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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용 Oct 20. 2018

내가 절대 쓰지 않는 순우리말 2 - 언니

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언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아, 물론 진짜 언니를 말할 때는 언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아쉽게도 남자다. 내가 쓰지 않는 경우는 언니가 아닌데 언니라고 하는 경우다.


언니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아가씨'도 있고 조금 더 연령이 있으면 '이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언니, 아가씨, 이모 모두 쓰지 않는다.


나의 언니가 아닌데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이상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나는 내 정신 회로가 무언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는지 듣는 것도 불편하다. 왜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모든 것이 다 성적인 것으로 연결되는 걸까? 그 생각을 떨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내가 많이 이상한 것 같다.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성 종업원에게 '언니'라고 하면 뭔가 변태스러운 느낌이 든다(나는 왜 그럴까... 그분들은 전혀 그런 의도는 없어 보이는데...) 젊은 남자가 젊은 여성(종업원)에게 '언니'라고 하면 뭔가 성적 지향이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젊었을 때도, 늙었을 때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 여성이 자기보다 젊은 여성에게 '언니'라고 하는 것도 무언가 하대하는 느낌이 난다. 유일하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경우... 즉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 식당 종업원에게 '언니'라고 하는 경우인데, 나는 아직 한 번도 태어나서 보지 못 했다. (직접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사실 어쩌면 좋은 의도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언니'는 여성을 손위로 존중하는 의미에서, '아가씨' 역시 처음에는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었을 거고, '이모'는 자신의 어머니 급으로 격상시킨 단어에 친근함을 더한 것이며, 그 최상급 호칭으로는 요즘 많이 쓰이는 (역시 나는 절대 쓰지 않는) '사장님'이 있다. 모두 다 식당의 종업원을 높여 부르는 취지로 도입되었으나, 결국은 현실의 갑을 관계를 이기지 못하고 나에게 '하대'의 의미로 자리 잡은 말이다. 아마 미래에는 '회장님'으로 부르거나 '여신님'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 사회에서 일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도입하는 경칭은, 일부의 사람들만 쓸 때는 좋은 의미를 갖지만 사회 전체에 퍼지게 되면 현실이 원래 의미를 덮어 써 버리기 때문에 왜곡되어 버린다. 좋은 예가 '식모(食母)'다. 밥을 해 주는 어머니라... 얼마나 좋은 뜻인가? 뜻을 생각하면 '이모'만큼이나 따뜻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식모를 쓰지 않는다. 그 '뜻'이 관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 관계가 단어의 뜻을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대체한 말이 '가정부' '파출부' 하지만 이것도 다시 '가사도우미'로 대체되어 가는 중이나, '가사도우미'역시 조만간 다른 말로 대체될 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식모와 가정부는 연령이나 근무 환경이 좀 다르긴 하다)


그래서 나는 '언니'를 쓸 수가 없다. 나처럼 '여기요'라고 말하는 건 비인격화한 것이라 더 나쁘다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역시 뇌가 좀 이상해서 그런지 억지로 관계를 설정하여 왜곡되기보다는 아예 관계 설정을 안 하는 편이 낫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러나 물론!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군가 이렇게 '언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지적해 본적은 절대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고... 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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