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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세상은 내편
Oct 23. 2023
왜 글쓰기를 하러 오셨나요?
목요일 오전은 글쓰기 안내자입니다.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신 8명의 수강자 명단을 받았는데, 매우 폭넓은 연령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70대 남성분도 계셨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연령이었다. 회사에서도 삼사십 대가 주류였고, 독서 등 자기계발 커뮤니티에 참여할 때나 내가 사람들을 모집할 때도 내 또래가 모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연령이 할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한 데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공감대 형성이 비교적 쉬웠다.
문화센터에 다녀본 경험이 없어서 어떤 연령층이 오는지 몰랐는데 나이를 떠나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이었다. 회사를 나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다.
첫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 4월은 아직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는 봄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90분짜리 수업이다.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문화센터 사무실로 갔다. '나를 깨우는 글쓰기'라고 적힌 출석부를 받아서 2층에 있는 강의실로 갔다. 꽤 넓은 강의실의 한쪽 벽면 창으로 보이는 뷰는 중학교 운동장이다. 잠시 봄바람으로 환기를 위해 창을 열고 노트북과 강의실 프로젝터 연결을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강의실 문을 열어서 고정해 두었다.
수업 20분 전부터 한 분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글쓰기 수업하는 곳인가요?"
물어보고 들어오시는 분, 강의실을 빼꼼 보고 계셔서 내가 글쓰기 수업한다고 하면 들어오시는 분, 말없이 들어와서 조용히 앉아 기다리시는 분 까지 우리의 낯선 첫 만남의 모습이다.
자리 배치는 책상을 두 개씩 붙여 모둠으로 만들어 놨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전날 저녁 같은 강의실에서 타로 수업할 때 만들어 놓은 책상 배치를 그대로 사용했다. 처음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눈빛이 흔들리는 분들께 모둠으로 만든 자리 중에 앉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그래서 앞을 텅 비우고 아주 멀리 뒷자리에 앉는 분이 없어서 나름 장점이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글쓰기 수강자들을 보면서 아주 잠시 생각했다.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소통할 때 어떤 공감대가 형성될까? 내가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까?
"반갑습니다. 글쓰기 강사 이주영이라고 합니다. 나를 깨우는 글쓰기 첫 번째 시간인데요. 4월 글쓰기의 주제는 멈추어 보는 글쓰기입니다. 질문카드를 통해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나를 깨우고 마음을 일구는 짧은 글쓰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저 저는 여기에 오신 분들이 궁금해요. 어떻게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게 되셨는지 한 분씩 들어보고 싶어요."
(*수강자의 이름은 모두 예명입니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정돈된 머리에 학생 같은 깔끔한 배낭에서 필기도구를 꺼낸 70대 장동건 님은 철도회사에서 오래 일을 했고 정년퇴직을 한 후 매일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혼자 일기만 썼는데 글쓰기를 해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문화센터에 마침 강좌가 열려서 신청하셨다고 했다.
흰머리 단발이 눈에 띄는 70대 이은희 님은 이사를 할 때 학생 때 쓴 일기장을 발견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가장 어려 보였던 30대 방다미 님은 회사 이직 전에 가지게 된 시간에 집 근처 문화센터 강좌를 보다가 글쓰기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낭랑한 목소리의 40대 이정화 님은 글쓰기를 해본 적 없지만 '나를 깨우고 글쓰기'라는 강좌명을 보고 궁금했다고 했다.
예쁜 브로치를 단 70대 강수지 님은 지금까지 글쓰기 수업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글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쓰려고만 하면 머리가 하얘지며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슴에 있는 것들을 죽기 전에 꼭 다 글로 푸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다.
저마다의 글을 쓰고 싶은 이유를 듣고 나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오셨으니 나의 역할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목요일 오전은 글쓰기로 만나요. 저는 글쓰기 안내자가 되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