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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c Feb 01. 2021

내가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

2월, 다시 시작하기

해가 바뀐다고 눈치껏 사라져 주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2021년을 맞이하는 마음에는 희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20년보다 나쁠 수는 없겠지, 라는 확신이 낳은 긍정인 것 같다)

그렇게 21년의 첫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간 바이러스 상황은 유지와 악화를 되풀이했다. 내 체중도 1월 1일과 비교했을 때 줄었다가 그대로였다가 최종적으로는 늘어난 상태로 월 마감을 했다.


이미 매년 자신에게 속아 왔기에 다이어트는 이번해 계획에 없었는데, 늘어난 상태로 1월을 마무리하니 다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독하고 있는 홈트 앱을 오랜만에 켜 보았다.


하루 20분간 스텝퍼를 활용해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6주짜리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할만한 프로그램인지 확인하기 위해 샘플 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대부분의 동작을 스텝퍼 위에서 하다 보니, 그것이 상체 운동이든 복근 운동이든 허벅지 근육을 같이 쓰게 짜여져 있었다. 그래서 내 팔과 코어는 꽤 쌩쌩했는데도 허벅지가 버티지 못해 나는 20분간 하는 둥 마는 둥 설렁설렁 시간을 때워버렸다.

한동안 천으로 덮어 놓았던 스텝퍼

마침 2월이 시작되었으니 딱 1일 차 운동을 시작해서 3월에 6주 프로그램을 끝마치면 1월의 나태함 쯤은 '만회'가 될 것 같은데, 이걸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도저히 먹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곧바로 떠오른 또 다른 생각.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일을 시작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학교 다닐 때도 나는 B+나 A- 정도를 목표로 삼던 그런 헐렁한 성격이다. 아빠는 나의 악착같지 않은 성격을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만족을 쉽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나를 여러 방면으로 코칭해주신 분이 '돌파'는 내 단어가 아닌데 왜 돌파하려고 애쓰냐고 되물으셨다. 나의 장점은 광야를 돌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만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댄스파티를 여는 사람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한 통찰이다.)


그런 나에게도 몇 번의 뚜렷한 돌파가 있었다.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작은 성공들을 떠올리며 '그때도 했으니 지금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1분도 제대로 못 뛰던 내가 5km 산길을 뛰어야 하는 육상팀에 들어가서 10km씩 뛰는 연습을 해야 했던 경험 같은 것이다. 첫 경기에서 나는 5분 정도를 뛰고 나머지는 걸었던 것 같다. 미국인 특유의 긍정과 밝음으로 "You can do it"이라고 외치는 캡틴의 말을 들으며 '미안, 어차피 나는 못(안)해'라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만두고 싶었는데 팀원들의 응원으로 끝까지 붙어 있었더니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5km를 완주하는 스스로 놀랄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쪽잠을 자며) 27시간 연속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했던 기억 등이 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이렇게 한계점까지 자신을 몰아봤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까의 질문을 다시 마주한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일을 시작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떤 팟캐스트에서 자신이 어떻게 마약을 끊었는지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생각난다. 그녀의 비법은 엄청나게 무거운 웨이트를 드는 운동에 있었다고 한다. 웨이트리프팅을 하며 자신을 이기고 마약을 끊을 수 있었다고.

자칭 '알중'인 지인도 근력 운동을 하면 술 생각이 안 난다고 했는데, 초강도 운동을 할 때 신체에 무슨 변화가 생겨 중독 물질에 대한 탐닉이 줄어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웨이트리프팅을 하며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 이상 중독을 이용해 현실을 회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중독과 초강도 운동의 상관관계는 이미 연구결과가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내일 운동을 하게 될까? 아니, 할까?


운동은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가장 확실하고 쉽게 증명해낼 수 있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썼는데 인간적으로 내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일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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