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코 에세이 - 나의 18세 K.

하루 감정코칭을 말하다 ep.4

by 따뜻한 바다


18세 K.에게


나지막히 조심스레 건내는 너의 사과.


이미 엄마는 마음속으로 너에게 다섯 번이나 사과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이것부터가 넌 나보다 위는 위다.)

글쎄. 엄마도 좀 화가 났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 잘못이 아닌 나의 의도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화였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난 너희들에게 열심을 냈고, 그 열심히가 결국은 엄마의 행복을 위한 것이란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엄마는 여전히 널 위해서 라는 명분으로 너흴 부담스럽게 한다.

네가 이 글을 읽을 그 때도 그러할수도.

그건 마치 내가 좋아 열심히 30첩 반상을 차려놓고, 왜 넌 고것밖에 먹어주지 않냐며 화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너의 상황, 너의 기분, 너의 것들은 생각지 않고 온전히 나의 것만을 생각하기에 나온 일들이다.

헌데 차려준 건 고맙지만 안먹고 싶은걸 어쩌냐며 넌 그렇게 따져 묻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 먹고싶다고 했었냐고 되받아치지도 않았다. 고맙게도 너는 나의 욕심을 욕심으로 보지 않고 사랑으로 봐주었기에 엄마에게 아픈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게 고마워 몇 번이나 너에게 사과할 뻔 했다.

그런데도 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챙겨주던 따끈한 둥글레차가 담긴 텀블러는 널 따라가지 못했고. 나에게 머리를 묶어달라 할까 말까 하는 너의 소리없는 부스럭이 마음에 쓰였음에도 네게 이런 나의 마음을 쫘악 펼쳐놓고 하나하나 집어가며 얘기하지 못했다.

그냥 네가 고맙기도 하고 내가 잘못하는 것도 알지만 그냥 서운했다

이런 나의 애씀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못이기는 척 먹어주면 되는데 지지배 좀 먹어주지 하면서도, 그래... 못먹는 저도 속이 어떻겠어.. 하면서도 그래도 좀 먹지.. 하며 이래저래 시끄러웠다.

네가 사과하고, 다시 텀블러가 널 따라가 가방에 남겨지고 너의 똥머리를 묶는 내내 내 손은 너무나도 신이났다. 널 위해 하는 일이 아닌, 날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게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지는 아침이었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힘들고 불편한 건, 네가 아닌 나였다.


넌 텀블러가 가지 않으면, 그냥 물을 마셨고, 똥머리를 묶지 않고 간 날은 그냥 아래로 묶으면 되었다. 남겨진 텀블러와 머리끈을 보면서 세상 불편한 건 바로 나였다.

그걸 알아서 했던, 몰라서 했던, 넌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고, 마음껏 행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더 고맙고 날 아주 조금만 닮은 네가 더 고맙다.

나보다 위는 위인 네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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