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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OMFY Sep 03. 2022

추석 레트로

얼마 전 TV에서 재방송해주는 <응답하라 1994> 시리즈를 봤다. 모두가 출근하고 텅 빈 집 안, 길어지는 장마 때문에 낮임에도 밤처럼 어두운 그런 날이었다.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 나오는 몇 년 전 드라마에 어느 순간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혼자 생각이 많아져서 괜히 복잡한 기분까지 들었다. 해태와 조윤진이 방학을 맞아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감성이 절정에 달했다. 버스를 타고 귀성길에 오른 그들의 모습에서 추석 연휴에 고향으로 내려가던 옛날 우리 가족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문득 추석 귀성길, 차 뒷좌석에 앉아 부모님 뒷모습을 지켜보던 철부지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나 어릴 적 우리 가족에게는 추석 연휴가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몇 가지 신호가 있었다. 그중 제일 먼저 찾아오는 신호는 ‘지도’였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6시간 걸리는 고향 진주까지 가기 위해서는 운전하는 사람이 직접 내비게이션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운전자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지도와 라디오 교통방송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만약 전국 지도를 들고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표시하기 시작하셨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귀성길에 오르게 될 것을 뜻했다. 예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도로 상황임에도 매년 아버지는 지도를 펼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것이 안전 운전을 비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였다.


또 다른 신호는 ‘500mL 생수’였다. 가을이 다가오는 시점이지만 아직 여름 끝자락이 남아있는 9월은 꽤 더웠다. 설상가상 20년 전 우리 집 차는 에어컨이 고장 나고, 창문은 수동으로 돌려서 내리는 기아의 ‘캐피털’이었다. 차 안으로 들어온 9월의 더위는 나갈 길을 잃고 차 안을 맴돌기 바빴다. 더위에 지친 우리 남매가 징징거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출발 며칠 전부터 냉동실에 생수를 얼려두셨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너무 꽁꽁 언 나머지, 그 물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린고비가 된 듯이, 더울 때마다 얼어붙은 생수를 쳐다보곤 했었다.


여러 가지 신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엌 소리’였다. 아직 저녁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새벽. 부엌에서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허기에 약한 우리 어머니는 무엇보다 먹을 것을 중요시하셨다. 진주까지 가는 길에 휴게소가 지천으로 널렸지만, 어머니는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힐 경우를 대비해서 주전부리를 차 가득 챙기셨다. 당시 우리 가족은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해서 새벽에 출발했는데, 다른 사람이 봤다면 집안 살림 모두 들고 떠나는 야반도주 가족으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부엌에서 나온 것들에는 각종 과일부터, 어머니가 직접 삶으신 구황작물도 있었다. 출발 전날, 우리 남매 준다고 산 과자들은 너무 많아서 전부 들고 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먹을 것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앉을자리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부엌을 가득 채우는 어머니의 분주한 소리는 나와 누나를 들뜨게 했다.

 힘들게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하면, 만남의 광장쯤에서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도 귀신같이 휴게소 냄새를 맡았다. 내 눈에 세로로 길게 쓰인 ‘만남의 광장’ 표지판은 흡사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오는 과자 집 굴뚝같았다. 그래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운전석을 향해 ‘지금 휴게소 가는 거야?’라고 묻곤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는 허락해주지 않으셨지만. 사실 꼭 만남의 광장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나는 그저 휴게소가 가고 싶었다. 내가 휴게소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충무김밥


어느 휴게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충무김밥은 우리 가족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소박하기 짝이 없는 그 음식을 나는 꽤 좋아한다. 기실 왜 우리 가족이 귀성길에 충무김밥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음식이어서인지,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음식 이어서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저 어느 순간 충무김밥을 먹는 것은 아버지가 지도를 펼치듯이, 어머니가 생수를 얼리는 것처럼 우리 가족이 ‘추석 귀성길 꼭 해야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이런 것들을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고향으로 간다는 느낌 받을 수 있었다.


나를 때 아닌 추억여행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드라마는 별밤지기 이문세 씨(로 추정되는)의 클로징 멘트로 끝이 난다.


불쾌지수에 열대야에 짜증이야 많이 나지만, 우리가 언제 이렇게 역사적인 여름을 살아보겠나 싶어요.
나중에 한 20년쯤 지나면 말이에요, 이 어마어마한 더위 덕분에 그 수 많았던 여름 중에서도 이 여름을,
그리고 오늘을 기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훗날 기분 좋게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짜증 내지 마시고,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순간을 만끽하며 즐겁게 추억 만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자율주행인지 뭔지 최첨단 기술이 잔뜩 들어간 차 안에는 더 이상 더위가 남아 있을 공간이 없다. 이곳, 저곳 비단길처럼 깔린 고속도로 덕분에 귀성길은 4시간을 넘기지 않게 됐다.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까에만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추석에도 아버지의 지도를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얼린 생수가 냉동실을 가득 채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귀성길, 우리 차 안에 여전히 김밥과 깍두기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기를 기대한다. 20년 전, 철없던 막내아들이 뒷좌석에 앉아서 보았던 추석 모습이 올해도 반복되기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이 이번에도 이어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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