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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c Sep 03. 2019

이야기해봐

잠시 떨어져 살아야 하나 얘기하다 탁구 치러 간 금요일 밤


금요일 저녁.


‘장소를 옮기는 것이 꼭 답은 아니지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것 같아. 이곳의 풍경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이 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겐 훨씬 더 힘들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나 혼자라도 어디에 가는 것이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라고, 남편은 요 며칠 꾹꾹 담아두었던 마음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해한다. 남편에게 이 곳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때로는 자신을 속여가며 꾸역꾸역 입고 있어야만 했던 옷 같은 곳이리라. 몇 번이나 벗어보려고 했지만 그 용기마저 없어 같은 자리만 10년째 서성인 자신에 대한 미움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장소일 것이다.      


나는 가만히 들으며 살치살을 씹고 있었다. 이런 대화가 이전에 몇 번 오고 갔기에 이제는 여유도 생겨, 뒤뜰에서 캠핑하는 기분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남편의 독백 같은 대화에 끼어들었다. 화제를 전환하거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자 함이 아닌, 금요일 퇴근 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이었고,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남편도 나와 같이 머리 위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스치듯 생각했다. 남편이 가버리면 나는 쓸쓸하겠지. 나는 그때에도 혼자 뒷마당에 나와 밥을 먹게 될까.


‘밥을 적게 퍼왔어. 더 가져올까? 그래 더 먹자’ 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밥을 퍼오며 밖에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을 찍었다. 식량난 속에 마지막 남은 상한 음식을 어쩔 수 없이 입속에 밀어 넣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고민을 듣다 나는 조금 더 추임새를 넣었고, 그러다 질문을 몇 가지 했다. 남편은 생각했고 대답했다. 나는 이번에는 내 경험에 비추어 방안을 제시했다. 남편은 그 방법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자신과 나와의 다른 점을 설명했다. 나는 그러면 같은 방법이지만 남편의 언어로 바꾸어 해보라고 다시 제안 했다. 남편은 자기 확신이 없는 듯 머뭇거리며 사실 그런 생각들이 있다고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들어보니 독창적이면서도 남편다운 아이디어였다. 나는 그걸 해보자고 했다. 내가 파트너가 되어 진척사항을 체크해주겠다고. 모레까지 할 일도 정했다. 남편은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다시 하늘을 보고 고기와 파절임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남편은 이번 주에 알아봤던 탁구클럽을 가보자고 했다. 테니스도 아니고 탁구클럽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버려질 금요일 밤이었기에 구경 가는 것에 동의했다.


‘네비 찍어봐’

‘이름이 뭐야?’

‘퐁 플레닛’

최근 보았던 이름들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퐁 플레닛 이라니.


탁구는 다섯 번 랠리도 겨우 하는 초보인데 오늘 터득한 노하우는, 나는 전설의 선수다, 라고 빙의하여 잔망스럽게 치니 공이 가볍고 빠르게 네트를 넘어 테이블에서 기분 좋게 튀었다.


잠시 떨어져 살아야 하나 얘기하다 탁구를 치러간 금요일 밤.


자, 또 이야기해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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