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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실 Jan 25. 2022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사랑이다

'그해 우리는' 마지막 화를 앞두며


어릴 때부터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를 좋아했다. '90년대생 기획법'에서 소설의 구성을 착안해 기획법을 설명한 것처럼, '이야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잘 구성된 이야기는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요새 내가 푹 빠져 있는 드라마는 SBS 월화 드라마 '그해 우리는'이다. '그해 우리는'은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고 5년의 연애와 이별 후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에는 이 드라마의 설정에 호기심이 들었다.

1.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2. 성격도 성향도 전혀 다른 둘이 이를 계기로 연애를 한다.

3. 5년의 연애 후 모종의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된다.

4. 그리고 5년 뒤 비즈니스의 이유로 뜻밖의 재회를 한다.


이 설정은 첫 화의 내용의 축약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15화까지 본 이 시점에서는 설정이 다가 아니었다. 대본, 연기, 연출, ost,... 모두 다 마음에 들지만, 이 드라마를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메시지'에 있었다. 이 '메시지'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각자의 서사, 그리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보였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주변에 한 명쯤 있을법한 '살아있는 캐릭터'들이다.

왜 주변에 있을 법하다고 느끼고, '살아있다'라고 느낄까?

그건 바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남에게 말 못 할 상처'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교 꼴등이었던 최웅은 장사의 신이자 다정한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보이지만

마음이 변하는 사람보다는 변하지 않는 건물만을 그리는 건물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전교 1등이었던 국연수는 공부 잘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냉정한 말도 서슴없이 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잘 몰라서 차갑게 대하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바쁜 직장인이며,

다큐멘터리 PD인 김지웅은 유능하고 자신의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내는 피디이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항상 누군가를 지켜보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 세 인물은 '자신의 결핍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방어'하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공통점이 인물들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나를 포함한 인간은 모두가 결핍이 있고,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네 삶을 보듯 '각자의 결핍을 가진 보통의 존재들이 만나'

아웅다웅 싸우고 화해하다 결국 '사랑하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상처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알아가려 노력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의 메시지이다.


촬영 일정을 잘 조율하지 못해 혼나고 있던 조연출 지웅에게

생일날이니까 미역이라도 먹어야지, 하며 라면에 미역을 넣어서 주는 선배 PD,

나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둘이 같이 잘 지내자는 연수에게

자신은 이제 늙어가지만 너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즐겁게 지내라는 할머니.


어머니의 죽음을 앞둔 지웅에게 "괜찮아?"라는 질문 대신

"불쌍해. 우리 다"라고 말하며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최웅,

중요한 시점에 연락을 하지 못해 집 앞에 주저앉으면서

"또 나 때문에, 다 망쳐버리는 줄 알았어. 미안해."라고 흐느끼는 연수에게

"너는 하나도 망친 게 없어."라고 다그치기보다 안아주는 최웅.


때로는 서툴고 투박해 보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말없이 안아주고, 술잔을 기울이며, 라면에 미역을 넣어주는,

그런 인간적이고 완벽하지 않은 행동과 마음들이

'그해 우리는'을 두고두고 보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 오늘 회차를 보며 할머니의 병원 장면에서 오열하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가 연수에게 하는 말들이 나도 몰랐던 내 내면 아이를 어루만져준 것 같다.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눈물로 터지자 이상하게 며칠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되는 듯했다.

역시, 좋은 드라마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만든다. 나도 언젠가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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