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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May 18. 2023

금강산도 식후경, 식후경보다 집

97.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벌써 열흘이 가까워온다. 아이와 그렇게 오래고 긴 여행을 다녀와 놓고도 차일피일했다. 그 사이 할배가 1박 2일 놀다 오고, 그 덕에 독감까지 걸려 집안을 긴장으로 몰아넣긴 했지만, 보고서 한 장 마련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다. 재미로 하는 일인데, 그것조차 부담스러워졌나 보다.

독감 예방주사를 같이 맞고도 아내와는 달리 혼자 감염돼 골골댄 것이나, 매사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나, 이런 것들은 ‘노화’로 말미암은 게으름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목이 아프고, 밤이면 잠들기 힘들 정도로 기침이 쏟아지던 증상이 현저히 가라앉은 뒤에야(독감 5일째) 겨우 노트북을 열었다.

전체적으로는 뿌아뿌아 신났지만

가정의 달, 어버이날을 앞뒤로 2박 3일 딸네와 함께 한 경주 여행이었다. 외견상 영락없는 효도 여행이지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 아빠가 출발 이틀 전 코로나 감염이 확인돼 동행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리는 딸네와 함께 가는 것이 썩 편하지 않았다. 길동 시댁이 마음에 걸렸다. 딸네가 친정 식구만 모시고 여행갔다고 하면, 설사 부처님급 시부모라도 노발대발할 것이다. 철모르는 아이가 고맙게도 ‘역사를 잘 아는 산이네 할아버지가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만, 아이 아빠의 코로나 감염 사태만 아니었으면 따라나서지 않았다.

메인 드라이버인 아이 아빠가 빠졌으니, 대타를 마련해야 하는데 마음편하게 운전해줄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엄마와 아이는 이미 월화 이틀 휴가 혹은 현장학습 허가를 받은 상태였고, 프로모션에 당첨돼 헐값에 예약한 콘도 숙박을 날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드라이버로, 할아버지는 할머니 보조로, 또 아이의 일일 선생님으로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왕 하는 선생님 노릇, 아이 엄마가 짜놓은 일정에 경주박물관 관람, 토함산 탐방 등을 포함하고, 정규수업과 방과후교실로 나누어 촘촘한 수업계획을 짰다. 아이에게는 몹시 벅찼을 텐데도 아이는 무조건 ‘좋다’. 학교 밖 공부는 다 좋은 것이다. ‘벌써!’

그러나 교실 밖 아이는 불량학생이었다. 제가 초청한 선생님의 이야기도 잘 듣지 않고,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엄마에게도 투정 부리고, 그나마 어려워하는 할머니의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엄마와도  떨어져 저 혼자 돌아다니겠다며 뒤질 파기도 했다. 현장수업 첫 시간부터 이런 투정과 떼에 직면했으니,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던 아이 엄마가 “전에는 안 그러더니 오늘 왜 그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에겐 그럴만한 이유, 불가피한 까닭이 있었던 것을 그 나이 되도록 어른들은 몰랐다.

첫날 천 리를 달려와 한 첫 수업은 불국사 탐방. 부처님의 세계를 이 땅에 실현하겠다는 뜻으로 지은 절이니, 아이의 현장수업으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비롯해 최소한 두 차례 이상 다녀온 터라 대개는 불국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일정에서 빼기 일쑤였다. 특히 과도하게 비싸 보였던 입장료는, 불국사를 비껴가는데 더없이 좋은 핑계거리였다. 언제 그곳에 다녀왔는지도 기억에 없는데, 아이 덕분에 방문한 불국사는 그야말로 불국토에 한층 더 가까이 가 있었다.

스쿠르바를 물고도 표정이 영 꽝이다.

문제는 아이가 배가 고팠다. 유식한 말로 ‘당이 떨어져’ 기분이 저기압 상태였다. 대체로 그렇듯 아이들은 배가 고프거나 에너지(당)가 떨어지면 우울해지거나 화가 난다. 그럴 때면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보통 자기가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으로 해결한다.

아이는 이날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여행 준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려 6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물이나 한 모금 마셨을까?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첫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이는 제 것을 시키지 않았다. 따로 계획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려야만 먹을 수 있는 것, 할아버지가 뺏어 먹을까 봐 눈물까지 흘리며 신경전을 펼쳤던 것, ‘소떡소떡’ 사 먹을 요량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토막 떡 3개, 땅콩 소시지 3개로 아침을 때웠다.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다음엔 기름 한 번 넣고 경주로 내달렸으니 아이로서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잠도 안 자고 재잘댔다.

