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실패, 그리고 사유 없는 충만함의 대가
1. 얼마 전에 자유를 깨달았던 글을 썼다. 자유란 사유에서 나오고, 사유를 통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2. 그럼 자유에 대해서 조금 더 논해보자. 나는 왜 자유롭지 못했나? 나는 언제부터 자유롭지 못했나? 내가 내린 자유의 정의에 따르면 사유를 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3. 언제부터 사유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사유를 하지 않았던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사례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겪는 아주 전형적인 예로 현생에 치여서다. 제조업체에서 해외영업을 하면서 그 수직적이고, 매 순간이 압박인 상황에서 나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일적으로도 그렇고, 일보다 더한 인간관계 때문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딥하게 다뤄보도록 하겠다. (할 얘기가 아주 많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말 그대로 그로기 상태로 밥도 안 넘어가는 상태로 누워있기 바빴던 나날들이었다.
4.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 눈을 마주칠 때부터 눈앞이 아찔해지게 한, 두 번째 만남에선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준 여자친구 덕분이다. 나름 살면서 연애를 해볼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의 연애는 정말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치부해도 될 정도로 감격스러운 만남이었다. 이때 나는 사유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 만큼 충만했다.
5. 나는 MBTI가 ENFP이며, 그만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훌륭한 영화나 책을 보면 쉽게 감동받는 성격이다. 그런 나도 살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해서 굳이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충만한 삶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내가 강아지처럼 가만히 옆에 누워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던,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점점 삶의 리듬과 기준을 "함께 있음"이라는 감정 중심으로 맞추게 된 것 같다.
6.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성향인 ENFP인 내가, 굳이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게 됐다. 옆에 소울 메이트이자, 보물과 같은 존재가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까? 내 절친보다 더 절친 같은 존재였고, 내가 아는 누구보다 더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지지해 주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혹자는 참 내가 철없는 철부지와 같은, 연애라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맞다. 나는 그런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안정감 속에서 나는 내 내면의 변화에 둔감해지기 시작했고, 사유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7. 내가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녀의 존재 덕분이었다. 시시한 수동적인 직장인으로서 살기 싫었던 마음 보다 더 컸던 건,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다치지 않게, 크고 커다란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던 마음이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뭐든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경제적인 자유를 통해서 진짜 자유(이때의 자유는 사유에서 기인하는 자유가 아니다)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채워줄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다.
8. 원래가 낙천적인 나의 성향과,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그녀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나는 퇴사하고도 꽤 긴 시간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지냈다. 사업에 성과가 나오지 않고 반년이 지났어도 무슨 자신감인지 천하태평했다. 그녀의 걱정과 불안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긍정적이었고 희망찼다. 회사에서 일할 때만큼 집중하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9. 그렇게 개인사업자란 타이틀을 달고 방종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겪었던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아니면 나를 옭메는 사람과 업무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한 동안 자유로운 생활에 탐닉하며 지냈다. 다행히 중간중간에 여자친구의 현실적인 피드백과 잔소리가 있었기에 일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고, 그렇게 퇴사한 지 반년이 넘어가는 시기부터 사업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0. 일단 성과가 나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내가 소싱한 제품에 만족하고, 다시 찾는 일이 잦아졌다. 비록 내 생활은 여전히 자율적이었지만(자율적이라고 쓰고 게으르다고 읽는다), 그 안에 열정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업이 잘되기 시작하면서 월 순수익 1000만 원을 달성하고 2024년 스마트스토어 빅파워 등급까지 달성하게 된다.
11. 생각해 봐라. 사업이 잘 안 될 때도 천하태평에 막연한 근자감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월 1000이라는 숫자가 찍혔을 때 얼마나 기고만장해졌을지. 안 그래도 근자감 빼면 시체인 내가, 내 손으로 밑바닥부터 직접 일궈서 성과를 낸 것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 것인가. 이때부터 여자친구도 불안과 걱정을 내려두고, 내 자율적인(게으른) 생활에 대해서 크게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 끽해야 5~6시간 일하고 그 외의 시간은 운동하거나, 게임을 했다.
