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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Oct 10. 2022

여자 혼자 숙소를 얻을 때

인도 코친

악은 의외로 평범하다.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롱랜즈

코임바트로 역에 내렸을 때, 더웠지만 그리 땀이 나지 않았다. 

쉬다가 샤워만 간단히 하고 야간 기차에 오르면 

무난히 코친에 도착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는 인도. 

예상하면 늘 벗어나고 별 계획 없을 때 술술 풀리곤 하는.

철저히 준비했다 생각해도 한없이 헤매게 되는 인도!

웨이팅 룸을 못 찾겠다.

사람들에게 물으면 내가 온 곳을 다시 알려주고.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에스컬레이터는 왜 있는지? 사용도 안 할 거면서. 

온몸이 땀으로 범벅! 땀이 끝없이 샘솟아 속옷 속으로 또르르 또르르 흘러 들어갔다. 

꽤 떨어진 곳에 내렸는지 많이 걸었다.

어렵게 역 중심을 찾았으나. 웨이팅 룸은 철로 건너편. 내가 헤매기 시작한 곳.

배가 고파왔다. 먹을 걸 사서 웨이팅 룸에서 먹어야지. 

식당을 둘러보니 포장되는 식사가 없다. 아님 작은 슈퍼. 

찾는데도 땀이 많이 났다.

포장을 포기하고 음식점에 앉아 도사를 먹었다. 


웨이팅 룸은 이층에 있었다. 계단 양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그 앞에 몸이 불편한 아저씨가 화장실 사용료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한 살림이 펼쳐져 있어 눈치가 보였다.

이 계단을 올라 여성 전용 1등석 라운지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 쉬다가 도난 방지 선으로 가방을 묶어 두고 샤워를 했다. 

샤워 후 기분 좋게 책을 읽었고. 

기차 출발 20분 전, 다시 가방을 메고 나섰다. 

다른 계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넘 멀리 돌았나 보다. 

플랫폼 번호를 알기 위해 역 중심으로 가려는데, 또 방향을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을까 둘러봐도 다를 헤매거나 바쁜 사람들. 

너무 멀어진 걸 깨닫고 달리기 시작. 몸에 땀이 샘솟았다. 

출발 10분 전! 계단을 내려가 길을 건넜고 계단을 올라 전광판을 확인해보니, 

아, 플랫폼은 몸이 불편했던 아저씨가 기다리던 곳. 

되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서니 기차가 연착이다. 

솟은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온이 43도. 열이 식지 않았다. 계속 땀이 났다.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는데, 전기가 나갔다. 

열차가 도착하자 껌껌해 칸 찾기가 힘들었다. 

칸을 찾아 오르고 보니 내 자리는 복도 침대. 걱정하던 자리. 

나는 밑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시트를 깔았다. 

인도 사람들이 하듯이.

침대에 눕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화끈거렸다. 

무언가 깨무는 느낌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10분에 한 번씩 깼다. 

내 피를 잔뜩 먹고 몸이 무거워진 빈대를 발견해 죽였고. 

그런데도 몸이 계속 근질거렸다. 

자다가 일어나 확인 또 확인. 이불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도망치는 벌레를 발견해 없애도 자꾸 기어 나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나 시트와 밑에 있던 두꺼운 이불을 걷어냈다. 

마침 지나던 검표원에게 말해 새 시트를 달랬다. 다행히 시트를 갈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깨무는 건 모기일까? 빈대일까? 

잠을 거의 못 잤다. 몸을 살펴보니 다섯 방 정도 물린 듯했다. 

선전했구나. 모기와 빈대 너희들의 어마어마한 공격에. 

에르나쿨람 역에 새벽 4시 도착. 

코친까지 버스를 타야 했지만 나는 이동 대신 웨이팅 룸에서 쉬기로 한다.

해가 뜨면 이동하자. 비어 있는 긴 의자에 누웠다. 

처음엔 편했는데 10분 있으니 굉장히 허리가 아파왔다. 

모기도 세 방 물렸다. 땀냄새 때문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잠이 들었는데 의외로 잘 잤다. 

6시까지. 어이없다. 그리 불편하게 잘 자다니. 

