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독서모임 한준현 님 인터뷰
문득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니 3B로 저를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Book Nerd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Beer Master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Better Runner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언제부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언가를 읽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군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란 글귀가 떠오르는 대목 같지만 저는 그분처럼 심오한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고요. TV를 거의 안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읽을 시간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맥주를 좋아해서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달리기도 좋아해서 마라톤대회(10K, 하프)에도 종종 참가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세우긴 했는데, 가능할지 싶네요.
'가족'의 소중함과 '공정무역'의 힘을 믿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혜롭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도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더군요.
제가 10년 넘게 하고 있는 일이 ‘공정무역(Fair Trade)’입니다. 해외 저개발국가 소생산자와 국내 소비자 간에 단순한 물품의 거래를 뛰어넘는 가치를 나누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는 무역 활동이 공정무역입니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삶과 지구를 가꾸는 가치가 더 확산될 수 있도록 애쓰고자 합니다.
아내가 공교육 교사이지만, ‘경쟁’을 중시하는 입시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저도 공감하는 바이기에 아이들을 ‘부모협동보육시설’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고, 비록 완주하진 못했지만 대안 초중등학교에 두 아이가 다니게 되었습니다.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접하면서 저 역시 대기업 생활을 접고 지금 하고 있는 공정무역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하나 둘 더 들다 보니 복잡한 도시 속, 수많은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 대해 전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은 자연에 좀 더 가까운 삶, 저와 결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가 더 편안한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삶의 변곡점이 여러 번 있어서 가장 큰 변곡점을 꼽기가 쉽지 않군요. 그래도 가장 큰 변곡점은 아마도 첫 대학입시에 실패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가장 잘 나가는 계열이 의치한약수라 하는데, 저도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당시 열아홉 인생에서 첫 큰 패배감을 맛봤었죠.
후기대학 지원을 하지 않고(여기서 제 연식이 드러날지도 모르겠군요.) 서울 충정로역 인근에 있는 J 재수종합학원에 등록을 했고, 계열을 완전히 바꿔 외국어문계열로 이듬해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전공은 정말 달라졌지만 학교는 달라지지 않더군요.
아마 첫 입시에서 문 닫고라도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공정무역’ 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 같고요. 요즘 아내와 3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갈 일이 있는데, 문득문득 하얀 가운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들곤 합니다.
2023년 6월 성장판을 통해 <박산호작가와 함께하는 나만의 목소리로 소설서평 쓰기> 오프라인 수업을 신청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퇴근 후 평일 저녁, 2달 동안 책 읽기와 서평 쓰기에 대해 배우며 좋은 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었죠. 여기서 나중에 원서 읽기와 발제독서에서 다시 보게 될 북도디 김선아 님과 또 다른 분과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번역가이자 작가인 박산호 님에게서 책 읽기와 글쓰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서평이란 형태로 내가 쓴 글을 나누고 또 피드백받고 했던 경험도 처음이라 그런지 재밌기도 하고 다른 분들의 글맛을 보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시간에 제가 만든 수제맥주를 함께 나눈 순간도 좋았고요.
원서 읽기 모임에는 2023년 10월부터 참여했습니다. 오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몇 달 전 박산호 작가의 서평 쓰기 모임에서 인연이 된 김선아 님이 원서 읽기 북도디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그 달의 책이 조지 오웰의 『1984』였던 점이 성장판 원서 읽기 참여에 큰 역할을 했죠.
아주 오래전 전공시간에 읽었던 책을 책장에서 찾아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고전이란 작품이 달리 고전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책에도 제게도 고스란히 남아서 달리 읽게 되더군요. 지금은 아득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2023년 10월 당시의 한국 상황과 작품 속 그것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책 읽기였어요.
책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의 상황과 어쩔 수 없이 ‘엮이는’ 체험을 주는 기제 같습니다. 책 읽기 인증으로 인상적인 대목을 공유하는 게 있는데, 여러 분이 필사한 것 사진을 올리셨고 저마다 손 글씨를 통해 전해오는 대목과 감상평이 비록 온라인 모임이었지만, 함께 하는 책 읽기의 또 다른 묘미였습니다. 제 생각의 지평이 보다 넓어지는 순간을 때때로 맛볼 수 있어서요.
제게 원서 읽기는 작가의 원문(Original text)이 전해 주는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영미 원작은 원서로 먼저 접하려 합니다. 물론 잘 번역된 책은 언제나 환영이고요.
