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새벽 근무를 마치고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말 아침이었다. 계획대로면 아직 더 잘 시간이지만,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아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엄마가 동물 농장을 보며 주말을 즐기고 있었는데, 잠이 덜 깬 채로 나오는 나를 보며 엄마가 물었다.
"왜 깼어? 아침에 들어온 거 아니야? 더 자지 왜."
"아, 햇빛 때문에. 눈부셔서 깼어."
"그래? 있잖아, 그거 엄마가 너 일 갔을 때 볕 잘 들라고 창문 앞에 소나무 좀 쳐내서 그런 거다?"
갑자기 무슨 나무 얘기냐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엄마는 며칠 전 내 창문 앞에 나무가 햇빛을 가릴 것 같길래 좀 잘라냈노라 말했다.
가을 하늘 높고 공활한데, 구름 한 점 없어서 눈이 부신 줄로만 알았지 아들 방에 햇빛 좀 더 들기 바라는 엄마 마음 때문일 줄은 몰랐다. 죄스러우면서 동시에 감사한 속마음과는 달리 왜 힘들게 혼자 했냐고, 같이 하자고 왜 말하지 않았냐는 핀잔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진심과는 다른 말을 쏟아내는 자기주장 강한 주둥이를 한 대 쥐어 받고 싶었다. 버릇없는 내 입에는 익숙해졌다는 듯이 엄마는 들어가서 좀 더 자라며 무심하게 말했다.
더 자라는 엄마의 말에 떠밀리듯 방에 들어오자,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어쩐지 방이 더 환한 것 같았다. 창밖 풍경이 더 잘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잘 보이는 걸 왜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커튼을 치는 것이 천인공노할 불효처럼 느껴져서 앞으로는 커튼은 열고 안대를 쓰고 자겠노라 다짐했다.
누워서 다시 자보려 했으나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통에 잠들지 못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 엄마는 뭐 갖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물었다. 효자는 되지 못해도 불효자는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제야 엄마의 취향이 궁금했다.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엄마는 괜찮으니까 다시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는 빨리 말해보라고 엄마를 재촉했다.
결국 엄마는 또 나에게 져주셨다. 엄마는 다른 건 필요 없고, 날씨 좋으니까 뒷산 가서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했다. 내가 받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한 것이라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웃렛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엄마와 함께 등산을 하러 갔다.
두 시간가량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한쪽, 등산객을 위한 황톳길이 깔려있었다. 엄마는 같이 맨발로 걸어보자고 했고, 나도 갈색 흙의 촉감이 궁금해서 알겠다고 했다. 50m 남짓 되는 짧은 길을 엄마와 나는 꽤 열심히 걸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효자라는 둥, 어머니는 좋으시겠다는 둥 칭찬을 했다.
나는 별것도 아닌 일에 과한 칭찬을 들은 것 같아 면구스러웠고, 얼굴은 황토색만큼이나 검붉게 변했다. 문득 내 사춘기 시절을 두고 “철없이 부모님 속 썩인, 회생 불가능한 중2병 환자”라고 했던 누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효자 되는 것이 이렇게 쉬운 거였는데, 불효자로 살아온 시간이 돌멩이가 되어 맨발을 찌르는 듯 발바닥이 따끔했다.
고개를 들 수 없는 내 옆에서 엄마는 기분이 좋으신 듯 웃고 계셨다. 이렇게 쉬운 일을 오래도 걸려서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웃고, 불효자는 우는 2022년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