12. 월 수익 1000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길게 가지 않았다. 반년이 채 안 됐을 것이다. 나는 이때 물들어올 때 더 노를 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다소 무리하게 확장했고, 이때 크나큰 역풍을 맞게 된다. 중국 제조업체에서 물건이 갑자기 안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쓰겠다. 여하튼 간에 갑자기 상황이 180도 달라졌고,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어려워 대출을 받아야 하는 지경까지 오기 시작했다.
13. 이와 관련한 얘기를 다 적기엔 글의 주제와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서 거칠게 이후의 일을 요약해 보자면, 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되었고(여자친구와, 가족, 그리고 은행에), 큰 위기가 지나갔을 때는 사업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코인에 손을 댔다. 과거에 테슬라 주식을 몇 년간 장기 홀딩하면서 수익을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이 마저도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다 팔았지만), 장기 보유하면 무조건 올라간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고, 그렇게 수 천만 원을 코인에 넣어 손해를 보게 됐다.
14. 여자친구와의 이별의 이유를 대자면 또 무수히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확실하고 부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은, 나의 성실하지 못한 태도와 게으른 자세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방종하는) 삶의 대가는 참혹했다. 약 5년 가까이 만나면서 누구보다 나를 잘 알게 된 그녀는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이제 돈을 버는 방법을 알았다고, 어쩔 수 없는 순간의 위기를 잘 넘겼고, 앞으로 다시 벌어서 모으면 된다는 내 막연하지만 희망찬 생각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녀는 너무 날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
15. 길게 얘기했지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결과적으로 나는 여자친구와 미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여자친구와 함께 했을 때 너무 행복했기에 사유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고, 천천히 데워지는 우유에 빠진 개구리 마냥, 그렇게 부지불식 간에 사업, 투자, 연애란 종목에서 모두 실패라는 성적을 안게 되었다.
16.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사유해 보자면, 내 게으름은 천성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를 어떻게 순간순간 대처해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게으른 대신, 한번 집중하면 무서울 정도로 열정을 발휘한다. 쉽게 얘기하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그나마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다.
17. 사유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유는 창의적인 몰입의 상태에 이르게 해 준다. 사유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 집중하고, 이러면서 내 게으른 마음가짐과 자세를 순간이지만 극복한다. 여자친구와 함께했던 5년에 가까운 시간은 내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다. 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점은, 행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행복을 즐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는 즐길 자격이 없다..랄까?
18. 내가 지키지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분명히 노렸했고,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 내가 말하는 건 노력의 방향성에 맹목 대신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자친구와의 행복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자유롭지 않았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되기 위한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19. 내가 좋아하는 퀸의 노래 중에 i want to break free라는 노래가 있다. 예전에는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지 않았는데(가사가 아니라 노래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이번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문득 이 노래의 후렴구인 "I want to break free"라는 가사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얼핏 보면 자유를 깨고 싶다고 오역할 수 있으나, 진짜 의미는 오히려 ~~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뜻을 내포한다.
20. 퀸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두 가지의 의미를 자유를 얘기한다. 첫 번째는 1절에서 얘기하는 연인과의 결별이다. 사랑에 빠졌지만 각자가 사랑을 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고, 결국 이별(break free)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2절에서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도 혼자 살 수 없다고 하면서도(Living without you by my side) 같은 말인 break free를 얘기한다. 즉, 2절에서의 break free의 대상은 연인이 아니라 "헤어지고 혼자 살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자유"다.
21. 나도 과거 자유라는 미명하에 행하던 방종을 break free하고, 사유를 통해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Life still goes on"이고, 이제는 "got to make it on my own"이지만, 매 순간 break free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믿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UOtCLOXgm8
I want to break free
I want to break free
I want to break free from your lies
You're so self satisfied I don't need you
I've got to break free
God knows, God knows I want to break free
I've fallen in love
I've fallen in love for the first time
And this time I know it's for real
I've fallen in love, yeah
God knows, God knows I've fallen in love
It's strange but it's true
I can't get over the way you love me like you do
But I have to be sure
When I walk out that door
Oh how I want to be free, baby
Oh how I want to be free
Oh how I want to break free
But life still goes on
I can't get used to living without, living without
Living without you by my side
I don't want to live alone, hey
God knows, got to make it on my own
So baby can't you see
I've got to break free
I've got to break free
I want to break free, yeah
I want, I want, I want, I want to break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