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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웅 Nov 29. 2019

이날치와 추수감사절, 아버지 미국 전상서

한국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1.


얼마 전 한인 2세 친구에게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영상을 보여주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이 영상을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는 영상을 한번 더 감상하면서 말했다. “한국문화가 만개하고 있는 것 같아.” 화면에는 갓과 수트, 색동저고리와 두루마기, 형광색 양말과 선글라스를 제멋대로 입은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온스테이지 2.0] 이날치 - 범 내려온다 (with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한국문화가 만개하고 있다. 이렇게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케이팝부터 인디, 영화 등 한국문화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꽃피는 중이다. 한국의 수직문화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 친구도 한국음악을 듣는다. 비웃음의 대상이 되던 원더걸스의 Nobody때와는 달리, 한국문화는 누가 봐도 다채롭고 깊이있어지는 중이다.


대체 왜 한국문화가 발전할까? 지금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누구나 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치솟는 집값만 봐도 그렇다. 나라꼴이 이 모양인데 대체 왜 문화가 번영할까?


역사적으로 문화는 긴장이 있을 때 발전했다. 전쟁이나 실존적 위기의 긴장 속에서 사람은 돌파구를 찾고, 이것이 창작의 동기가 된다. 전시에 문화와 기술이 발전하듯, 한국문화의 급격한 발전은 현재 한국에 만연한 부조리를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때문에 나는 한국문화를 그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자랑스러워하는 주체가 기성세대라면 더욱 더. 한국문화는 그들이 기여한 부조리에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전쟁 덕에 문학이 발전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한국문화도 마찬가지다.


2.


격동의 근대 이후 기댈 곳이 필요했던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의지했던 것이 미국이다. 한국 역사에서 미국은 강하고 절대적인 아버지의 면모를 갖는다. 미군 막사에서 남은 음식으로 부대찌개를 만들어 먹던 한국인은, 전쟁이 끝난 후엔 미국에서 건너온 음악과 영화를 보며 문화적 이상향을 형성했다. 창작자들은 지금까지도 음악과 영상에서 ‘빠다 냄새’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검은 색의 한국인
엉덩이 밑에 걸쳐버린 jean
미국 따라 하기만 했던 내 teen
그 시절 내가 꿨었던 꿈은 흑인

비와이 <본토> 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러한 한국인의 종미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미제 쪼꼬렛, 미제 인디언 텐트, 미제 휴대폰, 미국 유학, 미국 이민 등. 미국은 천축국이며 약속의 땅 가나안이며 한국의 정서적 아버지다. 우리는 할로윈과 땡스기빙, 블랙 프라이데이 등 미국 명절을 지키면서 아버지 미국의 풍요가 우리에게도 내려오기를 기도한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사람은 더욱 아버지 미국에 이끌린다. 자애로운 아버지를 갖지 못한 한국의 기성세대가 미국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는 것은 자연러울지도 모른다.


한국문화가 미국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다. 부조리 속에서 아버지 미국의 자취를 열심히 쫓은 덕분이다. 아버지를 따라잡은 다음에 벌어질 일은 명확하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바로 아버지 살해다.



원해 탈본토
그리고 이제부터 내 발 밑은 본토

비와이 <본토> 중



봉준호 "오스카는 '로컬'이잖아"…美 충격 안긴 '팩폭'



3.


미국의 추수감사절, 땡스기빙은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갓 정착했을 때 수확한 첫 작물을 농사짓는 법을 알려준 미국 원주민과 나누어 먹으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즉, 땡스기빙은 미국의 고유한 명절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11월 마지막주에 땡스기빙을 추수감사주일로 기념한다. 한국의 교회가 미국의 명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미국 교회가 한국교회의 직계존속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추수감사주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00년대초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주의pentacoastalism는 방언과 은사 등 기적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의 한 갈래이다. 한국 교회에서 많이 보이는 소리지르고 박수치며 이해불가능한 말(방언)을 하는 모습은 모두 오순절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순복음교회가 대표적인 오순절 교회이며, 남미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도 오순절운동 덕이다.


젊은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개혁주의 기독교 진영의 오순절주의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타락한 주된 요인으로 기복신앙을 퍼뜨린 오순절주의가 종종 지목된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살해가 시작되었다.


4.


정신분석학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듯,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극복은 아버지를 부정하지도, 아버지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내면의 아버지를 인정한 후 자신의 길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빌보드를 정복하겠다는 <KILL BILL-Target: Billboard> 같은 TV프로그램이나 실리콘밸리 뒤꽁무니만 쫓는 모습에서 아버지 미국을 향한 기도를 본다. 한국의 상황이 힘들수록 기도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미국과는 관계없는 자신의 길로 걸어나갈 때 비로소 한국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아직 멀었고, 비와이는 아버지를 죽이는 중이며, 봉준호는 아버지 살해를 끝냈다. 나는 이날치에게서 한국의 초자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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