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에서
아모레 퍼시픽 본사 건물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내부 설계(인테리어 디자인)는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여러 말들이 많지만 매우 마음에 드는 건물이었다. 외부이 육중함이 전혀 화장품 회사 답지는 않았지만 내부의 공간은 잘 정돈된 듯했고, 무엇보다 본사 건물 1층, 2층, 3층 (제일 비싼 곳들)을 혼자 차지하기보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겠다는 마음이 중정과 주변 배치를 통해 느껴져서 좋았다.
거기서 본 전시회 (바바라 크루거)도 좋았고,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도서관도 좋아 보였다. 어린이집도, 그리고 아모레 퍼시픽 제품을 판매하는 쇼핑센터도 좋았다.
좋은 점이 참 많았지만, 실내 디자인에 몇 가지 사소한 아쉬운 점이 보였다.
우선, 너무 영어로만 범벅이 되어서... 한글 찾기가 어려운데, 외국인을 위한 배려도 좋지만, 여기를 오는 사람의 절대다수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글이 먼저, 더 크게 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3층은 어린이집을 제외하면 거의 한글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선 화장실은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영어를 좀 할 줄 알아서 다행이다.
RESTROOMS나 UP/DOWN 등 기본적인 영어를 모르면 찾기가 매우 어려운 건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입구를 통과하고 난 다음에 벌어졌다.
어? 대체 어디가 화장실 입구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거나 망설이게 되었다.
지금 사진을 저 각도로 찍어 두어서 사진으로 보면 잘 못 느낄 수 있는데, 실제 공간에 가서 보면 너무 편편한 벽이 계속되는 복도라서 그냥 지나치고 왔다리 갔다리를 하다가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것은 확실히 '실패한 디자인'이라고 본다. 마치 창고 문이나 직원 전용 입구처럼 뭔가 숨기려고 일부러 벽처럼 해 둔 의도가 아닌 다음에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화장실을 왜 이렇게 만들어 두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방문객들이 여기 직원을 붙잡고 '화장실'이 대체 어디냐고 물었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실패한 디자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사실 위 사진으로 잡힌 한 곳을 말고 다른 화장실들은 모두 이렇게 해 두었다.
문을 아예 열어서 고정시켜 버려 '여기가 화장실이니까 제발 우리에게 묻지마'라고 소리 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찾은 화장실 말고 나머지 화장실들은 모두 이렇게 해 두었다. 역시 보통의 사람들이 더 뛰어난 디자이너들인 것 같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니, 이상한 주차권을 하나 준다.
이것만 봐서는 도무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180도 아주 자세히 보니 그 밑에 영어로 min이라고 되어 있다.
결국 3시간짜리 주차권이다. 뭔가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예술가의 심보가 느껴진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준 3시간짜리 주차권도 '주차권'이란 말은 쓰여 있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있다. 3시간이라는 것. 주말 할인권이라는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 방향으로 넣으시오')
이 '이상한' 주차권은 정말 '이상하다' 이 이상한 주차권은 나는 분명히 '실패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아래 사진을 보면 답이 나온다.
주차 할인권 투입구 옆에, 임시로 붙여 놓은 예시를 보라. 원래 주차권에 없는 화살표를 그려 실물을 붙여 두었다. 이 괴상한 주차권을 가지신 분들은 주의하여 이 방향으로 넣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넣은 뒤 직원을 호출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짜증을 냈을까?
나는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저런 걸 보고 있으면 이 자리에 섰던 사람들의 짜증이 막 느껴지는 것 같아서 괴롭다. 그러나 디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디자이너들보다도, 일반 사람들은 더 디자인을 잘 알고 있다. 현명하고 예시적인 해결책을 옆에 붙여 두었다.
우선 이 사진부터 보면 충격적일 것이다.
뭐지?
무슨 뜻이지?
내려 온다? 내려 와라?
3층에 있다? 여기가 3층이다?
그 옆에 밑줄?? 응? 이 엘리베이터가 중요하니까 밑줄 그어라?
저 사진은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두 충격적이어서 찍은 사진이고, 내려서 보니 또 다른 수수께끼를 주고 있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어떻게 내가 원하는 층에 내렸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사실 그 당시에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이해를 한 것도 같은데 일주일이 지나서 지금 저 사진을 다시 보니,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대처하는 건 그냥 충격받고, 욕하고, 그리고는 대충 원하는 곳에 내리는?
혹시라도 자신이 이 수수께끼를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 사진을 투척한다. 이건 무슨 뜻일까?
모든 것을 최소화한 스타일은 안전마저 위협한다.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인데 정말 아찔했다.
비슷비슷한 재질로 섞어서 어디가 계단이고 어디가 바닥인지 헷갈리게 해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걸 원하는 것 같은 디자이너의 심보가 느껴진다. 아마 조금 더 있으면 저 계단 끝마다 무엇인가를 붙여 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실패한 디자인을 그냥 두지 않으니까.
모든 실패한 디자인은 사람들에 의해 보완이 되겠지만...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꽤 오랫동안 디자이너의 가학 심리를 채워줄 것 같다.
참고: 거꾸로 UX 와 Desire Path- 컵 보관함과 잔디밭 오솔길(https://story.pxd.co.kr/929)
'실패'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desire path라고 부른다고.
참고2: pentagramdesign @Sascha_Lobe has been shortlisted for the prestigious Beazley Designs of the Year awards for his work with @David.Chipperfield Architects on a project for @amorepacific.official, one of the world’s largest cosmetic companies.
Sascha and his team designed the architectural branding, environmental graphics and signage for the company’s new headquarters in Seoul. The team worked closely with the architects to deliver a fully integrated solution that sits perfectly within the building’s architecture and geographic surroundings, and subtly reflects Amorepacific’s brand va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