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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Mar 01. 2019

수치심에 대하여

『무진기행』(김승옥, 민음사, 2017)

“문학은 상처에서 출발하고 상처 위에 존재한다.” 문학 평론가 강유정의 말이다. 그 반대편엔 누군가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이에게 주목하기 쉽지만 자신이 애독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반대편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무진기행』(김승옥, 민음사, 2017)은 속물적인 인간 군상을 ‘수치심’ 위에 풀어냈다.


『무진기행』은 1964년대 작품으로 무진은 전라남도 순천을 배경으로 작가가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당시 시골마을의 ‘속물’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이 ‘속물’이라 언급한 대목에 시선이 머문다. “나는 다시 ‘속물’들 틈에 끼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p.22)


소설은 속물들을 묘사한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 선생(하인숙)은 술자리 분위기에 맞게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남자들의 음주를 위해 여성의 가무가 필요해서다. 서울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남자(들)에게 접근하는 하인숙은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고백한 편지를 세무서장에게 보여준다. 세무서장은 그녀의 집안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결혼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든 하룻밤이나 즐겨볼까 생각한다. 세무서장은 뻔뻔하고 하인숙은 위선적이지만 둘은 적어도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주인공만은 욕망대로 살고자 했던 마음을 접는다. “‘당신은 무진 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p.39)


수치심은 자신이 평소 경멸하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는 표출하지 못하고 억눌러온 자신의 욕망을 무진에서 보았다. ‘무진’은 그러한 인간의 ‘속물성’을 드러나게 하는 공간으로 사회적 인간이 되기 위해 교육받은 예법, 매너, 도리, 이치와 같은 윤리적 더께를 벗은 인간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관습을 넘나들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낀다. 그는 수치심이 느껴지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나’와 ‘너’의 속물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 깨달음이 타인을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p.22)으로 가볍게 대하지 못하게 한다. 이는 공감의 확장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관대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무진’엔 어떤 욕망을 숨기고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드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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