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드라마엔 늘 여자친구 세 명이 나올까?
최근 서른 아홉이 된 기념으로 드라마 서른, 아홉 정주행을 시작했다.
주인공인 피부과 의사 차미조(손예진 분), 연기 선생님 정찬영(전미도 분), 그리고 장주희(김지현 분)의 인생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메인 줄거리는 불륜 아닌 불륜 관계를 십년 째 이어가고 있는 정찬영이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남은 삶을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시한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차미조는 두 번의 파양을 겪고 현재의 양부모님께 입양되어 유복하게 성장하지만 어린 시절의 아픔으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고 성인이 되어 인생 막장 친모와 조우하면서 힘들어하는 역할이다.
그러면 장주희에게는 어떤 스토리가 있느냐 하면 솔직히 별 거 없다.
아픈 엄마를 간호하느라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 백화점 판매직으로 일하다가 진상 고객의 갑질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동네 중국집에서 알바를 하는 노처녀.
차미조나 정찬영처럼 그럴듯한 애인도 없이 중국집 사장을 짝사랑 하는 중이다.
학벌도 직업도 상위 1%인 두 친구 사이에서 늘 뒤쳐지고 소외되는 역할로, 미조와 찬영이 서로를 의지하며 찐 우정을 나누다가 격한 감정의 진수는 둘만 차지한 채 남은 잔여물을 옛다 하고 건네면 그것조차 감지덕지로 받아 먹는 모습이다.
원래 여자들 세계가 그렇다.
또래 셋이 모이면 주인공 역할인 애가 꼭 생긴다.
이 역할을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매력과 기운이다.
셋 중 가장 똑똑하고 자존감이 높고 기가 센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의외로 제일 예쁜 애가 무조건 대장이 되는 구조가 아니라 똑똑한 쪽이 1번, 예쁨을 담당하는 쪽이 2번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보통 제일 희미한 인상을 가진 쪽이 3번이 된다.
여자 셋 트로이카가 메인 롤로 등장하는 드라마라면 어느 것을 보아도 항상 이 규칙이 적용된다.
서른, 아홉이 그랬고 검색어를입력하세요www가 그랬고 로맨스가필요해1,2,3 모두 그랬고 술꾼도시여자들이 그랬고 멜로가체질이 그랬다.
당연하게도 나는 늘 1번이었다.
모임을 정하는 것도, 만나서의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2번과 3번은 고민이 생기면 각자 나에게 연락해 상담을 청해 왔고 나는 각자를 돌보며 셋이 모여도 어색하지 않게끔 적절히 대화를 안배했다.
특히 3번이 은연 중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주의와 배려를 다 기울여야 했는데 나는 이 과정이 몹시도 피곤하고 신경쓰였다.
셋이 놀다가 남자끼리 온 테이블이랑 합석이라도 할라 치면 예쁜 2번은 물 만난 고기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나야 1번이니까 MC라도 보면서 나름 즐겼지만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3번이 마음에 걸려 내 파트너를 양보하거나 아예 합석 자체를 거절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였다.
여자 셋은 왜 유비 관우 장비처럼 시원시원하게 도원결의를 맺는 게 안되는 걸까?
복잡미묘한 관계의 딜레마와 권력의 불균형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건 너무 지치는 일이다.
이도 저도 귀찮았던 나는 결국 여자끼리 모이는 모든 모임의 인원수를 넷으로 변경함으로써 간편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역시 1번다운 재치가 아닐 수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