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민웅 Aug 04. 2019

뇌섹남과 마동석, 옛 마초와 뉴 마초

이 시대의 진짜 힘과 과시

처음 '뇌섹남' 이란 단어를 미디어에서 봤을 때, 나는 이러한 현상이 나름 반가우면서도 단어가 주는 느낌엔 강한 거부감이 들었었다. '뇌'와 '섹시'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념을 우악스럽게 붙여놓은 이 단어는, 끄트머리에서 성별을 '남자'로 한정함으로써 한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순성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단어가 우연히 담고 있는 진실에 놀란다. 뇌는 얼마든지 섹시할 수 있다. 타인의 지성이 주는 열망은 몸을 보고 느끼는 성욕과 본질적으로 같다. 지적인 과시의 목적은 타인을 매혹시키기 위함이고, 지적 과시를 보면서 우리는 그 힘을 갈망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시야가 좁아지고 고양감을 느낀다 - 사랑에 빠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의 집에 처음 나타났을 때 일부러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있던 테레자나, 논쟁에서 이길 목적으로 관련도 없는 옛날 프로세서의 분기 예측 알고리즘을 늘어놓는 너드 엔지니어나, 밀란 쿤데라를 인용하기 위해 소설에서 테레자가 무슨 책을 들고 있었는지를 검색하는 나도, 인스타그램에 반얀트리 수영장에서 찍은 몸매 자랑 포스팅을 올리는 사람과 다를 것은 없는 것이다.  


작년 지인과의 대화에서 '뉴 마초'라는 말을 썼는데, 이 말이 참 적절하다 싶다. 근육과 털을 자랑하는 과거의 '마초'는 이미 실직적인 힘과는 무관한 관상적 개념이 된 지 오래다 (마동석을 보라). 요즘은 FAANG (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나, 프로그래밍할줄 아는 걸 은근히 자랑하는 엔지니어가 이 시대의 실질적 힘인 지성을 자랑하는 진짜 마초다. 몇 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한 '브로그래머'라는 단어나, 우버나 페이스북에서 계속해서 보고되는 남성 중심적 경쟁문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랑 없이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과시인지 알 필요는 있다. 머리 자랑이 몸매 자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 자랑을 하면서도 안 한다고 믿는 자기기만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능력보다도 자신의 의지가 향하는 방향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많이 알아도 자기밖에 내세울 줄 모르면, 구구단 19단까지 외우고 산낙지 잘 먹는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유능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몸만 커버린 아이들이 적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