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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Mar 11. 2022

추억 속 음반 가게

오랜만에 보는 향뮤직 오프라인 매장 / 출처 :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향뮤직 찾아가보니 (hankyung.com)', 한국경제, 2016

음반을 구입하려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찾다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향뮤직 홈페이지까지 오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트였다. 인디 음반을 구하거나 대형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매니악한 음반을 구입하는 데 자주 이용하였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 못한 게시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공지] 홈페이지 운영 중지에 대한 안내"


공지를 보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20년 전에는 소위 '레코드샵'이라는 것이 꽤나 흥했다. 그때는 아직 성공한 음반이라면 1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홍대를 거점으로 대중에게 알려지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영향도 상당했다. 향뮤직은 그 음반 시대의 유산이다.


그것도 옛날 일이다. 음반은 MP3 음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작은 기계에 수십 곡을 담아 들을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음반은 음원도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수 없다. 그렇게 음반의 자리를 밀어낸 MP3 파일마저도 스트리밍이라는 시스템에게 자리를 밀리고 있다. 이젠 파일을 담아서 듣지도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서 잠깐 데이터를 긁어 와서 듣는다. 이런 시대에 음반을 듣는 사람은 시장 속 갈라파고스 같은 존재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음반 가게는 이미 10년 전부터 멸종 직전에 이르기 시작했다. 서점 내 음반 코너는 서점 앞에서 버젓이 큰 공간을 차지하다가 이제는 서서히 자리를 잃고 책 사이 어딘가로 존재감을 잃어버린 채 조그마한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명맥을 유지라도 한다면 다행이다. 그 자리마저도 여러 잡화 상품에 밀려 잃어버리고 찾을 수 없게 된 음반 코너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음반 가게는 오죽하겠는가. 이미 '멸종 위기종'을 넘어 사실상 멸종 상태이다. 내가 서울 내 알고 있는 오프라인 음반 매장은, 교보문고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핫트랙스를 제외한다면 '김밥레코즈'를 제외한다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모르는 매장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있다면 그 매장에 경이를 표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다. 


향뮤직 역시 음반 시대의 멸종 속에서 그 자리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신촌의 터줏대감처럼 자리했던 오프라인 매장은 16년경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판매와 5층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었다. 매장이 사라졌다고 향뮤직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로 와닿았다.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께 받은 용돈을 모아서 두 달에 한 번 꼴로 음반을 구입하였다. 사실 우리집에는 음반을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가 없었다. 그나마 컴퓨터에 장착된 DVD 드라이브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 애호가라면 당연히 음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음반을 구입하였다. 그렇게 모은 음반은 어느덧 100여장에 이른다. 나는 나를 소개해야 하는 순간에, 책장을 가득 채운 책과 함께, 진열장에 담긴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음반은 내 정체성이었다.


처음은 안양의 대동문고였다. 15,000원 정도의 현금을 챙겨들고 친구와 함께 찾아갔다. 음반 코너로 가서 락 음반이 모인 곳을 뒤적이다가 내가 원하던 음반을 찾았다.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였다. 아아, 불멸의 명반! 음반을 들고서 카운터로 가서 결제할 때 나는 속으로 명반을 고를 줄 아는 내 안목(?)에 뿌듯해 했다. 10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간간히 OK Computer를 재생하며 그때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내 음반 투어는 대동문고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책 사러 갔다가 핫트랙스에 들려서 산 적도 있고 음반을 사기 위해서 작정하고 서울까지 먼길을 나서기도 했다. 학생이었기에 나의 주머니 사정은 늘 여의치 않았다. 새 음반만 살 수 없었고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하기도 했다. 15,000원 내지 17,000원 정도 하는 음반을 중고로 구입하면 많게는 5,000원에 살 수 있으니 내게는 그야말로 꿀이 따로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큰 소비로 돈이 모자를 때면 귀한 자식 내놓는 심정으로 내 음반을 중고서점에 되팔기도 했다. 잘 안 듣거나 안 좋아하게 된 음반을 처분하고 새로운 음반을 구하는 일도 있었다.


향뮤직도 그 음반 투어의 일부였다. 두어 번 간 게 전부였지만 아직도 향뮤직과 주변 신촌 거리 풍경이 생각난다. 위에 인용한 사진을 보니 매장 옆에 베스킨라빈스가 있던 것이 기억난다. 그곳은 이제 많이 변했다. 향뮤직 매장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섰고 좁던 거리는 싹 정리되어서 널찍하게 되었다. 전보다 깔끔해졌지만 옛 모습을 기억하는 나에게는 조금 서운한 일이었다. 시간의 변화는 때론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그때 향뮤직 매장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작은 매장에 음반이 사방팔방 가득했다. 처음 매장에 들어갔을 때 '아,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생각했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팝스타의 음반부터 큰 매장에서 잘 팔지 않는 마이너한 락 밴드의 음반까지 수많은 음반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낯선 공간이라 둘러 보며 직원을 쳐다 봤는데 그는 누가 들어오는지 아닌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음반 저 음반을 집으면서 혼잣말로 너무 좋다고 중얼거렸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구입한 음반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Futuresex/LoveSounds' - Sexyback이 있는 음반이다 - 와 방백의 '너의 손', 이렇게 두 장이었다.) 

이 홈페이지를 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매장이 없어진 이후로도 향뮤직 홈페이지에 한두 번씩 들려서 음반을 샀다. 인터넷 서점에 비해 불편한 홈페이지였지만 예전에 느꼈던 감정과 정, 독특한 음반 등을 위해서 방문하였다. 향뮤직의 확고한 장점도 있었다. 경매 페이지였다. 그곳에는 가끔 정말 희귀한, 음악 팬이라면 사족을 못 쓸 음반이 올라왔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 같은 그런 것. 이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쉽지 않은 음반이 이따금 경매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오가다 발견한 음악 매니아들은 득달같이 경매에 참여했다. 핫트랙스 같은 대중적인 공간에서 경험하기 힘든 매니악함이 향뮤직이 지닌 매력이었다. 그랬기에 몇 년을 더 잘 지내오지 않았을까 싶다.


매니악함으로 유지하기에는 음반 시장은 쪼그라들어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나마 아이돌 음반 판매로 근근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대중이 아닌 팬을 대상으로 한 판매가 주를 이루고 팬사인회 등 판촉 행사의 영향도 지대하다. 이런 시기에 음반 판매만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데 분명히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게에 대한 애정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왔을 것이고. 물론 향뮤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홈페이지 운영을 중단한 이후에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그 명맥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그래도 향뮤직만의 고유한 사이트와 스마트스토어의 느낌은 상이하다. 30여년을 이어온 향뮤직만의 느낌을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과거는 좋았는데 현재는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내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고 있음에 속상해 한다. 이번 향뮤직 일도 그렇고 나도 요즘 그런 감정에 자주 사로잡힌다. 하지만 슬픔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많은 음악 팬이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들으며 향뮤직이 홈페이지 운영을 중단하였다는 글을 안타깝게 여기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현주소이다. 동정 어린 시선은 감상적이지만 무력하기 그지없다. 변하는 세상을 보며 아쉬워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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