오전 11시 불국사 주차장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일주문으로 올라가는 곳에서부터 급변했다. 마침 ‘달고나’ 리어커와 ‘호떡’ 리어커가 길가에 있었다. 아이는 두 차례 할머니와 엄마를 부르며 ‘저기 할머니 좋아하는 호떡 있다’ ‘엄마 달고나 안 해?’라고 물었다. 저의 의사를 넌지시 내비친 것이었다. 그러나 세 어른 중 누구도 아이의 의중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직 문 열지 않은 거 같은데. 빨리 가자. 저기가 불국사야.”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엄마나 할머니의 손도 뿌리치고, 느적거리며 앞서 걷는 어른들 속을 태웠다.

일주문 앞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그런 아이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저 문 재미있게 생겼지? 기둥은 두 개고 지붕은 하나야. 여닫는 문도 없고 담도 없어. 문이라면 담과 함께 드나드는 사람을 통제하는 곳인데, 절집의 제일 앞문은 기둥과 지붕만 있고 모두 터져 있어. 사람을 가려 드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기부터 부처님의 세상입니다’라고 표시할 뿐이야. ‘그러니 아무나 들어오세요. 다만 예의를 갖추시고.’ 불국사는 그런 부처님의 세계 즉 이상적인 세상, 불국토를 이 땅에 세운 거야. 그러니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겠어.”

그러나 아이는 몸을 비비 틀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할배의 이야기는 ‘재미가 1도 없었’다. 아이는 ‘당이 떨어져’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아이가 원하는 달달이를 제공하기는커녕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만 하니 부아도 났을 것이다. ‘왜 저런 곰탱이들을 왜 따라왔을까?’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불국토란 게 이렇게 배고프고, 엄마 할머니도 매정해지고, 할아버지는 쓸데없는 주접이나 떠는 곳인가?’

떼를 쓰면 사하촌에라도 달려가 초콜릿이라도 사다 줄 알았는데 재미없는 수업은 계속됐다. 일주문을 지나고, 동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구품연지에 반달처럼 동그란 홍교를 건넜다.

숙맥 같은 어른들의 단호함도 통하나보다.아이는 사오정 셋 앞에서 심통과 떼를 포기했다. 슬그머니 엄마 손을 붙잡고 걷다가 불국사박물관 팻말을 보더니 박물관에 가자고 손을 끌었다.

박물관은 지식의 샘이고 창고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박물관을 찾아가는 게 여행의 기본이다. 학습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백날 듣는 것보다 관련 분야 박물관에서 한나절 쏘다니는 게 낫다! 할배의 생각이다. 유료라서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 더 좋았다. 탄생에서부터 소실, 파괴 그리고 중창에 중창을 거듭한 불국사의 역사, 석가탑 다보탑의 보수와 복장 유물,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의 복원 등을 정리해놓은 모든 방을 훑어봤다. 다리가 아플 법도 한데 아이는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아이는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안 북카페에서 뒹굴거리다 본당으로 향했다.

청운교 백운교 앞에 섰을 때 가게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곳 역시 기념품 파는 곳이었다. 아이가 실망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슬그머니 아이 손을 잡고 가게 쪽으로 갔다. 가게 옆에는 아이스크림 통이 있었다. 엄마나 할머니의 눈에 띌세라 아이더러 빨리 하나 집으라고 했다. 아이는 불에 넣어도 녹지않을 것 같은 스크루바를 꺼냈다. 비도 추적거리고 날씨도 차가웠지만 아이의 열불을 식히는데는 그게 최고였나보다. 손이 시려워 옷소매로 잡고 꼭지를 입에 넣고서야 아이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대웅전 앞 석가탑과 다보탑, 석등 앞 돼지 상, 대웅전 정면 처마 밑에 숨어 있는 돼지 조각상을 살핀 뒤 관음전 극락전을 둘러봤다.

1시가 넘었다. 두 시간 가까이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아이스크림 하나였다. 아이 귀에 대고 만고의 진리 하나를 가르쳐줬다. 주원아 배가 고팠지? 배고프니까 모든 게 다 귀찮았지? 그래서 옛사람들이 남긴 진리의 말씀이 하나 있어. 뭔지 알겠어? 몰라! “금강산도 식후경!” 무슨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 금강산인데, 금강산 구경도 배고프면 말짱 꽝이라는 거야. 아무리 좋은 구경도 배가 고픈 상태에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지. 이따가 엄마랑 할머니에게 말해봐. 그러면 허수아비도 알아들을 거야.

돼지(?)를 보니 좀 풀리네!

이튿날은 새벽 수업부터 있었다. 학교 갈 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과연 아이의 아침은 부실했다. 빵과 찐 달걀로 아침을 때우려니, 아이는 먹는 둥 마는둥이다. 빵은 평소 잘 안 먹고, 달걀은 흰자만 먹는다. 따로 해먹일 것도 없다. 점심이나 잘 먹이자며 숙소를 나섰다.

