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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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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02. 2024

서른과 마흔 사이, 아직은 뭔가 어중간한데?

들어가는 글

2024년 새해가 시작되고 처음 맞이한 주말 저녁, 창가 자리에 앉아 수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살짝 남은 붉은 빛깔의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나니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펑펑. 맥주를 머금고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은 단 한순간에 내가 있는 곳을 비일상적인 여행지로 만들었다. 그랬다. 그렇게 그날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분이 둥둥거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다시 하늘로 올려버릴 수 있을 것처럼. 그런 기분에 마음껏 취해서 그런 걸까? 재밌는 일을 하나 작당모의 해버렸다. 그건 바로 당신이 앞으로 읽게 될 이 책을 만들기로.


그날 내 앞에는 N 플랫폼 맥주 모임의 모임장 정민이 있었고, 내 옆에는 사진 모임의 모임장 용신이 있었다. N 플랫폼의 모임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우리는 2023년 연말 '모임장 반상회'에서 만나 '조금' 친해졌다. 당시에는 동갑인 줄 몰랐으나 알고 보니 동갑이었던 우리는 이후 조금 '더' 친해졌다. 사실 친해진 이유가 따로 있긴 하다 (이건 나만 아는 비밀). 아마도 우린 삶에 대한 고민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한 사람은 고민을 진득하게 끌어안을 줄 알고, 한 사람은 정면돌파하며 정통으로 맞서는데 능하다. 또 한 사람은 눈빛만 봐도 ‘나 욕망 덩어리!’. 각각 맥주, 요가와 연극, 사진이라는 취미이자 취향이자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서른다섯. 분위기 좋은 맥주집이 마감이 되는 그 시간 동안 사적으로 처음 만나 어느새 친구가 돼버린 우리는 펑펑 쌓인 눈과 함께 달큰하게 취했다. 그리고 술기운에 이끌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버킷리스트 하나를 덜컥 추진하게 되었다.


책 만들자!
서른다섯, 우리 이야기로!
예슬, 네가 독립출판해 봤으니까 너 믿고 간다.


드문드문 기억나지 않는 당시의 상황을 굳이 되짚지 않더라도 추진력과 책임감이 좋은 나는 분명 나만 믿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서문을 책임감으로 내가 쓰고 있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새 설레는 마음으로 목차를 짜고 글감을 다듬으며 첫 모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에 먹으면 참 기분 좋은 횟감 방어를 먹으며 우리는 '인간관계, 사랑, 일, 취미, 그리고 나'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나는 N 플랫폼 독립출판 모임장이지만, 혼자서 독립출판물을 만든 지는 꽤나 시간이 흐른 상태. 간만에 글쓰기 근육을 붙이려니 스트레칭이 필요했다. 친구가 되긴 했지만, 아직 덜 친한 나의 새 친구들에게 내가 담긴 글을 보여준다니 뭔가 쑥스럽달까. 하지만, 동료가 생긴 게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손끝에서 피어나려는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것 같기도 하고 벌써부터 자기들끼리 나폴나폴 춤추는 것 같기도 하다. 나 혼자 이렇게 신나버린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원래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 멱살을 잡아끌면 어떻게든 완성으로 가는 게 인생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서른다섯,

서른이 된 지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반을 살아왔다. 보내온 시간만큼 더 살아가면 곧 마흔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젠 그저 내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기만을 소망한다. 요즘 내가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내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에 걸맞은 사람으로 살면서 매해 새로이 만나게 될 나의 시간과 경험을 쭈욱- 사랑하는 것이다. 어릴 땐 당연했던 시행착오가 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서른다섯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좀 귀여워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도전과 실패를 쌓아오던 이십 대는 이제 완전히 과거가 되었고, 뭔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수가 예전만큼 용납되지 않다 보니 흔들리는 나를 사랑하는 게 참 어려운 날들이다. 이렇게 혼자가 어려운 시기에 작은 투정을 부리면 기분 좋게 편들어주는 동료가 나타났다. 


지난 삼십오 년간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유독 질문이 많았고, 각자가 가진 편협 할지 모르는 경험과 언어가 상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 줄까 조심스럽고 소심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열심히 지나온 삼십 대가 중반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을 정비하는 길목에서 내 이야기와 더불어 친구들의 인생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아니 우리가 상상하고 품을 수 있는  삼십 대도 더 커지겠지? 논어에서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 언급하며,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했다. 서른과 불혹사이 그 어중간한 시간 속에서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나이가 서른다섯인가 보다. 아직은 어려운 세상과 아직도 모르겠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고백하고 기록하며 이 시간을 단단하게 붙잡아보려 한다. 


복잡한 머릿속을 뚫고 나와 쓰일 문장들이 나와 내 친구 두 명 그리고 우리처럼 서른다섯을 살고 있는, 살게 될, 살아온 당신에게도 든든한 응원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글에 남겨진 우리의 모습이 과거에만 머물고 먼 미래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이 책만큼은 우리가 박제한 서른다섯이다.


지나 온 시간 덕분에 자신을 믿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조금은 기대되는 서른다섯.

아직은 뭔가 어중간한 어른이면서도 어린것 같고, 어리 다기엔 머리가 큰 서른다섯.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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