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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uffy moment May 05. 2021

떠난 강아지를 기억하기

덜 울고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던 날들의 기록


주말과 겹친 노동절을 아쉬워하면서 시작한 토요일.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몇 해 전에 만든 독립출판물의 재입고 요청 메일이었다. 그해 봄과 여름에는 책을 만들고 소개 페이지를 작성하고 입고를 위해 택배 포장을 하며 보냈다. 소량이지만 추가 인쇄를 하고, 그러다 인쇄소에서 잘못 작업해준 책이 배송와서 그대로 파본 박스를 방에 두고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새로 입고 보낼 일이 소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메일을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남은 책을 보관하고 있는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에서 책을 모두 꺼내어 살펴보니 생각만큼 책이 많이 없었다. 책이 있기는 있었는데 파손된 책들이 여럿이었다. 코로나 19 이후로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들의 어려운 결정이 담긴 메일을 여러 번 받았다. 그분들이 꾸려나갔던 서점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던 만큼 아쉬운 마음과 함께 작은 응원을 보내며 위탁했던 도서들을 다시 돌려받았다. 잘 도착한 책도 있었고 아무래도 파손되기 쉬운 형태다 보니 일부가 구겨져 도착한 책들도 있었다. 작정하고 살펴보니 뒤쪽 모서리와 앞쪽 모서리, 위쪽과 아래쪽에 골고루 구김을 가진 책이 쌓여있었다. 한참을 고르고 나서 멀쩡한 책으로 겨우 재입고 수량을 맞출 수 있었다. 마지막이 될 택배를 포장하고 나니 이제 남은 책은 3권 남짓.


평소에 이 책에 신경을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정말 몇 권 남지 않은 실물을 보고 있자니 책을 만들기로 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해 5월에 나는 독립출판물 메이킹 클래스를 들으러 화요일마다 해방촌으로 향했다. 강아지가 떠나고 반년쯤 지난 때였다. 강아지와의 삶을 정리해두고 싶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산책 루트나 간식의 기호성을 고민하던 일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였다. 강아지가 약해지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같이 사는 강아지한테 필요한 것, 해줘야 하는 것들에 대해 무지한 채로 10대를 보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반려견으로서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일방향으로 넘치게 쏟아붓는 애정 말고 강아지를 위해서 보호자로서 해야 하는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누릴 수 있는 더 좋은 것을 찾아보기 바쁜 날들이었다. 저녁 산책을 위해서 바쁘게 귀가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건 어딘가 아픈 강아지였다. 아프고 불편해 보이는 게 분명한데 그걸 숨기려고 커튼 밑으로 들어가 버린 강아지.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이는 날들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아픈 강아지와 함께 사는 법을 검색했지만 마음에 드는 검색 결과는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설프게 헤매는 사이에 강아지는 점점 더 약해졌다. 가족 모두의 일상이 강아지의 돌봄에 맞춰졌다.


때때로 그 돌봄이 너무 벅찰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 아픈 강아지와 함께 사는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 무력하게 곁을 지키는 동안 이 강아지가 사라지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강아지와 함께한 삶을 남겨야겠다고. 늘 그렇듯 강아지의 시간은 나의 머뭇거림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무엇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돌봄의 시간이 끝났다. 늦가을에 강아지가 떠나고 무엇도 쓰지 못한 채 겨울이 지났다. 글로 적어내기에는 슬픔이 너무 커서 겨울 동안 나는 메모를 조금 하다 울고 달력을 보다가 울 뿐이었다.


그리고 봄,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내 일상의 우선순위가 바뀌려 하고 있었다. 어느 오후에 충동적으로 한 자리 남은 독립출판 클래스를 신청한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원고도 없는 상태에서 첫 수업을 들었다. 한 달이라는 목표 기간이 생기자 혼자서는 망설였던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매일 밤 울면서 썼다. 나는 그냥 쓰고 싶었는데, 책으로 묶일 이 글이 너무 축축한 슬픔으로 가득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매번 문서를 저장할 때쯤이면 노트북 옆에는 아무렇게나 뭉쳐진 휴지가 한가득이었다. 책으로 만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서점에 입고 문의를 보내면서도 울었다. 친구들의 리뷰를 보면서도 울었고, 서점 담당자분들의 답장을 보면서도 울컥했다. 매 순간 눈물이 가득한 책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책에 대해서 입을 떼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3권 남은 책을 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울면서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나로부터 꽤 멀어졌다는 게 실감 났다. 내 손에 몇 권 남지 않은 이 책처럼 넘칠 듯 위태로웠던 슬픔도 많이 줄어들었다. 당장 재인쇄를 할 계획은 없으니 정리를 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서 한동안 소홀했던 판매 정산을 하기 시작했다. 입고 메일을 보내던 때부터 정리하던 엑셀 시트는 어느새 중구난방으로 보기 어려워져 서점별로 판매와 재고 정보만 확인할 수 있도록 다시 추렸다. 2년 간의 메일함을 역으로 정리해나가면서 더 이상 슬픔의 격랑에 시달리지 않는 마음이 신기했다. 비로소 이 책과 관련된 모든 과정들이 한 단락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는 2018년, 2019년, 2020년의 구분을 직관적으로 하지 못한다. 이 시기의 어떤 일을 기억할 때, 그 일의 타임라인을 바로 짚어내는 게 어렵다. 2017년 이전은 해마다 구분이 뚜렷한 반면, 이 시기의 일들은 떠올리려고 하면 서로 엉켜있어서 하나씩 차례로 풀어내야 한다. 강아지가 떠난 2018년 11월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아침 김포에 있는 장례식장에 갔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전부 나로부터 조금씩 떠있어서 작정하고 팔을 뻗어야 겨우 붙잡을 수 있다. 5월 1일 노동절 저녁에 시작한 엑셀 시트 정리는 2일 새벽에야 마무리되었다.


5월 2일은 작고 보송한 하얀 강아지 포포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이다.






- 제가 들었던 수업은 해방촌의 서점 별책부록에서 진행하는 북 메이킹 클래스입니다. 코로나 19 이전이어서 오프라인 수업을 들었어요.

- 이 수업에서 제가 만든 독립출판물은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라는 책이에요. 현재 판매 중인 서점은 여기에 모아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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