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독서모임 선욱 님 인터뷰
질문이 많은 사람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세 가지를 적어보기 위해 시도하다가 난처해졌어요. 이 질문을 보자마자 ‘자유, 가족, 성장’이라고 자신 있게 적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왜 소중한지, 그것을 위해 제가 어떠한 태도 또는 노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적을 수 없어서 고민이 많이 되네요.
무엇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말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처럼 말이에요. 생각과 행동의 간극을 생각하면 과연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이래서 우리 엄마가 저를 고지식하다고 하시는 건가). 그래도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자유
30대 이전에 했던 수많은 파트타임과 직장 생활은 일 자체에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어요. 커리어에 도움이 되고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쓸만한 번듯한 일들도 거의 없었어요.
저는 인내심이 좋거나 낙천적인 편은 아니었어요. 일과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어요. 저녁에는 아침에 출근할 것을 상상하니 끔찍했고, 아침이 되면 ‘끝내지 않은 학교 과제+출근’의 상황을 종종 마주하면서, ‘차라리 오늘 아침 세상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면 좋겠다.’하는 달콤한(?) 상상을 자주 했어요. 퇴근, 퇴사만이 저에게 잠시나마 숨통을 트여주었어요. 그런 고통의 반복 속에서 20대 초반에 이미 직업관, 행복, 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하게 되었어요.
하루 평균 8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근무시간 외에 출근을 위해 준비하고 근무지로 이동하고, 퇴근 후에는 피곤하니 쉬거나 다음 날을 위해 체력을 아껴야 해요. 잠자는 시간도 이런 목적에 포함이 되죠. 이런 케이스의 사람은 하루 8시간 근무뿐 아니라 사실상 하루 대부분이 ‘근무시간+근무’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돼요.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잡아도 인생의 1/3은 일을 위한 시간에 오롯이 사용하죠.
저는 15세에 처음 파트타임을 시작해서 고3 때를 제외하고 20대 중반까지 오직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삶을 살았어요. 일로 인해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위와 같은 ‘인생 1/3 직장 낭비론’ 계산에 이르자, 이런 삶을 평생 산다면 갑자기 부자가 되지 않는 한 영영 자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나는 부자가 아니다.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일단 일을 하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일을 하거나 일을 준비하는 데에 쓰인다. 이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끔찍하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겠지. 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까? 일을 일처럼 느끼지 않고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지.’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질문인 ‘자유란 무엇이길래?’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뜩이나 인내심도 없는 아이가 자유를 얽매이는 고통을 어린 나이에 경험한 덕분에 ‘자유롭다는 느낌’이 제 삶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자유’가 단지 물리적으로 직장에 매어있음의 여부가 아니라 더욱 내면적인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했고요. 숙제의 방향이 달라졌죠.
가족
살아보니 제가 가장 크게 받는 스트레스와 위로는 모두 가까운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나오더라고요. 가장 오래 함께하는 것은 가족이잖아요. 가족은 저의 심장이며 피부와 같아요. 가족과의 관계, 내 가족의 안녕은 저의 행복과도 직결되죠. 가족이 안정되고 화목한 것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 아닐까 합니다.
성장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왕 사는 거, 더 성장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낫겠죠. 그러면 성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와요. 삶에 의미와 성장이 꼭 있을 필요는 없지만 작년이든 올해든 변화 없이 똑같은 삶이라면 지루할 것 같아요. 저는 지루한 것은 싫거든요. 변화나 성장은 꼭 외부로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면적으로 작년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나와 타인을 위해 나아졌다고 생각된다면, 이 험난한 인생을 사는 것이 조금은 더 보람 있고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합니다.
2017년 가을 즈음, 인천에 며칠 머무를 일이 생겼어요. 그때 심심해서 주변 독서모임을 찾다가 성장판 오픈채팅방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는 못 갔지만 계속 오픈채팅방에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저는 사실 엄청 Slow Learner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맨땅에 헤딩하는 스타일이라 저의 비결을 따라 하면 많이 후회하실 거예요:)
투자를 잘한다고 오해들을 하시는데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저도 착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시장이 좋았던 거였어요. 결국 시장에게 호되게 혼났습니다.
영어는 사실 비결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인데, 영어 회화를 단기간에 잘하려면 많이 말하고, 많이 듣고, 그때그때 필요한 표현 위주로만 공부하면 됩니다. 바로 써먹을 지식은 너무나도 잘 외워지고 배우는 재미가 엄청나서 계속하게끔 도파민이 마구마구 솟아나는 것 같아요. 실수와 교정은 나중에 생각하는 거고요. 어차피 초보는 교정해도 잘 안 돼요. 섣부른 교정과 너무 많은 인풋은 오히려 기를 죽이고 속도만 늦추죠.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려고 하는데 매 순간 교정해 주지 않고 넘어지는 것을 과정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실수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계속 말하는 행위, 일부만이라도 알아듣고 소통이 되는 그 상황 자체를 즐기며 미친 듯이 몰입하는 거예요. 뻔한 조언이죠? 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효과가 있어요. 단지 다들 이렇게 하지 않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는 거고요. 간절하지 않다던가.