제가 워낙 맥주를 좋아해서요. 재수학원 앞에서 동문수학한 벗들과 합격의 기쁨을 함께 했던 곳이 한 호프집이었고 난생처음 마신 술이 500cc 생맥주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단순한 생맥주 한 잔이었지만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벌써 한참 전인 듯한데, 이태원 경리단길에 해외에서 수입한 다양한 맥주를 파는 가게(슈퍼마켓)가 있다고 해서 가봤고, 그 골목에서 국산 수제맥주라고 하며 본격적으로 자체 브랜드를 내세운 스몰브루어리들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더부스, 맥파이, 크래프트웍스 같은 곳이었죠. 피맥 같은 단출한 메뉴와 종업원이 영어로 응대하는 그런 곳들이었어요. 그러면서 맥주가 라거(lager)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심봉사가 눈을 뜬 심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제가 사는 동네(과천)의 수제맥주 동호회(인생양조)에 가입하게 되었고, 직접 만든 맥주를 여러 가지 맛보게 되니 이젠 밖에서 사 먹는 맥주로는 웬만해서는 만족하기 어렵게 된 듯합니다. 강남 발제독서 날 시간이 저녁때기도 하고 출출할듯하여 겸사겸사 제가 만든 맥주를 몇 가지 같이 시음하러 가져오곤 합니다.
“정말 맛있다”, “독특한 맛이다”, “사 먹는 맥주와 비교가 안 된다”같은 과찬의 멘트를 들으면 물론 기분이 좋죠. ‘이참에 내 인생 2막은 Book & Beer로 한 번 해볼까나’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괜히 해보기도 합니다.
정리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원저가 국내가 아니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국내 작가 중에서 인생 책을 꼽아 보고 싶네요. 예를 들면 김현의『행복한 책 읽기』 같은 서평에세이 같은 책도 떠오르거든요.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로운 영혼, 지중해풍의 자전적 소설_ 아래 8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세한 선정이유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스토너』 스토너가 스토너 했다. 고독한 성찰의 자전적 소설_ 책제목이 작중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고 작가가 투영된 인물인 듯한데, 저와도 묘하게 여러모로 비슷하여 감정이입해서 원서와 번역본 모두 여러 번 읽었던 책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있을까 싶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올곧이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자신(존재)과 가족, 인간관계 중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줄곧 하게 하는 책 같습니다.
『페스트』 인간과 세균의 불편한 동거, 한계상황 속 자아 찾기 소설_코로나19(Covid 19)가 이 행성을 꼼짝 못 하게 하던 시절,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 옮김, 해냄)와 함께 ‘마스크 쓴 채’ 단숨에 읽었던 책입니다. 한계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소재도 실감 났지만, 무엇보다 ‘카뮈답게’여러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했던 책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평소모습과 한계상황의 모습 중 무엇이 참된 나일까? 나라면 어떤 편에 섰을까? 카뮈의 다른 작품들도 다 좋습니다. 아마도 카뮈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더 동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스모스』 인문학적 소양이 물씬 풍기는 과학 에세이_명불허전의 고전 과학 에세이입니다. 다른 국내외 과학 에세이도 읽어봤지만 아직 이 책을 뛰어넘는 저작을 찾지 못했습니다. 벽돌 책으로 분류될 만한 분량이지만, 모든 챕터 하나하나 놓칠 내용이 없습니다. 긴 호흡으로 음미하며 읽으면 더 좋습니다. 물리학과 생물학 같은 과학적 상식의 많고 적음은 이 책을 읽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마치 칼 세이건 교수 강의실에서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대답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을 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부제(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_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글이긴 하지만, ‘아돌프 아이히만’이란 전범에 대한 재판 사례를 통해 아렌트는 우리에게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지를 생생히 전해 줍니다. ‘악’은 히틀러와 같은 빌런에게만 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누구도 ‘무사유(無思惟)’로 인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Banality’란 단어가 ‘평범성’보다는 ‘진부함’또는 ‘멍청함’이 더 적절한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책의 경우 직역체로 번역이 된 것 같은데, 유대계 독일인인 아렌트가 영어로 쓴 저작에다 여러 개념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보니 번역된 글이 페이지터너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꼭 한 번은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속 주인공 조르바처럼 살고 싶어요. 그냥 멋진 사람 같아요. 제가 살아온 삶과는 너무 다른 결을 갖고 있는 사람이죠. 지금껏 저는 극 중 화자(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연상시키는)처럼 지식인인 체 관념적으로 살아온 듯해요.
조르바는 배움도 짧고, 세상의 관점에서 성공한 삶도 아니었어요. 다소 투박하고 거친듯하지만, 그는 신념을 갖고 몸으로 직접 부딪쳐 행동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남은 삶 속에서 가끔이라도 조르바 같은 모습을 꿈꿔 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고향 크레타 묘비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가 꿈꿨던 삶도 저와 같나 봅니다.
Den elpízo típota. Den fovúmai típota. Eímai eléftheros(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소포클레스)
문득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종교적인 관점 여부를 떠나 사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고, 책도 읽고, 반려견과 산책도 하고, 상쾌한 바람 속에 달릴 수 있고, 좋은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오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