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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야기, 다른 감정

이야기의 윤리, 저작권의 태도

by 슬기

어느 날, 소설을 읽다가 낯선 기시감을 느꼈다. 작중 상황, 인물 설정, 전개 방식까지 묘하게 겹치는 느낌. 줌파 라히리의 단편을 떠올리게 하는 편혜영 작가의 소설이었다. 너무 닮아서 '이렇게 비슷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힘보다는 불편함이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검색창에 내 감정을 의심하듯 키워드를 넣어봤다. 소설 제목 두 개를 나란히 치며, '나만 이렇게 느낀 걸까?'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봤다. 표절이다, 아니다를 두고 나뉜 말들 사이에서 처음보다 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들 말한다. 수많은 서사는 서로를 닮아간다. 비슷한 이야기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유사성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예로 비슷한 이야기를 접하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던 중이었다. 극 중 재즈 가수 도로테아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우화가 낯익었다. "바다를 찾는 물고기의 이야기"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말한다. "나는 바다를 찾고 있어요."

그러자 나이 든 물고기가 말한다. "여기가 바로 바다야."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졸업 연설문「이것은 물이다」속 문장을 거의 그대로 떠올렸다.

처음엔 놀랐고, 곧 감탄이 뒤따랐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세지를 요약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더 나은 삶을 쫓기보다 이미 누리고 있는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

더 나은 인생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 조 가드너에게 도로테아 윌리엄스가 전한 이 비유는, 원작자가 담았던 철학을 훼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의미를 영화의 문맥에 맞게 정확히 잘 전달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태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한 흔적,

그게 느껴졌기 때문에 감동할 수 있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두고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낀 건 결국, 창작자의 태도 때문이었다. 앞서 읽었던 소설에서 내가 불편했던 건, 작품 자체보다도 그 '느낌'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아무 말 없이 흘러갈 때, 창작자로서의 정직함이 희미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외면한다. 누군가는 인용의 방식을 택하고, 누군가는 모른 척 비슷하게 쓴다.

어쩌면 저작권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창작자는 안다.

어떤 문장을 쓰며 누구를 떠올렸는지, 어떤 구조를 가져오며 무엇을 참고했는지. 그래서 저작권을 지킨다는 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누군가가 똑같이 가져가도 괜찮을까?

누군가 내 목소리, 내 문장을 '자신의 것'인 척 한다면, 나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창작자라면 누구나 아는 감정일 것이다.

저작권을 지킨다는 건 결국,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감정을 정직하게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아닐까.


이 이야기는 내 안에서 태어났다고.

아니면 적어도, 누구로부터 빌려온 것인지를 알고 있다고.

어쩌면 그 작은 고백이, 창작을 지키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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