저는 원래 영포자였어요. 대학교 때 토익이 200점 수준이었어요. 스물여섯 살에 스펙을 쌓으려고 처음으로 영어 회화에 도전했는데요, 현실에서의 변화와 스펙 업그레이드가 절박한데 돈과 시간이 없어서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영어 회화를 공부했어요. 수중에 3백만 원도 없었어요. 몇 달 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일정을 정해 놓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비행기표를 예약하면 백만 원도 안 남았어요. 호주에 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데 영어를 못하면 꼼짝없이 굶거나, 농장에서 영어도 못 배우고 일만 해야 하는 상황이 뻔히 보였어요.
그래서 출국 전에 미친 듯이 영어회화를 연습했어요. 공부한 지 한 달 만에 영어로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주변에서 저를 영어로 말하는데 환장한 사람처럼 봤어요:) 다행히 언어에 감각이 있었는지 3개월 만에 거짓말같이 실력이 늘어서 호주에서 영어로 면접을 보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어요. 절박함과 결핍, 그리고 희망(좋은 직장을 얻겠다는)은 아주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죠. 제가 잘한 것은 저를 그런 상황에 놓이도록 환경을 세팅한 거예요.
제과제빵은, 원래 고객맞춤형 케이크를 제작해 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어요. 코로나 때 영어강의는 모두 취소되고 코인 투자 수입으로 돈이 생기면서 남는 시간에 버킷 리스트 한 개를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케이크샵 창업 수업을 들었어요. 제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해서 케이크 꾸미는 기술이 재미있고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 수업이 끝나고 바로 케이크 가게를 계약했어요. 빵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가족에게 맡기고요:) 저는 케이크만 예쁘게 만들었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지만 손목에 무리가 가고 맞춤형 주문을 받는 것에 스트레스가 커서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두루두루 잘하는 것이 많고 재주가 많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가 어쩌면 제가 잘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어필하기 유리한 분야의 기술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엔지니어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일을 잘해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제가 잘하는 영어회화, 캘리그래피, 케이크 만들기, 코인 투자 수익률은 쉽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결과가 좋은 것들만 보여주면 되고요:)
누구나 잘하는 게 많을 텐데 저는 조금 잘하고 흥미가 있으면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요. 뭔가 관심 있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보고, 아니면 언제 관둬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남들이 봤을 때 끈기 없다, 시간낭비다, 돈낭비다,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요? 어차피 내 돈과 내 시간으로 하는 것이니 남의 시선쯤은 가볍게 무시하면 돼요. 내 호기심 충족하면 최고이고 경험치는 덤이고요. 낭비 좀 하면 어때요? 인생 뭐 있나요. 재밌으면 됐지.
책은 저에게 희망이고 수단이고 답지예요. 자유를 추종하는 제가 어떤 시기에 자유롭지 못하게 느끼거나 답을 못 찾고 있는 삶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집에 사놓은 수 백 권의 책들을 보며 ‘답은 언제나 내 주변에 있다, 나는 단지 답을 찾기 시작할지 말지 결단만 하면 될 뿐’하고 생각하게 해 줘요. 엄청 든든합니다.
책 구입을 미루지 않으려고 해요. 읽기보다 사기가 더 쉽더라고요:) 뭘 어떻게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수많은 다른 놀거리(유튜브, 넷플릭스 등)들과 경쟁하여 책 읽기가 얼마만큼 나에게 노출되느냐, 자극을 주느냐, 자주 읽느냐가 독서량을 결정짓잖아요. 양이 질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메모를 미루다 보면 나중에 그 메모가 나에게 필요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경우처럼 관심 있는 책, 또한 필요한 분야의 책이 있는지 나중에 사야지 하고 구입을 미루다 보면 결국 필요성이 희석되어 내 삶에서 중요한 힌트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불안해져서 이 불안을 동기부여 삼아 충동적으로 책을 삽니다.
이렇게 최근에 구입한 책들은 책꽂이에 바로 꽂지 않고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리적거리게 내려놓기도 해요. 유튜브 화면에도 노출률이 좋은 것이 클릭률이 높듯이 새로 산 책이 자꾸 눈에 띄면 조금이라도 더 읽게 되더라고요.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줄을 쳐요. 줄 친 부분이 많은 페이지는 귀퉁이를 접어요. 엄청나게 중요한 페이지다 싶으면 귀퉁이를 두 번 세 번 접어요. 그러면 그 페이지가 두꺼워져서 다음에 재독 할 때 더 먼저 펼쳐져서 좋아요.
