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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만쥬 Dec 15. 2020

7일차 겨울왕국 아렌델의 아침

2020년 2월 20일,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겨울왕국 속으로


눈 뜨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새벽 아침만의 차가운 공기, 차가운 색깔이 창문 한 가득 채워진다. 오늘도 흐리지만, 새벽 할슈타트의 풍경은 역시나 멋지다.  테라스가 없는 창문 밖 테크 위로 걸어 나갔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 테라스보다 오히려 좋았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차가운 아침 풍경을 즐기고 싶었는데, 어디선가 자꾸 겨울왕국 ost가 들려왔다. 엘사의 노래가 아니라, 육성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같은 호텔 어디선가 창문을 활짝 열고 부르고 있는지, 마치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간간히 들리는 말소리를 보니 한국인인 듯한데, 겨울왕국 ost인 'Into the unknown'의 시작 부분인 '아아~ 아아~' 이 부분만 계속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엘사의 노래였다면 이 고요하고 차가운 풍경과 무척 어울렸겠지만, 이 고요함을 와장창 깨버리는 너무나 발랄하고 신난 목소리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마치 엘사가 된 것처럼 신이 난 게 너무나 느껴지는 노랫소리여서, 처음엔 웃기다가 나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간만에 나도 겨울왕국 ost를 크게 켜놓고 나갈 준비를 했다. 겨울왕국 2 ost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When I am older'가 나오니 너무 신나고 절로 춤이 나왔다. 이 노래가 이렇게 신나는 노래였다니!



이번 여행 마지막 호사 알차게 누려야지



살아움직이는 스와로브스키와 근사한 나무집
스몰 아일랜드로 가는 다리


이 멋진 풍경을 함께 보고 싶은데


오전의 한적한 할슈타트를 둘러보고 싶어서 일부러 떠나는 기차 시간을 여유롭게 잡아놓았다. 코로나로 중국 관광객이 확 줄고 비수기인지라 정말 한적하고 좋았다. 너무 한적해서 사진 찍어줄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는데, 전망대를 오르는 동안 만난 사람이라고는 딱 두 커플뿐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다. 이 멋진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아빠도 같이 왔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짧은 통화를 마치고 광장, 기념품 가게 등 마을 곳곳을 구경했다. 그중 도자기로 만든 돼지 저금통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der kleine gärtner'라고 쓰인 초록색 돼지 저금통이 너무 귀여워 가게에 들어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작은 정원사'라고 한다. 할슈타트 기념품은 너로 정했다. 그리고 지역 명물인 소금도 사고, 크리스마스 장식품도 사고, 빠질 수 없는 마그넷도 샀다. 구경하면서 남쪽 끝자락에 다다르니 '스몰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나왔다. 봄여름에 푸른 잔디로 덮이면 정말 예쁠 것 같다. 한 한국 가족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엄마 아빠와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아빠가 더 보고 싶었다. 그 한국 가족 중 시큰둥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내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귀여운 도자기 저금통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




비엔나 역에서 호스트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 여섯 시, 기차를 타고 비엔나에 도착했다! 호스트와 함께 머무는 에어비앤비에 묵을 예정이라서, 퇴근 이후인 저녁 8시 이후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으니 그 시간 동안 교통권을 어떻게 할지 알아보고, 저녁도 먹으면서 비엔나에서의 일정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그러려면 핸드폰을 충전해야 하는데, 마침 역사 내 푸드코트에 충전 콘센트가 있었다! 푸드코트는 만석이어서, 콘센트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한 외국인과 합석했다. 비엔나에서의 첫 식사는 버거킹! 익숙한 빅맥 세트를 시켰는데 케첩이 빠져있길래 달라고 하니 돈을 내야 한단다. 감자튀김의 케첩을 돈 주고 사야 한다니, 왠지 사기 싫어서 그냥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교통권을 구매할지, 조금 비싸지만 미술관 할인이 되는 비엔나 카드를 구매할지 찾아보았다. 가고 싶은 미술관 몇 개만 가도 비엔나 카드가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교통권은 비엔나 카드를 구매하기로 결정!  




인생 첫 나 홀로 에어비앤비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각 나라의 호스트와 함께 지내는 에어비앤비를 많이 가보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나의 첫 에어비앤비는 초록색 문을 가진 아파트였다.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골목에 저층 아파트가 늘어서있었고, 어두운 저녁임에도 초록색 대문은 한눈에 띄었다. 번지수로 이뤄진 딱딱한 주소에만 익숙하다가, '초록 대문 집'으로 오라니 왠지 낭만적이다. 호스트 비비안의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예뻤다. 벨을 누르자 반갑게 인사하면서 1층으로 내려오겠다는 비비안. 잠시 후 발소리가 들리더니, 아파트 공용 현관인 큰 초록색 철문이 열렸다. 무거운 캐리어를 옮기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짐을 끙끙 들고 문 안으로 들어온 순간, 뒤쪽에서 문을 닫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내 눈을 쳐다보고 악수하려 손을 내밀고 있는 비비안이 있었다. 하늘색 셔츠에 당당하고 예쁜 커리어우먼 느낌의 여자가 서있었고, 웃으면서 자기는 비비안이라고 인사하는 게 너무 예뻤다.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열쇠를 돌려야 작동하는 신기한 엘리베이터였다. 공용현관인 초록색 철문부터 비비안의 집까지 총 3개의 열쇠의 사용법을 배우면서 비비안의 집으로 갔다. 오래된 아파트 외관과는 달리 깔끔하고 넓은 집이었다. 침대도 넓고 아늑하고, 특히 내 방에 작은 테이블이 있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딱 하나 조금 추운 것 빼고. 다시 일어나 경량 패딩을 꺼내 입고, 이불도 하나 더 꺼내 덮으니 완벽하다. 여기가 비엔나에서 내 집이 되어줄 곳이라니. 설렌다!



2020. 2. 14 ~ 3. 11

퇴사 후 떠난 27일간의 유럽여행 일기를 꺼내 읽어본다.

복잡한 마음을 가득 품고 간 '퇴사 후' 여행이었는데, 다시 꺼내 읽어보니 다신 없을 '코로나 이전' 여행기로 다가오는 27일간의 유럽 여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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