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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OMFY Oct 05. 2022

일상으로의 초대


지난달 고등학교 친구가 청첩장을 보내왔다. 평소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학창 시절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친구였던지라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꼭 참석해서 친구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만큼 꽃가루를 얼굴에 뿌려주겠노라 말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청첩장에 적힌 날짜에 내 스케줄 표에는 뉴욕 비행이 찍혀있었다. 어떻게든 조정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스케줄을 바꾸지 못했다. 친구가 결혼식 준비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 시각에 나는 비행 준비를 위해 일어나야만 했다.


출근길, 못 가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얼마나 너의 행복을 바라는지 구구절절 쓴 메시지를 보냈다. 전 여자친구처럼 애절한 메시지를 보낸 다음, 축의금을 보내려는데 나도 모르게 액수를 적는 칸 앞에서 잠깐, 고민했다. 그 찰나의 망설임이 지나가자 끝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저울에 올려 뒀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했다. 이게 다 며칠 전 ‘지난달 보다 소비가 늘었네요. 지출을 줄이세요!’라는 은행 앱 메시지 때문이라며 금융권의 쓸데없는 친절함을 욕했다. 하지만 문제는 은행 앱이 아니라 낮아진 내 자신감과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더라고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잔인한 시간을 보냈다. 불안감이라는 장갑을 끼고, 걱정 한 아름을 마스크 뒤로 숨기고 살았다. 언제 또 이렇게 쉬어보겠냐며 이 시간을 즐겨보려 했으나 코로나 속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자유는 채 한 뼘도 되지 않는 듯했다. 동시에 일거리가 줄어갈수록 내 자존심과 자신감도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눈치를 준 적 없지만, 혼자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우리’보단 ‘나’를 생각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이 잦아졌다. 코로나 기간 가장 힘든 일은 점점 못나지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와의 관계보다 통장 잔고를 먼저 생각했다는 못난 사실이 견딜 수 없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방호복처럼 온몸에 두르고 뉴욕 비행을 다녀왔다. 다행인 것은 그날 비행이 만석에 낮 비행이었던 탓에 친구를 향한 미안함을 곱씹을 새도 없이 바빴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처음 겪어 본 만석 비행이었던 것 같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서 여러 번 꾹꾹 밟아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마저도 결국 넘쳐서 봉투를 3개나 더 써야만 했다. 모든 화장실 앞에는 놀이동산처럼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기다리는 손님 수가 늘어날수록 채워 둔 휴지도 빠르게 줄어갔다. 화장실을 다녀온 손님들은 약수터에 모인 등산객처럼 복도 주변에서 스트레칭을 했고, 비행기가 흔들린다는 방송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마지막에는 서비스할 수 있는 음료와 컵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비행이었다.

꼼짝할 힘없는 입술 사이로 ‘아, 이게 뉴욕이었지’라는 말이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은 13시간이라는 시차만큼이나 서울과 매우 달랐다. 마스크를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더 많았고, 공항은 국내선, 국제선 가릴 것 없이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당장 나가 센트럴 파크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 들러 스테이크를 먹고, 힙한 카페에서 뉴요커처럼 커피 한 잔 마시며 뉴욕을 즐기고 싶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코로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회사 친구들에게 우리가 알던 비행이 돌아온 것 같다는 웃픈(?) 소식을 전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겪은 비행을 무용담처럼 쏟아냈다. 오랜만에 14,000달러 치 면세품을 팔았다는 자카르타 비행, 비즈니스에서 과일을 다 쓰고 내린 LA 비행, 일찍이 만석이 된 사이판과 신혼부부를 가득 태운 하와이 비행까지. 멀어진 줄 알았던 일상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들이 38,000피트 상공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모든 비행을 마치고 구두를 벗으려는데 자주 접히는 주름 따라 벌어진 구멍이 보였다. 햇수로 4년을 신으면서 이미 몇 차례 수선했던 부위가 기어코 찢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구두를 신을 일이 줄어들었으니 그럭저럭 1, 2년은 더 신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오랜만의 뉴욕 비행을 견디지 못하고 구두는 운명했다. 작은 구멍과 함께 장렬히 전사해버린 구두를 보고 있자니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일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 있는 하루였다. 오랜만에 정말 수고했다고 내 엉덩이를 두들겨 주고만 싶었다. 이날의 작은 성취감 덕분에 구두처럼 찢겼던 내 자존심이 요만큼은 회복된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이 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남은 자존심도 완전히 펴지리란 기대감이 생겼다.


씻고 누워 열어본 SNS에는 친구가 올린 파리 신혼여행 사진이 한가득했다. 친구 결혼식이 내일이었으면 누구보다 기쁘게 갔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나간 후회는 뒤로 하고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찾아 댓글을 남겼다. 내년 결혼기념일에도 파리로 가는 건 어떠냐고, 내가 일하는 비행기로 기꺼이 데려가 주겠다고 말이다. 내 마음처럼 흰 이빨 환하게 보이며 웃는 이모티콘으로 마침표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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