석굴암 주차장엔 승용차 서너 대밖에 없었다. 앞선 일행이 서너 팀밖에 없어 보였다. 덕분에 듣기 힘든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도 듣고, 길을 가로지르는 다람쥐도 보며 가볍게 석굴암 앞에 도착, 안내판을 읽으며 기초지식을 얻었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있어. 영국인들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만큼 자랑하는 작가야.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런 보물이 있어.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석굴암과 석굴암 본존불이 있는 거야.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한 뒤 저 안의 부처님을 제 나라로 훔쳐가려고 했어. 그 사람들 눈에도 저렇게 훌륭한 조각품, 아니 불상은 없었던 거지. 본존불만이 아니야. 전실의 팔부신장상, 통로 좌우의 금강역사상과 사천왕상 그리고 원형인 주실의 벽면에 새겨진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 모두 뛰어난 예술작품이야. 특히 본존불 뒷면에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최고의 최고‘로 칭송받는 관음보살상이지. 석굴도 엄청나게 큰 돌로 쌓아 조성했는데, 그 기술은 지금도 재현하기 힘들다고 해. 1300년 전 그 옛날에 어떻게 저렇게 걸작을 조각하고 지었는지 놀라울 뿐이야.”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됐다. 아이는 석굴암을 나오면서부터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부실한 아침 식사에 고된 행군, 알아듣기 힘든 수업 때문에 지쳤을 것이다. 뒤처져 있다가 따라 가보니,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의 재촉에도 화장실에 가지 않고 종무소 앞에 혼자 있었다. 대번에 알아봤다. 아이는 지금 위험 상태로 빠져들고 있구나. 둘러보니 연등 밑에 아이스크림 통이 있었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무조건 먹여야 한다.

“주원아 아이스크림 먹을까?”

“엄마가 싫어해.”

엄마에게 이미 거절을 당했나 보다.

“그래? 할아버지가 사주면 괜찮아.”

이번에는 빠삐코를 고른다. 역시 딱딱한 얼음덩어리다. 부드러운 아이스콘은 싫다고 했다. 이게 당 보충에는 더 좋은데~. 그러나 듣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따라야지.

엄마와 딸인데, 아무리 실랑이를 한들~.

2교시, 경주국립박물관 부설 어린이박물관에서 무사히 수업을 끝낸 것은 그 빠삐코 덕분이었다. 신라 시대 때 서역과의 문물 교류, 화랑의 정신과 삶, 첨성대와 별 등을 직접 그리고, 퍼즐을 맞추고, 실습하는 방식으로 체험하는 곳이었다. 이어 경주박물관 역사관을 둘러보다가 중간에 나왔다. 아이의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또 짜증 내기 시작하면 모두가 저기압골로 빠진다. 아이가 좋아할 메뉴로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국수다. 도삭면을 잘 한다는 중식당에서 면 두 종류, 밥 한 종류 그리고 탕수육을 시켰다. 모두 양이 많았지만 밥그릇과 접시 모두 깔끔하게 비웠다.

3교시는 그곳에서 가까운 김유신 장군 묘. 왕이 아닌데도 흥무대왕릉이라 하여 왕릉 이상으로 크게 조성했다. 밥 먹고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대왕릉이나 박물관 등 대개의 고적이 5월 말까지 무료인데, 이곳은 유료였다. 오후 수업은 다시 박물관이었다. 역사관과 특별전시관(천마총 유물, 말다래 진품 전시) 그리고 신라 미술관을 둘러봤다. 주마간산이었지만, 그래도 경주를 제대로 둘러본 기분이 들었다.

야간 수업도 있었다. 6시 반부터 ‘경주 야행’. 시간이 남았다. 대릉원 앞 소릉원 공원에서 쉬면서 김밥 등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대릉원은 잔디밭에도 들어갈 수 없고, 돗자리도 깔 수 없지만, 여기선 허용된다.

야간 수업 집결지는 첨성대. 차를 동궁 원지 주차장에 세우고 일어서려 하니 아이가 존잠들어 있다. 얼마나 힘들까. 새벽밥 먹고 산으로 들로 박물관으로 왕릉으로 또 다시 박물관으로. 이제부터 야간 수업이라니. 일단 아이를 깨워 둘러업지만, 이제 할아버지의 개똥 체력으로는 28㎏에 이르는 아이를 업고, 집결지까지 갈 수 없다. 10분 정도 거리다. 아이도 할아버지가 헉헉대는 걸 아는지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남천에 어린 월정교 야경. 아이도 환호했다.

