳으로 안 가도 좋으니, 번아웃 일요일 말고, 보다 즐거이, 서로 사랑하는 일요일을 보내보면 좋겠어. 응?! 이렇게 끄적여두면 보고 느끼시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어제보다, 지난 일요일보다는 나은 내일을 살기로 해보자.
남편과 싸우고나면, 온갖 에너지들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나마 주말에 가장 긴 시간 함께 하는데, 싸우기까지 하면, 대화할 시간이 또 그만큼 삭제된다. 그러므로 안 싸우고 육아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다. 육아를 함께할 인력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서 좋을 일이 없기 때문에. 아침에 눈 떴을때, 아이들을 놀이공원에는 못 데려갈 망정, 재잘재잘 신나게 수다 떨 엄마아빠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해줘야 하니까. 그게 나한테도 더 행복한 쪽이니까. 이래저래 나와 남편을 쓰담쓰담 토닥여본다.
이제 화가 좀 풀렸으니, 설거지 하러 가자 엄마야.
오늘의 '일단 참음'을 자족하며.
*이 글을 쓰고, 한참 후인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지금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을 붙들고 했던, 나의 사투가 역력하다. 그리고 나는 얼마간은 서툰 엄마였음을 돌아보게된다. 꼭 그렇게 바쁘게 내 계획대로 모든걸 다 해낼 필요도 없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기다려주고, 한 번만 더 참았다면 더 예뻤을 시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