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용 Sep 24. 2018

평양냉면 먹는 법

평양 옥류관 지배인이 말하는 평양냉면 먹는 법

주류로부터 고립된 생물이나 문화는 혼자만 이상하게 달라진다. 여기서 물론 '이상하게'는 주류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해외 교포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한국문화'의 경우 1960-70년대 느낌이 나면서도 해당 현지 방식이 뒤섞인 듯한 것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주류'인 한국에서 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다만 관점이 없어지면 그건 이상하다기 보단 그냥 '독자적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갈라파고스의 생물은 '이상하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서울에서 "평양냉면을 좀 먹는다"라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평양냉면은 자본주의의 과도한 맛 공해로부터 도피한 수도원 같은 느낌이었다. 자극적인 식초나 겨자를 치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느낌에는) 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맹맹한 국물에 '맛이 있다'라는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자기 암시를 통해서 자신의 혀에서 없는 맛을 창조해 내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평양냉면을 좀 먹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각종 "평양에 있지 않는" 혹은 "평양에 있었던" 혹은 "평양에 있었을법한" 평양냉면은 각자의 고고한 종교적 자태를 뽐내며 그 미세한 차이에 자존심을 상처받을 정도였지만, 믿지 않는 자의 혀에 따르면 다 비슷비슷한 무맛끼리 허공에 휘두르는 빈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 평양냉면 문화의 본류, "평양에 있는" 평양냉면집인 옥류관의 지배인이 나와서, 평양냉면 맛있게 먹는 법을 말했다. "식초, 겨자, 고춧가루 듬뿍 치고 먹는다" 라니... 이 무슨 순결한 평양냉면의 성수에 고춧가루 뿌리는 소리란 말인가?


이제 남한의 평양냉면은 북한의 진짜 평양냉면에 대해 세 가지 길이 남아있다. 평양의 평양냉면은 더 이상 평양냉면이 아니고 서울의 평양냉면만이 진짜 평양냉면이라고 종교 개혁을 선언하든지, 아니면 평양의 평양냉면도 평양냉면이요 서울의 평양냉면도 평양냉면이라는, 둘은 하나이되 경전 해석의 차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만들든지, 그도 아니면 짜장면이 중국 음식이 아니고 한국 음식이듯이, 서울의 평양냉면은 더 이상 평양의 음식이 아니고 남한 고유의 음식이라고 주장하든지, 이 셋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과연 남한의 평양냉면은 통일 후 어떤 길을 걸을까? 매우 궁금한데, 사실 더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어쨌든 계속 주류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혼자만 달라지는 길은 두 가지인데, 주류는 그대로인데 혼자만 이상하게 변형되든지, 아니면 주류는 계속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혼자만 이상하게 보존되는 방향이다. 


서울에서 발견되는 비주류 평양냉면 문화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무척 궁금하다. 평양냉면은 원래 그렇게 슴슴한 맛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음식이었는데 북한이 변해버린 건가? 아니면 양념이 적었던 시절에 모든 음식이 다 심심하였는데 남한의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평양냉면에만 발전된 양념의 혜택을 차단하여 박제화 시킨 건가?


작가의 이전글 자동 대출 기계를 만드는 회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