한 달에 한두 번 남편과 ‘45분 독서’를 해요. 45분 타이머를 맞추고 시간이 되면 각자 읽은 부분을 설명해 줘요. 시간이 많으면 두 세트로 진행해요. 어떻게 남편과 독서토론을 할 수 있냐고요? 이건 저의 결혼 로망이었어요. 결혼 전에 독서 모임을 주관했는데요, 모임의 목적은 ‘나는 독서모임에서 남편을 고를 거야. 그리고 결혼 후에 같이 책을 읽을 거야’였어요. 지금의 남편이 당시 그 독서 모임에 가장 많이 참석한 사람이었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베스트를 고르지는 못할 것 같고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책으로 대체해 볼게요. 베스트를 찾으려면 너무 오랫동안 고민할 것 같고 또 베스트에 선정하지 않은 책과 작가에게 죄송스러울 것 같거든요. 갑자기 제가 빨간 머리 앤의 캐릭터 같은 생각이 드네요:)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2021):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이 세계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추측과 팩트가 매우 흥미로워요. 편견과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하느님과의 수다』 사토 미쓰로, 인빅투스(2015): ‘나의 믿음은 내 내면세계에서 만의 상식, 나만의 믿음일 뿐’이라는 주제를 매우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해요.
『백만장자 시크릿』 하브 에커, 알에이치코리아(2020):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나의 잠재의식 때문이다’라고 하며 처음으로 제 잠재의식에 문제제기를 하게 해 준 책이에요.
『시크릿』 론다 번, 살림비즈(2007): 이 책을 그대로 믿고 홀린 듯이 따라 했어요. 그 결과 단기간에 영어회화를 습득하고,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기타 다양한 꿈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도 마음이 힘들 때는 마인드 세팅을 위해 다시 펼쳐서 소리 내어 읽어요. 유튜브 채널에 한국어와 영어원서 낭독을 올리기도 했어요.
『될 일은 된다』 마이클 A. 싱어, 정신세계사(2016): '나의 호불호가 내 인생의 더 좋은 것을 막는다. 나보다 삶이 나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더 잘 안다.'는 메시지를 주며 제 호불호를 내려놓는 시도를 하게 해 준 책이에요.
중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명상을 통해 ‘모든 원인은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에서 비롯되어 현실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명상 3개월 만에 드라마틱하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삶을 원하는 대로 살게 된 레스터 레븐슨. 『깨달음 그리고 지혜』라는 책에서 이 내용을 접하고 그가 생각의 원인이 된 생각을 계속 쫓아가는 과정을 경험한 그 명상을, 저도도 경험해 보고 배우고 싶어요.
괴로울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마음이 초초할 때: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나오는 단어 '소풍'처럼. '인생은 한낱 잠시 놀다 가는 가벼운 소풍과도 같은 즐길거리다.'라고 생각하면 삶의 무게가 좀 덜어지더라고요.
예전에 2년 정도 책, 영어공부법을 공유하고 코칭 수업을 진행한 유튜브 채널 <나너랜드_도란도란>이라는 채널이 아직 있지만 지금은 매우 낡았습니다. 그래도 도움 되는 내용은 꽤 있어요.
이 얘기는 정말 하고 싶었는데요. 저는 어릴 적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으려고 시도했는데 금세 흥미를 잃고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어요. 저는 제 집중력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저에게 적절한 책, 좋은 책을 추천해 주는 멘토가 없어서 저에게 맞지 않는 책만 접하게 된 것이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허리디스크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고요.
서른두 살 즈음에 1년 동안 100권 정도를 읽는 기염을 토했어요. 그때 추천 도서를 참고한 분이 세 분 있었어요. ** 북튜버, 『365 공부 비타민』 작가 한재우 님의 팟캐스트, 그리고 성장판 신정철 님이었어요. 이 분들이 추천한 책을 편견을 내려놓고 거의 모두 구매했어요. 1년 동안 약 250권 정도 되더라고요. 많이 사니까 많이 읽게 되었고요. 그 이후 제 삶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후에 저는 책 추천에도 궁합이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제가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과 비슷한 방향과 깊이를 가진 사람이나 매체를 만나면, 저에게 필요한 책이 제 삶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때 필요한 태도는 편견을 버리고 예스맨이 되어 추천받는 책마다 계속 구매하는 겁니다. 비용이 부담되면 매주 도서관에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