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사와 역사 사이에 동시성 갖기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의 개인사는 시대의 역사와 동시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문장을 여러 번이고 곱씹어 읽으며 최근에 일어났던 커다란 이슈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기생충의 4관왕, BTS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 미중 간의 무역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의 파괴력 등.
그리곤 나의 개인사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새로운 일, 사람, 마음가짐 등. 국가 차원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하고도 고된 모든 일련의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안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로부터 잠깐씩 벗어나곤 했다. 평소엔 나의 것들로 물들어져 살고 있다가 짧은 시간 동안 애국심으로 누군가을 응원하고,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 비판하기도 했다. 애국심이 아니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파렴치한 일 혹은 걱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또 함께 동조하곤 했다.
그 잠깐의 동조를 빙자한 현실 벗어나기는 인스타그램에 한 게시물을 늘리기,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 올리기라는 작디작은 변화를 제외하곤 아무런 물리적 영향도 주고받지 않았다.
애국심이라는 말은 더 이상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애국심은 대체 무엇인가? 국가를 위하는 마음,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한 민족과 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요동치기 만드는 그 기저. 그것은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며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투표도 하지 않는 이들이 월드컵 우승, 한국 영화의 오스카 수상 등에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어깨를 들어 올리는 심리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는 무수히도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뉴스나 입방아 말고는 도저히 그 많은 일들을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세계여행을 하는 이들조차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마치 중요한 것만 같은, 중요한 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며 시대에 대한 흐름을 반영한다. 심지어 그것이 가짜 뉴스라고 해도, 가짜 뉴스 또한 시대상의 반영일 것이다.
한 개인이 그 시대의 역사에 동시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그 시대 안에 살아가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는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를 비난 혹은 응원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과 유튜브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으로 동시성을 쟁취했다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또 다른 대다수가 인정할 만큼 성대한 업적을 이뤄 개개인이 그 동시성 속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먼 미래 후손들에게 ‘00 유튜브 좋아요 100만 개 중 37,980번’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라도 기억되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인가?
잠깐 감성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와 지인 등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것만으로 내가 현재 이 시대에 존재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가져와주기 때문에.
개개인이 동시성을 갖기 위해 다른 이들이 알고 인정할 만큼 뛰어난 업적을 이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역사의 현장 속 일부분으로써 어떤 행동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정답이 없는 걸 앎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을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