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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OMFY Dec 31. 2022

버려야 사는 남자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고찰


2020.3

정들었던 예전 집을 정리하고 재작년 11월 이사를 하게 됐다. 부동산 정책으로 전세 물량이 씨가 말랐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운 좋게 매물이 나와도 줄 서서 집 구경을 해야 한다는 웃픈 얘기가 들리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 등 따시게 누울 곳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이사 갈 집에 맞춰서 짐 정리를 해야 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려서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금방 끝날 줄 알고 시작한 작업은 해가 저물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리하다 보니 산 줄도 몰랐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고, 또 잊고 있던 물건들을 보자 때아닌 감상에 젖었기 때문이다.


‘아 이 옷 입고 가족 여행 갔었잖아. 언제더라 그게’

‘와 이게 아직 있구나. 아, 이거 비싸게 주고 샀던 건데.’


이런 감상에 빠지자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굳이 물건을 버려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것이 여전히 쓸모 있어 보였고, 언젠가는 다시 입거나, 펴볼 책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미니멀리스트’라는 작자들은 어떻게 물건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 아니 근본적으로 왜 멀쩡한 물건들을 버리라는 걸까? 어질러놓은 짐들을 뒤로하고 ‘물건을 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차와 시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지금 타는 차는 아버지가 타시던 그랜져를 물려받아 타고 있다. 기름을 바닥에 버리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크게 불만은 없다. 시계도 작년에 산 스마트 워치가 전부다. 이것도 선물 받은 것이라 감사하게 차고 있지만, 굳이 내 돈 주고 비싼 시계를 살 마음은 없다. 내 생각에 자동차는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고, 시계는 그저 시간을 알려주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여기에 내 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사치이자 일종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쏟을 에너지를 아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옷이라든가, 의복이라든가, clothes 같은 것들에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어렴풋이 ‘미니멀리스트’에 대해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은 모든 소비 행위 자체를 줄이고, ‘무소유’에 가깝게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는, 스님과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순위 중에서 중요도가 낮은 것들을 과감하게 ‘최소화’하는 사람. 여유가 생긴 공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사람. 그 사람들이 ‘미니멀리스트’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 인생에서 중요도가 높은 물건은 많이 사고, 모아도 되는가?’


앞서 말했듯이 내 우선순위 최상단에는 ‘옷’이 있다. 나는 옷을 잘 입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사 모으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 짐 정리를 하면서 ‘내가 한 번도 안 입은 옷은 때려죽여도 안 입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옷을 살 때는 이럴 줄 몰랐다. 왜냐면 처음 구매할 때는 옷이 이뻤으니까, 이 가격이면 사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이런 옷이 없나를 고민하지 않고 샀으니까. 결국, 나는 옷을 입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옷을 사는 행위, 옷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이쯤 되니 내가 좋아하는 옷을 모았는데도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라’와 같은 말이다. 언젠가는 입겠지, 다시 펼쳐볼 책이었으면 이미 진작에 입고, 읽어봤을 것이다. 있는 줄도 모른 채 잊고 살았던 물건들은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들이다. 그런 물건들을 ‘아깝다’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붙잡고 있는 것은,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쏟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했다. 이 말은 반대로 ‘설레는 것을 지켜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새로 나온 옷에 눈이 돌아가고, 한정판이라는 말에 이성의 끈을 놓을 것이다. 그런데도 새로 이사 가는 집에는 가벼워진 짐들과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란 자신이 있다.

 자, 이제 어질러놓은 짐 정리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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