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란

글쓰기의 두려움을 딛고서

by 누뚱


1. 최근 1주일간,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얼마나 생산성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다. 결과는 놀라웠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취준생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몰입하는 시간은 겨우 하루 평균 4시간 남짓이었다. 4시간 정도 몰입하고 나면 남은 시간은 기계적으로 주어진 일을 단순히 수행하는 정도의 에너지만 남는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너무 작거나, 아니면 몰입의 농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겠다.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2. 어쨌든 여기서 말하는 생산성 있는 일은 내가 실제로 몰입해서 집중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단순한 반복 작업이 아니라, 두뇌 회전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예컨대, 자기소개서 쓰기, 블로그 글쓰기, 영어 면접 대비 스크립트 훈련, 영어 작문 등이 있겠다.


3. 이렇게 매일의 생산성을 들여다보니, 내가 가장 깊게 몰입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됐다. 예상 밖으로, 내가 가장 몰입하는 순간은 바로 내 이야기를 적을 때이다. 계기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일단 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몰입의 경험은 그 자체로 충만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몰입할 수 있는 글쓰기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4. 일단 기상 시간은 편차가 있으나 보통 5시 반~7시반 사이에 일어나서 바로 집을 나선다. 집 앞 백반집에서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스타벅스로 직행한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아침 7시 30분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내가 첫 손님이 된다. 만약 너무 일찍 일어나서 카페에 가기 시간이 애매하면, 집을 나서기 전에 스마트스토어 관련 일을 짧게 처리한다. 발주처리, 상품 소싱, 패킹 승인 등 업무이며 길어야 30분이 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도착해서는 그날의 가장 중요한 일 딱 한 가지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통은 채용공고에 대한 자소서 문항들 정리가 주가 되고, 자소서 쓰기까지 공고의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영어 면접을 대비하기 위해서 예상 질문을 뽑아놓고, 답변을 글로 적는 훈련을 반복한다.


5. 하지만 모든 날이 계획대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가끔은 이유 없이, 자소서를 쓰다가, 채용공고를 보다가, 유독 ‘글을 쓰고 싶다’는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바로 이때 블로그에 일기처럼 물 흘러가듯 글을 쓴다. 하루의 가장 생산적인 시간에 충실하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감각도 자연스레 깨어난다.


6. 먼저 어떻게 글을 쓸지 전체적인 구조와 얼개를 잡아 놓고 쓰는 것보다, 그냥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배출하듯이 먼저 적는다. 이러한 방법은 내가 대학생 때부터 줄곧 쓰던 방법인데, 글 쓰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빠르고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다. 뭔가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때그때 드는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통일감 있는 입체적인 글을 자기도 모르게 추구하게 된다. 그럼 그때부터 글의 완결성을 위해서 다시 한번 글을 읽어보며 퇴고를 한다.


7. 나는 이러한 글쓰기 방식으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으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군대 전역 후 회사생활-스마트스토어를 하면서는 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여유가 없어 사유의 시간도 거의 가지지 않았고, 독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몇 년 만에 블로그에 글 한 편을 썼었는데, 문득 예전에 브런치라는 앱에서 뭔가 감성 에세이들이 많이 게재되었던 게 생각이 났다.


8. 별다른 고민 없이 들어가서 글을 게재하려고 보니 작가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 한 편을 가지고, 앞으로 이러이러한 글을 쓰겠다고 작가 신청을 했는데 운이 좋게 작가 승인이 났다. 와! 내가 작가라니!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내가 진짜 작가인가?’ 하는 의심이 떠올랐고,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글쓰기 트라우마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9. 사실 나는 글쓰기 재능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일기를 쓰라고 하면 그렇게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또,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수시 대비 논술반에 잠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낀 건 글 쓰는 전적으로 재능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한 이유는 생각이 많았고, 유려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게 멋있어 보여서 무의식적으로 이를 따라 하려고 한 것이다.


10. 이는 이문열 작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 글을 처음 어렵게 느낀 계기는 이문열 작가의 문체와도 관련이 있다. 살면서 처음 읽었던 문학 작품이 바로 널리 알려진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반에서 비교적 친구들과 많이 싸웠는데, 그때 어떤 친구가 내가 반에서 괴롭힘과 왕따를 주도한다고 모함하여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 가신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엔 또래 중에 힘이 센 편이었는데, 나는 다투기는 했어도 누군가를 따돌릴 만큼 교활하고 영악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선물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의 훈육 방법은 새삼 대단하다. 반에서 싸우고 온 아이한테 꾸지람 대신 책을 선물해 주다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버지의 훈육법에 대해서도 적어볼 생각이다.


11. 크게 혼날 줄 알았던 나는 아버지의 생각이 너무 궁금해서 단박에 이 책에 빠졌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소설의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중의 엄석대라 왕따를 주도하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 정도만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이문열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 뒤로 그의 작품을 꽤 여럿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소설가가 구사하는 미려하고 화려한 수식어의 늪에 빠져서 꽤 오랜 시간 글쓰기 포비아가 나를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경험이 글쓰기에 대한 경외심과 동시에 부담을 심어준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12. 그러던 내가 글쓰기를 다시 붙잡게 된 건, 감정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나를 구해줄 도구가 글쓰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였다. 계기는 첫 연애의 이별을 겪으면서 독학 재수를 할 때였다. 담담히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면서 재수생활을 시작하고 있는데 웬걸. 친구 녀석이 난데없이 전화해서 그녀의 근황을 전화주더라. 불과 2달 만에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13. 이 일을 계기로 난생처음 혼자 집에서 술을 마셔봤고, 말 못 할 배신감을 이겨내기 위해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 감정을 달래기 위해 쓰다 보니까 점점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그 뒤로 나는 내 마음을 살피기 위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통을 겪을 때면 글쓰기를 통해 내 영혼을 달래는 습관이 생겼다.


14. 지금도 그저 채용 공고를 검색하다가 지쳐서 잠시 쉴 겸 끄적인 것이 어느새 글쓰기에 대한 글이 됐다. 위에서 길게 내 개인 경험을 늘어뜨려서 얘기했지만, 사실 글 쓰기를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매일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다. 많이 쓰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결국 모든 숙련은 반복에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먼저 없애야 하고,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의 마음을 덜어내는 일기를 적는 것이다.


15. 언제나 그렇듯, 한 분야의 장인이 되는 길은 별 거 없다. 공과 시간을 들여서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장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장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유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내는 것이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글을 꼭 잘 써야지만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지속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16. 하지만 기왕이면 이왕 시작한 것 잘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해야 한다. 꾸준하기 위해서는 즐기거나, 하기 귀찮아도 꾸준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해야 한다. 나는 꾸준히 하는 일에 그야말로 잼병이다. 뭐든지 조금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꾸준히 하는 습관만 있었으면 막말로 과장 좀 보태서 지금 가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력과는 별개로, 살면서 그나마 중단 기간이 길지 않았던 유일한 취미가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다음이 글 쓰기다.


17. 인생의 굴곡에서 오롯이 바로서기 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겨냄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내 인생이 계속되는 한 중간중간 쉼은 있더라고 글쓰기를 꾸준히 할 것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쓰는 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진솔하고 있는 그대로 적는 게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며, 오히려 방황하는 누군가에게도 어쩌면 위안이 조금이나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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