그리곤 살펴보니 모기 물린 자국이 부어올랐다. 

스무 방이 넘었다. 모기, 빈대 너희들이 이겼다!

코친에서 머무는 둘째 날, 저녁 7시 넘어 스텝인 이쿠르가 문을 두드렸다. 

난 씻는 중이라 문을 열지 않고 물었다.

이쿠르는 여권을 복사하게 달라며 방값도 내란다.

씻는 중이라니 다시 오겠단다. 

문 앞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머리는 거머리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머리를 말리는 데 또 두드린다. 

내가 지금은 너무 늦었다 낼 하자니까 사장이 시킨단다. 

할 수 없이 돈과 여권을 줬다. 

다시 여권을 돌려주는데 좀 있다가 생각이 난다. 

숙소 주인이 돈 받고 딴 말 하면 어쩌지? 

이쿠루를 불러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자기 바쁘니까 주인한테 직접 가란다. 

나는 주인에게 영수증을 받기 위해 이층에서 일층으로 내려왔다. 

자갈길을 걸어 마당을 가로질렀고. 눈이 안 보여 다시 렌즈까지 꼈다. 

입구에 서서 영수증을 요구하자 주인이 자기 오피스로 들어와 얘기하자고 한다. 

난 짧은 반바지에 나시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약간 젖어 있었고. 

주인이 깜깜한 자기 방 겸 오피스에 들어오라고 하니 꺼려졌다. 

화가 났다. 낮에 미리 얘기하지 않고 나중에 씻는데 얘기하다니.  

주인이 복사물을 보여주는데 비자가 접혀서 프린트되어 있었다. 

비자 부분만 왜 접힌단 말이냐? 

그리고 이 시간에 왜 복사물이 필요한 거지?

나는 의심했다. 따졌지만 말이 길어졌다.

오케이 다시 가져올게. 엄청 귀찮았다. 

속으로 주인과 이쿠루한테 온갖 욕을 하면서, 

다시 자갈길을 걸어 계단을 올라 여권을 가져왔다. 

여권을 전해줘야 해서 할 수 없이 오피스라고 불리는 방에 들어갔다. 

내가 꺼려하자 주인이 안전하다며 들어오란다. 

나는 화난 티를 잔뜩 냈다. 좀 무서웠다.

"난 손님이야.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지?"

깜깜한 곳에 들어갔다가 되도록 빨리 나왔다. 

주인이 뒤에서 머라 머라 하는데 대답도 없이 휙 방으로 올라와 방문을 철컥철컥 잠겄다. 

이건 미묘한 일이다. 

의심할 수도 있고, 직접 당한 게 없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다. 

주인이 연락한 건 오후 7시, 그리 늦은 밤은 아니었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갔기 때문에 어두워졌다. 

그러나 내일 하자는 데 저녁에 여권과 돈을 내라고 한 것. 

어두운 방에 들어오라 한 것. 오라 가라 말한 것. 

다음 날 주인이 나에게 무례했다며 한마디 한 것까지.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인도이다. 안심할 수 없는. 성폭행 뉴스가 끊이지 않는.

스리랑카 담블라에서 일도 있다. 

호스텔 주인이 저녁에 자기와 오토바이를 타고 저수지에 가자고 했다. 단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렇게 외진 곳을 간다면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거절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여러 번 같이 가자고 말했다. 

주인은 어여쁜 부인의 남편이었고 갓난아이의 아빠였다. 

여행 사이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는 숙소라 선택했는데. 

같이 가서 아무 일 없으면 현지인과의 즐거운 경험일 것이고.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여자 혼자 여행할 때 선택해야 할 일이다. 

조심하라고 여행 사이트에 이 경험을 댓글로 남겼다. 

이미 일본 여행자의 비슷한 댓글이 있었고.

후에 주인이 반박하는 글을 남겼다. 

일본 여행자는 댓글을 지웠고 난 안 지웠다.

브라운 헤나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려야지. 

튜브에 든 헤나 가격을 알아보니 저렴.

굳기를 기다렸다가 2-3시간 지나 씻으면 되었다. 

선이 거칠었지만 해보니 재미있다. 맘에 들었다. 

혼자 신이 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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