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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Mar 07. 2019

공감의 시작은 '나'를 아는 것부터

『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 2019)

최근 방송대상을 받은 개그맨 이영자가 1인 방송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유튜브로 뛰어들게 된 계기에 대해 “대중에게 보이는 이영자로 살다 보니 진짜 나의 모습이 뭔지 잘 몰랐다. 이제 ‘이영자 채널’을 통해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도전을 결심했다"라고 한다. 연출이나 이미지에 의해 살아온 한 연예인에게 1인 방송이 절실했던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해냄, 2019)다. 


“스타로서의 성공도 매력적인 나일 때, 독특한 내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낼 때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너(대중)의 욕망에 완벽하게 맞춰 움직이는 나로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 인기 절정의 연예인도 결정적 실수나 악성 댓글 한 번에 그간의 모든 환호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 된다.”(p.39)


‘나’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시절 인기 절정의 이영자도 한때 실수가 있었다. (일명 이영자 다이어트 파문 사건) 자신을 좋아해 주던 대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에게 보낸 비난은 공포에 가까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좌절을 딛고 일어난 그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모험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인사들은 대중의 욕구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늘 외로운 줄타기를 한다.


저자는 정신과 교수지만 의학적인 지식을 나열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전문가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라고 권한다. 또한 삶의 고통을 ‘우울증’이란 질병으로 분류하고 약으로 통제하는 정신의학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우리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서 사람들을 치유한 경험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지혜를 갖게 했다. 


이 책은 경고한다. 누구든지 삶이 자신과 멀어질수록 위험하다고. 경고 대상은 부모나 배우자의 강력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사람, 사회적 역할이나 가치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현재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고 관념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들에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자신과 타인과의 경계를 바로 세워 진짜 공감을 주고받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어디일까. 저자는 “내 감정, 내 느낌”(p.103)이라고 말한다. 감정과 느낌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내 직장 이야기보다 직장에 대한 나의 느낌이 더 나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내 취향이나 기호도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내 몸에 걸친 옷이나 액세서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견해나 신념, 내 가치관도 그렇다. 내 견해, 신념, 가치관이라 힘주어 말하는 것들 대부분도 사실 그 시원(始原)은 ‘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입된 것이 대부분이다.”(p.104)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공감을 통한 마음치유법을 알려준다.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상처 받았던 경험을 ‘줄거리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인식은 일정한 패턴으로 자리 잡는다. 자신을 상처의 피해자로 한정 짓는 패턴이 반복되면 거대한 방어막이 되어 소통을 방해한다. 따라서 저자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공감 화법이다. 공감이 이뤄지면 치유는 즉시 작동한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책을 읽으며 오롯이 나로 살지 못한 지난 40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님과 자신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느 30대 여성의 일화가 내 심장을 찔렀다.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봐 힘들고 고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말했던 기억. 부모와 나를 분리시키지 못한 결과였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행동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효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없어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혹여나 부모가 느꼈을 실망감도 부모의 몫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사람은 개별적 존재다. 이는 자기가 처한 상황과 관계의 변화에 따라 주체적으로 끊임없이 적응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나의 기억으로 돌아가, 막상 직장을 그만두자 부모님은 아이와 직장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나를 더 걱정하셨다고 했다. 부모님은 상황 변화에 충분히 적응하고 변화하는 주체적 존재였다. 내 쓸데없는 걱정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셈이다. 나의 경계를 바로 세우고 독립적인 관계가 되어야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뒤섞인 채로는 그 어떤 대화나 공감도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 책은 공감의 초석을 다지는 좋은 안내서다. ‘나’의 경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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