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깨달은 것
1. 삶이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일지도. 치열하게 싸우고 무겁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순간에서건 바뀔 여지가 있다.
2. 김영하의 글 쓰는 방식이 어딘 가 모르게 알랭 드 보통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본인의 얘기를 풀면서도 때때로 영화와 시, 소설의 내용을 차용하여 독자들에게 주장의 근거를 제시한다(근거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센 단어 같아 보이는데,, 사유의 실마리 정도로 적자)
3. 글의 내용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문체가 나를 사로잡았다. 과거에 내가 일기를 쓰거나 독서를 하면서 사유를 했을 때 이와 비슷한 문체이지 않았을까? 글의 수준이나 글쓰기 실력이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가웠고 단박에 읽어 해치웠다.
4. 사유를 하는 삶은 뭔가 충만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내 의지와 관계있건 없건, 그 시작이 어떠했건 간에, 사유를 하고 적었던 시기에 크게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5. 혼자 독학 재수를 할 때 수능 관련 책 보다 그 외 잡다한 책과 신문을 더 많이 읽었었고, 적는 버릇이 생겼다. 대학생 때도 몇 년간 이런 습관이 이어져서, 학교에서 크고 작은 혜택을 보았고, 대외적으로도 동아리나 교육 등 비교적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면서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6. 나는 스스로를 똑똑하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유를 즐기고, 호기심을 채우고, 글로서 사유의 결과를 거침없이 적어가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생활도 할 수 있었고(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연애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연애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음..PASS
7. 다시 김영하의 수필로 돌아가서, 책을 다 읽고 모처럼 햇볕을 쬐며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자유로운 사람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개인사업자란 타이틀 아래 방종하던 시간들은 과연 진정 자유로운 시간들이었나?
8. 자유란 어쩌면 충동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가다듬고, 그 사유에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닐까? 누구보다 자유를 바라마지 않았으면서도, 누구보다 본능이 통제된 일과를 강하게 염원했던 것은, 아마 무의식적으로 진정한 자유는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의 내면을 생활화하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순간 순간 해야 할 일을 단순히 귀찮아서 피하고 안 하는 것은 자유일까?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 순간의 본능에 충실했던 삶이 길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자유와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9. 며칠 전에 거진 5년 만에 다시 면접을 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에, 또한 규모가 작다 보니 아무래도 크게 기대되는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준비했다. 영어 인터뷰가 있으니 너무 쪽팔릴 정도만 면하자는 생각으로 전날에 부랴부랴 중요한 자기소개, 지원이유, 입사포부 정도만 준비했었다.
10. 자기 전에 한편으로는 그냥 굳이 가지 말 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어로 쪽 당하면 다음 주 나름 기대되는 기업의 면접볼 때의 멘탈이 온전치 못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만약 아침에 눈이 벌떡 떠지지 않았더라면, 진짜 제쳤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별 수 없이 3~4시간 더 준비하다가 보고 왔다.
11. 나는 원래 면접을 잘 보는 편이다. 대학생 때부터 어떤 면접이든, 일단 면접 단계까지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게 봐주는 편이었던 것 같다. 인물이 멀끔하고, 당당해하는 태도와 자신감, 목소리가 크고 진중하게 말하는 법을 알았던 게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비교적 면접에서 당당한 편이고, 떨지 않는 편이다.
12. 이번에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있었는데, 회사 문 밖에서 외국인이 통화하는 게 보였고, 막상 들어가니 외국인들이 꽤 여럿 있더랬다. 아 망했구나. 외국인들과 프리토킹을 해야겠구나. 반나절 준비한 영어로는 성이 차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일찍 가서 시간을 번 덕에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뭐, 그냥 안되면 잘하는 손짓 발짓이라도 하고 오자고 편안하게 마음먹었다.
