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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Apr 12. 2023

학교가 싫어, 지루해!

95.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불안 불안했는데,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아이가 복통을 호소해 조퇴하고, 열까지 높아 결석했던 그 이튿날이었다.

“학교가 싫어! 공부도 싫고.”

이제나저제나 했는데 이렇게 일찍 터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입학하기 전 아이는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던가. 연초 예비소집에 아빠와 학교 갈 때 아이는 선물 받은 초등학교 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 들고, 멋진 외투까지 걸치고 따라나서려 했다. 입학식 때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종달새처럼 밝고 명랑했다.

그러던 아이가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학교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전에 없이 자주 복통을 호소했고 아플 때면 “누군가 발로 내 배를 밟고 지나가는 것 같다"라며 배를 움켜쥐었다.

할아버지를 포함해, 아이만 바라보는 보호자들은 착잡하고 난감했다. 처음엔 어린이집, 유치원 등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런 고통을 호소한 바 있으니 이번에도 그와 다르지 않겠지, 기대했다. 그러나 세번 네번 거듭되면서 그런 기대는 사라졌다. 그동안 조퇴하거나 결석한 것이 벌써 댓 차례나 된다.

친구와 등굣길. 썩 밝지 않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처방을 하지 않았다. 좀 쉬면 나아질 거라고만 말했다. 지난주 금요일 아예 결석했을 때, 아이는 집에 있는 동안,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잘도 지냈다. 혼자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피아노도 치고, 괴상한 춤도 추며 지루할 틈 없이 없었다. 특히 금요일 아빠 회사 동료의 딸인 동생 봄이가 왔을 때는 방방 뛰며 밤늦도록 놀았다. 이튿날 라온이와 시헌이도 합류하자 한강 고수부지, 앙카라공원 등지를 쏘다니며 놀았고, 그것도 모자라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와서 미끄럼틀 따위를 타며 또 놀았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 아이는 목이 조금 잠겨 있었지만, 그건 격렬한 놀이의 후유증일 뿐이었다. 페이스톡으로 듣고 본 말투와 표정은 설익은 제주 밀감처럼 탱글탱글했다. 그런 아이가 학교생활에 대해 말을 걸자, 이내 화면에서 사라졌다. 제 엄마의 핸드폰이 다시 잡은 아이는 소파 귀퉁이에 쭈그리고 있었다. ‘내일부터 또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또 다른 학원도 가야겠구나~.’ 그런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그래도 기왕 꺼낸 거, 어떻게든 구슬려서 뭐가 문젠지 알아봐야겠다.

“주원아, 학교나 학원에 잘 다니라고 부탁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주원이의 복통이나 열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거야.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어른은 바로 나(할아버지)야. 그래서 힘(영향력)도 가장 세지.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 말을 쉽게 뿌리칠 수 없을 거야. 주원이의 생각을 말해주면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한테 전해줄게.”

이렇게 선행학습을 해야 하니~ 학교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영향력을 앞세워 구슬리자 아이가 넘어왔다.

“학교 가기 싫은 거야, 공부하기 싫은 거야?”

“공부가 싫어.” 공부가 싫으니 학교 가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랑 만나서 노는 건 좋구나. 그러면 그렇지. 공부 가운데 어떤 게 싫어. 다 싫은 건 아니겠지?”

“수학이 싫어. 무용도.”

“수학은 원래 주원이가 싫어했잖아. 어려워서 싫은 거야?”

“아니. 아빠랑 다 한 거였어. 그래서 지루해.”

“그렇구나. 무용은? 주원이 발레 학원 다닐 때 춤추는 거 좋아했잖아. 지금도 집에서 흥만 나면 이상한 춤 추잖아. 몸을 비틀고 궁둥이 씰룩거리고, 혀도 쑥 내밀고.”

“응,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줄 세우고, 기다리게 하고 하는 게 많아. 그래서 지루해.”

가을에 있을 학예회에 대비해 공연을 준비하는데, 줄 맞추는 것부터 하는가 보다. 재미있을 리 없다. 군인도 가장 하기 싫은 게 제식훈련 아닌가.

“국어는 어때?”

“~.”

“주원이 책 읽고 글 쓰는 거 좋아하잖아, 국어책에는 그림 이야기가 많으니 주원이가 좋아할 텐데.”

“그것도 지루해.”

“그래? 뜻밖인데.”

“응. 읽고 쓰고, 다 아는 거 또 하라니까 지루해.”

“그렇구나. 이미 해봐서 아는 걸 똑같이 시키니까 싫구나. 할아버지는 몰랐어.”

학교가 싫다거나 공부가 싫다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되풀이하기 때문이었다. 학교 공부가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발표하라고 하는 것도 유치원에서 다 해본 것들이었다.

놀 시간에 학원 선행학습으로 지치고, 학교에선 지루하고.