첨성대를 시작으로 출발한 야행은 종착지인 월지에 도착하면 8시 반. 거기서 20분 정도 설명을 듣고 동궁과 월지를 둘러보면 9시 반. 그야말로 빡친 야간 수업이다. 첨성대 수업에서 귀를 쫑긋 세웠던 아이는 점차 귀도 어깨도 허리도 다리도 풀어진다. 신라에서 박, 석, 김씨 세 왕들 가운데 김씨 왕이 처음 탄생했다는 계림에선 쪼그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고, 엄마에게 기댔다. 할아버지가 땅에 주저앉아 다리 위에 앉히려 했는데, 아이는 창피한지 피했다. 교촌에서는 상태가 더 나빠졌는데,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에 홀려 아픈 걸 잊었는지 조용했다. “최부잣집에는 6개의 가훈이 있었어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손님을 늘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땅을 매입하지 말라.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부자의 비결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교훈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설화가 전해오는 서궁이었지만, 아이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어 몸을 비틀었다. “원효대사가 저 다리를 건너다 일부러 물에 빠졌는데, 홀딱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요석궁에 들어갔는데 글쎄 사흘 동안이나 말렸다는 거예요. 요석공주는 그로부터 열 달 뒤 설총을 낳았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하나라는 월정교. 아이는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난간에 걸터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벌써 8시다. “통일신라 때 남천에 지었는데 일정교와 함께 경주 월성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다리였답니다. 고려말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엔 기록이 없어졌죠. 아마 불이 났거나 전화를 입어 다리 기능을 못 했나 봅니다. 2018년 복원된 지금의 월정교는 특이하게도 기와지붕이 덮여 있고 남쪽과 북쪽 끝에 2층 누각이 있는데, 이는 ‘문이 있었고 누교였다’는 옛 기록이 있어 그렇게 복원했습니다. 정확한 옛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과연 화려한 불빛에 황금색으로 채색된 야경은 남천에 비친 교각 그림자와 함께 별천지를 이뤘다.

기운을 되찾았다. 아름다움도 아이를 깨우나보다.

마지막 수업은 동궁과 월지. 통일신라의 국력을 쏟아부어 지은 별궁이다. 만곡의 호안이 깊고 길어 어디서도 그 끝을 볼 수 없게끔 호수를 파고, 그 안에 세 개의 섬을 조성했으며, 서쪽 호안에 임해전 등 각종 전각과 회랑을 배치하고, 호수 건너편은 대릉원 같은 동산을 조성해, 물과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신라 최고의 디자인, 조경, 건축술이 동원된 곳이다. 피곤한 아이도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할 정도로 우아하다. 우리는 9시 반에 문을 닫는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장장 10시간에 걸친 이틀째 경주 현장수업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사흘째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둘러보고 귀경할 예정이었으나, 수업계획이 변경됐다. 아이는 전날 천마총을 공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가 보다. 대릉원 코앞에서 뒹굴거리면서 천마총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엄마에게 따로 불만을 제기하더란다. 아마 아이는 박물관 역사관을 둘러볼 때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각종 유물 그리고 말다래 그림이 마음에 꽂혔던가 보다. 이미 한두 차례 관람했던 터라 별 관심이 없는 엄마나 할머니는 아이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었다.

수오재 뒷산의 송림. 신들의 놀이터 같다.

역시 수업을 아침 일찍 하는 게 효과가 있다. 아이의 당 관리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떡라면을 끓여 먹였다. 효공왕릉 뒤쪽의 수오재에 들러 상주 등지에서 옮겨와 지은 한옥들을 둘러본 뒤 신들이 노닐었다는 송림에서 한동안 산림욕을 한 뒤 천마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는 일단 무덤 안에 그렇게 큰 전시실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한 듯했다. 박물관에서 본 것들의 모조품이긴 하지만, 복원된 널과 흩어져 있는 유물들을 보는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이에게는 천마총 수업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가 보다. 어제는 기념사진 촬영 자체를 회피했는데, 천마총과 대릉원에서는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데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또 일어났다. 11시도 넘었으니, 밥을 먹고 서울이건 양동마을이건 출발해야 하는데 아이가 돌연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다. 으이구, 저놈의 변덕! 엄마에겐 경주에서 마지막 식사 계획이 있었고, 아이는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고~ 적잖은 실랑이 끝에 이번에도 아이는 어른들 일정에 따라야 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아이 눈엔 원통함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러나 고기와 냉면(아이가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면은 면이다)을 먹으면서 마음이 풀렸는지 헤실거리며 엄마와 놀았다.

천마총 탐방 스탬프를 찍고. 기분이 짱이다.

아이에겐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만, ‘식후경보다 집’이었다. 제아무리 좋은 풍경을 배를 두드리며 둘러보는 것보다도, 집에서 노는 게 최고였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린 아빠를 사흘째 못 봤다. 아이에겐 꾀가 또 하나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떡소떡을 먹는 것이었다. 아이는 점심을 먹고 가면 그 기회를 잃어버릴까 봐 조마조마 속을 조렸다. 올라오는 길에 아이를 위해 할아버지가 한 꼬치 쐈다.

황남대총 쌍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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