13.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의외로 괜찮게 본 것 같다.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대표 이렇게 셋이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얼마나 꼼꼼하고 많았는지 거의 2시간 가까이 진행이 됐다. 중간중간에 퍼즈도 있었고, 막히는 부분도 있어 손짓 발짓에 격식에 맞지 않는 어투도 나왔지만, 결국 모든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이 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리고 어느 기업이 한 지원자와 2시간씩이나 붙잡고 물어본단 말인가? 대표가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열정적인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얘기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14. 내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이유는 내 이력도 이력이지만, 공들여서 쓴 영문 자소서 덕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사실 대충 경험을 나열하고 chatgpt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와 단어 배열 등만 수정하는 식으로 주로 썼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삘을 받아서 혼자 최대한 일필휘지로 적었다. 그동안 서류에서 낙방했던 이유가 뭔가 AI티가 과도하게 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나다운 어투를 살리면서 살짝 거칠더라도 날 것의 느낌을, 누가 봐도 사람 냄새나는, 살아있는 언어를 담고자 했다. 웃긴 게 뭐냐면 그렇게 적은 글을 chatgpt에게 던져줬더니 오히려 지가 써준 것보다 좋게 평가해 주더라.. 이 거짓말쟁이
15. 길고 길게 면접 얘기와 자소서 얘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사유를 하고 적는 경험이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AI가 현재 대세이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에 특출함과 유니크함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반면 스스로의 이야기를 거칠더라도 진솔하게 적어가는 게 오히려 남들과 다른 경쟁력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겐 없는 경험과 통찰이 거기에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16. 그래서 다시 나는 사유의 삶에 빠져보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대학생 때 학교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은 도서관이었다. 수많은 신간을 쌓아두고 대개 대충 목차만보기도 하고, 때론 한 챕터만 읽기도 했지만, 사유의 세계에 빠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뭔가 당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흥미가 이는 내용이 있다면 어김없이 읽고 조금이라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낚고자 했던 것이다.
17. 졸업하고 군대에 있으면서 한동안 책을 멀리했었지만, 결국 힘들었던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다시 책을 읽고 사유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돌이켜봤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너무 치열하게 했던 나머지 서점에 갈 에너지도 부족했었다. 그나마 퇴사하기 몇 달 전부터는 퇴근 후에 조금씩 서점에 가서 기운을 얻곤 했다.
18. 보통 후회라는 걸 도통하지 않는 자기 합리화의 대가인 내가 내가 하나 후회하는 건, 사업을 하면서 혼자 서점에서 사유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 하루라도 그런 시간을 가졌더라면 분명 다른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19.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나서다.(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서점 한편에서 조용히 사유하고 있다.) 책에서 김영하는,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모든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본인의 생애를 빗대어 얘기한다. 바뀌지 않는 것보다 바뀌는 것이 더 많다고, 다만 우리가 믿는 건 스스로가 바뀌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20.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내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안 해봤기 때문에 못하는 거라고 다소 거만하게 생각한다.(물론 당연히 예체능과 재능이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뭐든지 일단 하면 해낼 수 있다고 믿고(못하는 건 단지 우리가 아직 안 해봤다는 뜻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열린 사고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21. 사유를 하는 시기에는 이러한 생각이 그냥 기본 마음 가짐이었다. 그래서 감정적인 ENFP지만서도 차분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었다. 내가 못하는 분야는 내가 안 해서 당연한 거니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안 하는 거니까! 나는 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이런 내면의 외침이 나를 가득 채웠던 것 같다.
22. 어떻게 보면 20대 젊었을 때의 치기와 패기일 수도 있고, 사회를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자 미숙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남들이 보면 나는 지금 그냥 사업 실패, 연애 실패, 투자 실패한 사람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수많은 실패와 아픔 겪고도 아직 여기에 서 있다. 아직도 그때의 그 마음 가짐을 잊지 않았고, 이제 다시 찾으려고 한다. 오늘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서 자못 마음에 드는 명제를 찾은 것 같다.
"자유는 곧 사유에서 시작되어, 그 사유를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