문제는 선행학습이었다.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수준의 내용을, 성장 과정에 맞춰 가르친다. 그게 교과과정이다. 헌데 아이들은 이미 집에서 혹은 학원에서 초등 1년 교과과정을 훌쩍 뛰어넘는 것들을 배운다. 공부에 흥미가 생길 리 없고, 수업에 집중할 리도 만무다.

“주원이 어떤 학원에 다니지?”

“피아노, 미술, 피아노 학원 그리고 눈높이 자율학습.”

“많이도 다닌다. 주원이는 어떤 학원이 좋아.”

“미술.”

“피아노는?”

“응, 그것도 좋긴 해.”

미술학원 가는 것만큼 좋지는 않은가 보다. 집에서 틈만 나면 피아노 치며 노는 걸 생각하면, 아마도 선생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깊지는 않은가 보다.

“싫은 건?”

“영어.”

“그래? 요즘엔 주원이가 재미를 붙였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주원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니는 건데, 왜 싫을까?”

“매일 시험 봐야 해. 시험 보면 틀리는 것도 있고.”

학원에선 매번 받아쓰기 시험을 한다. 숙제를 제대로 했는가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점수도 공개한다. 아이는 틀리는 것이 싫긴 하지만, 옆 친구랑도 비교당하는 건 더 싫다.

사실 초등학교 1년생에게 영어 단어와 그와 대응하는 한글 낱말을 익히고 또 정확하게 쓰라는 건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교과과정 상 지금 ‘ㄱㄴㄷㄹ’이나 ‘가갸거겨’를 익힐 때다. 우리말 철자법이 얼마나 어려운가. 거기에 영어 단어까지 외워서 쓰라고 하니, 아이가 지겨워할 법도 하다. 초등 1년 아이에겐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우리 교과과정을 100%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범람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학교 교과과정만큼 아이들에게 적합한 건 없다고 믿는다.

파자마 놀이. 언제 아팠던 적이라도 있었나?

“주원아, 틀리는 거 걱정할 필요 없어.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틀리면 어때. 언젠가는 다 알게 되는 것들이야. 말과 글을 배우는 이유는 제대로 듣고, 말하기 위해서야. 그다음이 읽고 쓰는 거지. 지금 주원이는 재미있게 듣고 말하고 읽을 수 있으면 돼. 글자 틀리는 거 걱정하지 마. 다른 애들보다 더 틀렸다고 기죽지도 말고.”

아이는 눈높이 자율학습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가장 가기 싫어하는 것이 눈높이였다. 학원에 가면 일단 선생님에게서 과제를 받는다. 아이들은 독서실 칸막이 책상에 앉아 45분 정도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하원 한다. 모르거나 막히는 게 있으면 선생님이 와서 도와준다. 하는 방법만 다를 뿐 내용은 역시 선행학습이다.

“눈높이 자율학습 학원은 다닐 만해?”

“싫어.” 단칼이다.

아이가 알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숨소리만 들리는 학원, 비좁은 칸막이 책상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문제만 푸는 것을 어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배겨낼 수 있을까. 돌아다닐 수도, 말 한마디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징벌방이다.

선행학습이 학교 공부의 흥미를 떨어트려 오히려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꺾고, 결국 학업 성취도를 떨어트린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낱말이나 계산 기술을 외우도록 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흥미의 싹도 자랄 리 없다. 아이가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따위의 불안, 더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욕심 탓에 등장한 것이 초등생 대상의 학원과 선행학습이다.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학교 교문 앞에는 학원 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앙카라 공원에서

이야기 끝에 아이는 주말에 산이네 가겠다고 한다. 산이랑 뒷산이나 백사실에 산책하고 싶다는 것이다. 와서는 이틀 밤을 자고 가겠다고 한다. 얼마만인가. 겨우내 산이네는 얼음집처럼 추웠다. 웬만하면 아이가 오는 것을 막고 대신 우리가 갔다. 아이도 그런 줄 아는지 오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요새 산이가 많이 약해졌어. 뒷산에만 올라가도 혀를 한 뼘만큼이나 내밀고 헉헉거려. 한라산까지 올라갔다 온 주원이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괜찮아. 내가 천천히 가면 돼. 힘들면 돌아오지 뭐.”

카르페 디엠. 매 순간 행복하자.

“맞아. 힘들면 쉬고, 더 힘들면 돌아오면 돼. 주원이는 산이에게 최고의 눈높이 친구네.”

지난 4월 3일, 아이가 이웃의 친구 집에 가서 놀 때였다. 아이는 엄마가 아빠가 상기시키지도 않았는데, 친구에게 제주 4.3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더란다. 얼마나 많은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지, 그 속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많이 다치고 무지개 다리 건너고 또 힘들게 살았는지, 너븐숭이나 북촌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들어가며 이야기하더란다. 요즘 어른들은 가까운 사이라도 공연히 정치적인 오해나 마찰을 빚을까 봐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그렇게 크면 되는 것 아닐까. 이웃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그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렇게 성장하도록 돕는 게 학교이고 공부여야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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